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 장기표 별세…향년 79세
‘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이달 초 병문안을 온 54년 지기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이같이 말하며 “할 일이 아직 태산인데, 몸이 안 따라준다”며 아쉬워했다.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최근까지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에 매진해 온 장 원장은 생의 마지막까지 ‘국회의원 특권 폐지’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고 한다.
장 원장이 22일 오전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올해 7월 “할 만큼 했다, 미련 없다”며 담낭암 말기 진단을 알린 장 원장은 일산 국립암센터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장 선생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키신 진정한 귀감이었다. 장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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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원장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후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접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과 민청학련사건 등으로 수감과 수배 생활을 반복했지만, 다른 ‘운동권 출신’들과 다르게 민주화 운동 보상금은 수령 하지 않았다.
장 원장은 재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1990년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며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차례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낙선하며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남이 달아주는 ‘뺏지’는 거절했다고 한다. 김문수 장관은 동아일보와 만나 “내가 공천관리위원장 겸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던 17대 때 ‘비례대표, 지역구 중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디든 말해달라’고 했는데 극구 거절했다”며 “장기표는 평생 특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김 장관은 이날 “고인은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장 원장에 국민훈장을 전달했다.
장 원장은 한 달간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옮겨 다니면서도 지인들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 김재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병원에 오는 사람마다 자신의 책(위기의 한국, 추락이냐 도약이냐)을 나눠주며 ‘과학기술 발전으로 로봇이 일하고 사람들은 자기 실현하는 방향으로 직업이 바뀔 텐데 고도의 생산성 시대를 대비하지 못하면 디스토피아가 찾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날 고인의 빈소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 정치인들이 보낸 화환과 조기가 자리했다. 유족은 부인 조무하 씨와 딸 하원·보원 씨가 있다. 장례는 26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진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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