컨텐츠 바로가기

11.14 (목)

[황근의 시선] ‘KBS 수신료’ 획기적 인식 전환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투데이

지난 주말 공영방송과 관련된 주제로 학술대회가 있었다. 법학자들을 중심으로 공영방송과 관련된 구조 및 재원 등과 관련된 법·제도 논의가 벌어졌다.

방송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언론학자들과 달리 법리적 관점들은 조금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부분은 너무 현실을 모 르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공영방송 체제가 체계적인 법적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 아니라는 괴리 현상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월 2500원, ‘묻지마 세금’처럼 인식돼


이론적으로 공영방송은 공익적 책무라는 이념적 정체성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재원이 삼위일체를 이뤄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우리 공영방송은 법적 근거도 없고 명확한 정체성이나 상업방송과 차별화된 책무도 부여받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KBS 수신료는 공영방송 역할과 무관한 사실상 정치적 후원 성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전기요금에 병과되면서 강제 징수처럼 운영되어 왔다. 이 때문에 통합 관리비를 납부하는 국민들은 KBS 수신료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1980년에 책정된 월 2500원이라는 액수는 그 용도조차 알 필요 없는 일종의 ‘묻지마 세금’처럼 인식되어 왔다.

물론 정치적 편파보도나 프로그램들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수신료 거부 여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다. 월 2500원이라는 액수가 수신료를 KBS 공적 책무를 강제하는 매개체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국민들은 KBS가 공영방송 이념이나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도 수신료 납부에 대해 강한 인지부조화를 느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수신료의 가치(pay for money)’라는 공영방송 존재 근거와 무관한 수신료 제도인 것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1년이 넘었지만 당초 우려와 달리 월 10억 원 수준의 감소를 보이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공영방송 조직이나 구성원들의 책임 의식을 이완시키고 조직 이기주의와 방만한 경영,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공영방송이 국가·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재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은 수신료 분리 징수나 거부가 집단행동으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정치 병행성이 심화되고, 차별화된 공적 방송서비스 공급에 실패하게 되면 수신료 거부가 아니라 공영방송 무용론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결국 KBS 수신료가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서비스가 국가·사회적으로 필요하고, 내가 아니더라도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가치재’라는 인식을 확보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수신료가 공영방송이라는 가치재의 대가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기 위해 수신료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공영방송 책무와 수신료 간의 대가관계가 명확해지면, 수신료를 납부하는 사람과 거부하는 시청자가 분명히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신료 대폭 인상…‘공영방송 책무’ 유도를


이렇게 되면 공영방송 종사자들은 수신료 납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공영방송 책무에 더욱 충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공영방송의 오랜 병폐로 지적되어 온 비대한 조직과 방만한 경영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구책을 모색하게 될 것이고, 공적 서비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공영방송은 다수의 국민이 자신의 필요성 여부와 무관하게 불특정 다수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공공재로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리어 분명한 공적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가치재로 접근하는 공영방송에 대한 획기적 인식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 ▶비즈엔터

이투데이(www.etoday.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