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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데이터센터가 전기먹는 하마? 한국서는 반도체 공장이 더 많이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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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전력 소비량 매년 10% 증가
TSMC 최근 5년 전력 사용량 두 배 늘어
반도체 미세공정 전력수요 연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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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 원삼면에 건설 준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장 단지 예상도. SK하이닉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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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가 폭증할 전망인데 이를 가만히 둘 경우 대정전이 우려된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9월 초 부산 2024기후산업국제박람회에서 이런 비관론을 내놨다. 주민수용성, 한국전력의 적자 규모 등을 감안하면 국내 첨단산업의 발전 속도에 맞춰 전력 시설을 갖추는 게 녹록지 않다는 말이다. 같은 날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도 "인공지능(AI) 산업으로 전력수요 폭증이라는 난제를 맞이했다"며 "우리 에너지 제도와 인프라는 AI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강국 대만의 경우 이런 우려는 일부 현실이 되고 있다. 19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최근 7년 동안 대만에서는 100만 가구 이상의 대규모 정전이 네 차례 발생했는데 2017년 8월, 2021년 5월 13일과 17일, 2022년 3월 3일로 날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6월 궈즈후이 대만 경제부장(장관)은 반도체 생산으로 인한 전력수요가 급증해 2028년 대만이 전력난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고 비슷한 시기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대만 내 AI 연구개발(R&D)센터 신설 계획을 발표하며 전력 문제가 투자의 장벽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전력 수급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대만과 한국 등 반도체 제조 국가는 AI 반도체 생산에 데이터센터(IDC)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쓸 것으로 보인다. 국가 경제의 성패를 가를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전력 수요를 전망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맨 처음 AI발(發) 전력 수요 급증 우려는 IDC에서 시작됐다. 기존 온라인 검색을 할 때마다 평균 0.3와트시(Wh) 전력이 필요했다면 챗GPT 같은 생성형 AI 모델은 검색당 10배 수준인 2.9Wh를 쓴다고 알려졌다. 이미지·영상 기반 AI는 텍스트 AI보다 전력 소모량이 40∼60배 더 많다. 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IDC 전력 사용량이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에서 2026년 최대 1,000TWh 이상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한국이 한 해 쓰는 전력량(568TWh·2022년)의 두 배에 가깝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업체들이 AI 데이터센터(AIDC)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려고 사활을 걸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5월 우리나라 국회입법조사처마저 관련 보고서를 내놨다.

데이터센터의 몇 배 되는 국내 반도체 전력 사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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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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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역을 한국으로 좁히면 말이 달라진다. 2023년 12월 기준 국내 IDC는 총 150개.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IDC 1기당 평균 전력 사용량이 연간 25기가와트시(GWh)란 점을 감안하면 2023년 국내 IDC 가동에 쓴 전력량은 약 3.75TWh로 추정된다. 반면 지난해 삼성전자가 전 세계 반도체(DS) 사업에 쓴 전력량은 32.384TWh, SK하이닉스가 쓴 전력량은 12.011TWh로 합치면 IDC에서 쓴 전력량의 11.8배에 달한다. 두 회사의 반도체 사업장 7할 이상이 국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IDC 전력량의 7, 8배를 반도체 제조에 쓴다는 말이 된다. 한국경제인협회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전력 수급 애로 개선 방안' 보고서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전력 의존도(사용한 에너지원 중 전력 비중)는 83%에 달한다.

반도체 회사가 쓴 전력량은 해가 갈수록 빠르게 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전력 사용량은 2019년 9.205TWh에서 2023년까지 연평균 7% 이상 늘었다. 삼성전자는 DS 부문의 전력 사용량을 따로 떼 공시한 2020년(24.556TWh)부터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쓴 전력이 연평균 10.6%씩 증가했다.

반도체 제조 강국 대만의 사정은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TSMC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TSMC가 전 세계 반도체 제조 시설에 쓴 전력량은 24.700TWh로 2018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TSMC로 반도체 주문이 몰리면서 대만 전체의 전원용 전력 판매 중 반도체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7.3%에서 2023년 23.2%로 커졌다. 경제부장이 나서서 전력난의 심각성을 호소한 배경이다.

