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되거나, 엉뚱한 위치로 집계돼…여가부 "지자체 믿고 현황 파악"
소녀상 관련 정부 예산 마련 안돼…"예산 늘리고, 보호 법안 마련해야"
인천 서구청 근처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
(인천·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인천에 두 번째로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라 해서 기억하고 있죠. 기념행사도 꾸준히 열어서 많은 주민도 알 텐데, 정부 집계에선 빠진 이유는 모르겠네요."
지난 17일 인천 서구청 부지에 설치된 소녀상 앞에서 만난 지역주민 김모(67) 씨는 "설치된 위치가 대로변이고, 유동 인구도 많은 곳이라 꽤 알려진 소녀상"이라며 "재작년에 동상 옆에 인형과 꽃다발을 둔 게 너무 예뻐서 사진도 찍어놨다"고 말했다.
이 소녀상은 2020년 11월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을 명예추진위원장으로 둔 '인천 서구 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가 지자체 관계자 및 지역 주민과 함께 건립한 것이지만, 최근 정부가 실시한 전국 소녀상 실태 조사에선 빠졌다.
정부 실태 조사에서 서울 성북구 가로공원에 건립됐다고 파악된 소녀상은 이미 3년여 전에 구내의 다른 공원으로 옮겨졌다.
성북구 관계자는 "가로공원에 서울 창작연극센터를 건립하기로 결정하면서 2021년 2월에 소녀상을 이설했다"고 밝혔다.
서울 성북구에 건립된 소녀상 |
이처럼 정부의 첫 소녀상 실태조사가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조사가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정부와 지자체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26일 전국 17개 시도에 소녀상 설치 현황 요구 공문을 보냈고, 최근 취합을 마쳤다.
이번 조사는 소녀상 훼손을 막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이들을 처벌하는 취지의 법안이 속속 발의됨에 따라 관련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조사 결과 전국에 설치된 소녀상은 총 152개다.
이 과정에서 위안부피해자법 주무 부처이자 점검을 총괄한 여가부는 각 지자체와 소관 부처가 점검한 결과에 대해 취합만 할 뿐, 현장 점검이나 설립 단체로부터의 확인을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기존에 설치된 소녀상이 누락되거나, 엉뚱한 장소로 집계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정의기억연대를 비롯해 소녀상 건립을 추진했던 단체들은 이번 실태조사에서 배제됐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 서구 추진위 관계자는 "소녀상은 서구 주민들의 모금을 통해 세웠고, 지자체 및 지역 국회 관계자들도 뜻을 모았다"며 "정부가 조사를 진행한다는 연락을 받지도 못했고, 왜 배제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황당해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도 "정의연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까지도 소녀상 설치 현황을 집계해 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며 "여가부로부터 이번 실태조사와 관련해 확인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녀상 훼손을 방지하는 첫걸음인 실태조사가 지나치게 안일하게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송기호 변호사는 "여가부의 의지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며 "현장 조사가 힘들었다면, 소녀상을 건립한 단체에 확인 전화라도 돌렸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위안부피해자법 주무 부처인 여가부가 최소한의 책무를 다하도록 국회 차원에서라도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대우교수도 "누가, 왜 소녀상을 테러하는지 파악하는 첫 걸음이 '실태조사'인데, 그 시작부터 허술했다"며 "관련 예산을 늘리고, 보호 법안을 마련하는 등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가부에 따르면 소녀상과 관련해 별도로 편성된 정부 예산은 없다.
여가부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제출한 것을 믿고 현황 파악을 한 것"이라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100% 다 맞는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해명했다.
애국가 부르는 이용수 할머니 |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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