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워싱턴 정가에 파란을 일으킨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인 박동선(89)씨가 19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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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한·미 외교 관계를 경색케 한 대형 로비 스캔들 ‘코리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박동선(89)씨가 19일 별세했다. 박씨는 지병을 앓던 중 상태가 악화되면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에 입원했다가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아 게이트는 1976년 10월 2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박동선이라는 한국인이 한국 정부 지시에 따라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에게 전달하는 매수 공작을 벌였다’고 알렸다. 박씨가 로비스트로 활약하면서 거액의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박씨는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산 쌀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사업을 한 그는 1960년대 워싱턴 시내에서 고급 사교장을 운영하면서 미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을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박씨는 1978년 미 사법당국 수사를 받았고 미국 측으로부터 면책 특권을 받는 조건으로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 출석하기도 했다. 박씨는 미 전·현직 의원에게 85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제공한 점 등을 증언했다.
그러나 박씨는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이었을 뿐이며 한국 정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당시 현직 의원 1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7명은 의회 차원에서의 징계를 받으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이로 인해 한·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미국 검찰은 그를 기소했으나 기각돼 박씨는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박씨는 이후 일본·대만 등 세계 곳곳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5년에는 유엔의 ‘이라크 식량을 위한 석유(oil-for-food)’ 프로그램 채택을 위해 이라크로부터 최소 200만 달러를 받고 불법 로비를 벌인 혐의로 미국 검찰에 기소됐다. 2007년 2월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건강 등의 이유로 감형을 받아 2008년 9월 석방됐다.
석방 후 귀국한 박씨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좀처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009년 11월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공개 강연을 했다. 당시 박씨는 “나는 로비스트와 거리가 멀다”라며 “그 누구의 임명도 없이 스스로 민간외교를 펼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3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의 중문 번역판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기도 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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