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3 (월)

[김병기 ‘필향만리’] 何遠之有(하원지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일부분만 전하는 『시경』의 일시(逸詩) 중에 “아름다운 꽃이여! 펄펄 날리는구나. 어찌 그대를 생각지 않으랴만 집이 너무 머오이다”라는 시가 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움에 어찌 멂이 있겠는가!”라고 평했다. 진정으로 그리워한다면 멀다 해서 못 찾아갈 리가 없을 테니 멀다는 것은 핑계이고, 실은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게 공자의 풀이인 것이다. 공자는 사랑에도 통달했던 것 같다. 진정한 사랑에는 핑계를 댈 틈이 바늘구멍만큼도 없음을 꿰뚫어 보았으니 말이다.

중앙일보

何: 어찌 하, 遠: 멀 원, 有: 있을 유. 어찌 멂이 있겠는가? 24x74㎝.


“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 있는 양 알지마소. 가보면 멀고멀고 어디 끝이 있으리오. 임 그림 저 하늘 위에 그릴수록 머오이다.…” 시조 시인 이은상이 작사한 가곡 ‘그리움’의 제2절이다. 그리움이 뻗히는 그 가없는 거리를 물리적으로 계산하여 멀다고 생각하는 순간, 순수하고 아름다운 먼 그리움은 사라지고 만다. 1년에 단 한 번 만나지만 어떤 핑계도 없이 마음은 항상 네게 있는 견우와 직녀의 그리움은 애가 타도 오히려 행복한 그리움이다. 허나, 하늘 끝보다도 더 먼 곳 북한 땅. 이산가족의 그리움에는 실지로 ‘멂’이 있다. 내 잘못 아닌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도 먼 그리움이 있다. 핑계마저 댈 수 없이 먼.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