앞으로 반도체의 전력 소모 증가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IDC가 AIDC로 바뀌면서 전력 사용량이 폭발하듯 반도체 미세공정이 심화될수록 반도체 공장이 쓰는 전력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일례로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회로 패턴을 새기는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는 이전 세대 제품인 심자외선(DUV) 장비보다 10배 많은 전력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생산 공정은 리소그래피 장비뿐만 아니라 플라스마 에칭 장비, 저온 고속 식각 에칭 장비 등 1,000~1,500대의 장비가 한꺼번에 작동하는 복잡한 과정"이라며 "보통 4, 5년 주기로 장비 교체가 이뤄지고 그때마다 전력 사용량은 20% 정도씩 증가한다"고 말했다. 1,000~1,500대의 장비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무균실이 클린룸인데, 반도체 제조 시설이 대형화되면서 1개 팹(공장) 안에 넣을 클린룸은 4개에서 6개, 8개로 늘고 있다. 전력 사용량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난다. 여기다 갈수록 더 작고 얇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가는 패턴을 웨이퍼에 새겨야 하고 그만큼 시간당 웨이퍼 생산량이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제조에 드는 전력은 또 늘어난다.

학계 "용인 클러스터 전력 대책 부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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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보스턴컨설팅이 애리조사 상업청 의뢰로 만든 국가반도체 보고서(위), 2024년 5월 스탠드어스가 발표한 보고서. 미국 반도체법으로 인한 추가 투자로 반도체 제조업에 필요한 전력량이 두 배 차이 난다. 보고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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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반도체 전문가는 전력 시장을, 전력 전문가는 반도체 생산 공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AI 반도체 제조에 따른 국내외 전력 수급 전망이 뚜렷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4월 그린피스는 전 세계 반도체 제조 산업이 쓰는 전력량이 2021년 101TWh에서 2030년 237TWh로 늘 것으로 예상했는데 업계에서는 "무용지물"(글로벌 반도체 업체 임원)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반도체장비업체 ASML의 2021년 반도체 산업 전망 보고서,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2022년 4월 반도체 산업 전망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든 추계라서다. 2022년 하반기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본격화하며 전 세계 반도체 제조 경쟁이 불붙었고 같은 해 11월 챗GPT로 AI 혁명이 일어나며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는데 그린피스가 참고한 두 보고서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다.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이 전력을 얼마나 쓸 건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반도체법이 본격화된 2022년 12월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애리조나 상업청(ACA)의 의뢰로 반도체 업계와 주 정부, 학계 전문가 의견을 모은 '국가 반도체 로드맵'이란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는 반도체법이 성공적으로 시행돼 관련 회사들이 미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12인치(300mm) 웨이퍼를 연간 3,157만2,000장 더 만든다는 가정 아래 연간 38TWh를 더 쓸 거라고 예측했다. 이는 삼성전자 DS 부문이 1년 동안 쓴 것보다 많은 양인데 반도체 제조 시설이 365일 24시간 쉼 없이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조 시설을 100% 가동한다고 보고 전력 설치 용량은 4.337기가와트(GW) 정도다. 그러나 5월 환경단체 스탠드어스(stand earth)가 주요 반도체 제조 회사들이 미국 정부에 요청한 전력 설치 용량을 합산한 결과는 대략 2.1GW였다.

한국은 2023년 3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발표하면서 2050년까지 용인 남사(삼성전자·팹 6개)와 용인 원삼(SK하이닉스·팹 4개) 지역에 10GW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업에 필요한 전력량을 조사해 팹(공장) 1개당 전력량을 1GW로 잡은 수치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다시 계산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권 교수는 7월 5일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주최로 열린 '원자력계 조찬 강연'에서 경기 남부권을 아우를 반도체 메가 팹 구축에 적게는 15GW, 많게는 20GW의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전력 수요만 최소 10GW이고 인근에 들어올 300~500개 소·부·장 협력 기업과 설계 회사, 서버 업체 등의 전력수요도 3~5GW에 달할 것"이라며 "메가 팹 주변에 인구 50만짜리 신도시의 전력량까지 합하면 어림잡아 15~20GW의 전력이 확보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5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하며 수도권의 반도체 전력 수요가 2023년 4.1GW에서 2038년 15.4GW로 네 배가량 늘 거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 모델과 반도체 기업들이 요청한 전력 설치 용량을 참고해 전기본 전문 가위원회가 예측한 결과다. 그러나 이 역시 미세 공정 등 첨단 반도체 기술 발달에 따른 추가 전력 사용량은 포함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십 년 후 기술 발달에 따른 전력 효율까지는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반도체 제조업의 공정별 전력 소비량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협회 관계자는 "전력 수요가 업계 화두가 되면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들도 관련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AI 기술 발전에 따른 반도체 전력 소비량 전망 연구를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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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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