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큰손으로 떠오른 중동…WSJ “삼성·TSMC, UAE 반도체공장 설립”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를 기반으로 하는 국부펀드 무바달라

TSMC와 삼성전자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대형 반도체 제조공장을 건립하는 방안을 UAE 측과 각각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석유 이후’를 준비 중인 중동 산유국들은 최근 인공지능(AI) 투자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TSMC의 최고 경영진이 최근 UAE를 방문해 대만에 있는 TSMC의 가장 규모가 크고 첨단 공정이 적용된 시설에 필적하는 반도체 복합단지를 건립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삼성전자도 향후 몇 년 내 UAE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며, 삼성전자 경영진 고위 인사도 최근 UAE를 방문해 해당 계획의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공장 설립 프로젝트 자금은 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를 중심으로 UAE 측이 대는 방안이 초기 논의 과정에서 검토됐다고 한다. 사업 규모는 1000억달러(약 134조원)를 넘는다. 무바달라 측은 AI 투자를 주력으로 하는 국영기업 MGX가 반도체 생산을 투자 전략의 한 축으로 삼았으며, 현재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전 세계 파트너들과 정례적으로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에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가 AI 반도체 개발 자금 조달을 위해 UAE의 MGX와 접촉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반도체 생산망 구축을 추진하면서 초기 논의를 진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UAE의 AI 전략 실현 가능성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대량의 정제수가 필요한 데다, 반도체 공급망에 속하지 않던 중동 국가에서 엔지니어 인력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신기술 반도체가 중동을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우려하는 점도 장애 요인으로 거론된다.

업계에선 기반이 갖춰진 한국에서도 반도체 공장 신설이 쉽지 않은데 척박한 중동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삼성전자 측은 “보도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TSMC도 대만 중앙통신사에 “구체적인 신규 해외 확장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같은 보도는 최근 AI 투자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동 국가들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산유국들은 최근 AI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조사 결과,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의 총자산은 현재 2조7000억달러에서 2026년까지 3조500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미국 빅테크를 제외하고 자금력이 가장 큰 ‘돈줄’인 셈이다.

석유 중심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사우디의 프로젝트 ‘비전 2030’에서 AI는 핵심 비중을 차지한다.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미국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와 400억달러 규모의 파트너십 체결 협상을 진행 중이며, AI 전용펀드인 SCAI를 출시했다고 CNBC 방송은 전했다. UAE의 무바달라는 오픈AI의 경쟁사 앤트로픽에도 투자하는 등 지난 4년간 8건의 AI 거래를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의 접점도 넓어지고 있다.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빈 방한했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만났으며, 양국 기업인들 사이에 AI 등 정보기술(IT)사업 및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 네이버·카카오 등도 AI를 비롯해 자율주행·로봇기술 분야에서 이들 국가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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