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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사람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안간힘, 그게 ‘문학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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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진은영 시인. 마음산책 제공


인간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저마다 살아 내야 할 이유를 찾는다. 치열한 언어와 예리한 사회적 감수성을 담아낸 시를 써 온 시인 진은영(54)은 살기 위한 방편으로 책을 읽던 시절을 떠올린다. 읽고, 밑줄을 긋고, 어딘가에 옮겨 적은 ‘친애하는’ 작가들의 문장들이 시인의 일부가 돼 책으로 나왔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진은영의 신작 산문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그만의 기준으로 선별한 문장들을 곱씹으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글을 썼던 작가들의 안간힘을 전한다.

그가 호명한 작가들은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백석, 알베르 카뮈, 시몬 베유, 실비아 플라스, 한나 아렌트 등이다. 이들은 ‘자신과 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도 고유함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며 독자들의 영혼에 균열을 낸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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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카프카의 ‘소송’을 통해 여성의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은 시대에 작가이자 피고로 살아야 했던 브론테 자매에 대한 시선을 억압받는 한국 사회의 소수자에게 옮긴다. 울프의 ‘올랜도’를 읽으면서는 400년간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외교관·집시로 살다가 결국 시인이 되는 운명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사회를 꿈꾼다.

좋은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아첨하지도, 쉽게 위로하지도 않는다. 현실에 대한 달달한 포장보다는 고통을 직시하고 정확한 위안을 받는 편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인의 문장은 독자에 대한 작가의 진심 어린 믿음에서 비롯된다. 산문집에서 눈에 띄는 주제는 ‘애도’다. 먼저 떠난 오빠에 대한 192쪽 기록을 담은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의 ‘녹스’에서 한국의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고, 아픈 엄마를 떠나보낸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서 슬픔을 견디는 유족들의 마음을 읽어 낸다.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는다고 인류를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살아가게 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진은영은 시인 이전에 좋은 독자이고 다정한 상담가다. 그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절망 속에서 삶을 견디는 단 한 사람을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그것이 ‘문학의 일’이라는 시인의 믿음에 동의하게 된다.

안동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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