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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미뤄지는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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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창 공사 중인 인도네시아 새 수도 누산타라 전경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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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식 천도 선언은 없었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이야기다. 인도네시아는 현 수도인 자카르타를 누산타라라는 곳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2019년 수도 이전 구상을 내놓은 이후, 2022년 관련 법안 통과로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계획에 따르면 총 5단계 작업을 통해 수도 이전이 완료된다.

누산타라는 자카르타로부터 약 1200㎞ 떨어진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주에 건설되고 있는 일종의 신도시다. 열대 정글 속 7억 7400만 여 평(2561㎢) 규모의 부지를 정비해 200만 거주 인구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대통령궁 및 일부 행정기관들이 건설되고 있는데, 누산타라는 기존에 있던 도시가 아니어서 수도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위한 각종 건축물과 여러 기반 시설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신수도 예정지는 거대한 공사판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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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도 계획은 조코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데, 그는 당초 이 같은 인도네시아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 사업을 8월 17일(현지시간) 독립 79주년 기념일 행사를 통해 공식화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7월 30일 조코위 대통령은 누산타라에서 마련된 새 집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으며, 8월 13일에는 첫 각료회의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17일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공식 천도 선언을 하지 않았다. 사실 조코위 대통령이 아직 수도 건설이 초기인 상태에서 천도를 공식화하겠다고 당초 마음먹은 것은 그의 임기가 오는 10월이면 끝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추진한 기념비적 사업의 방점을 자신의 손으로 찍고자 했던 것인데, 결국 하지 못한 것이다. 행사도 신수도 예정지인 누산트라와 기존 수도인 자카르타 2군데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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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신수도 누산타라 대통령궁에서 기자들과 만난 조코 위도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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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위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만, 사실 애초부터 79주년 독립기념식에서 천도 선언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왜냐하면 수도 이전 계획의 5단계 중 이제 막 1단계가 시작됐고, 1단계 조차도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현재 누산타라는 국가 중심 도시로서의 기능을 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다. 대통령궁의 공사 완공률만 90%를 넘겼을 뿐, 주요 부처가 들어설 각 기관들의 건물 공사 속도조차 더디기 짝이 없다. 천도 선언이 이뤄지면 주요 부처와 소속 공무원들도 대거 이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직 업무를 볼 공간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로 인해 당초 1만 2000명이던 공무원 이주 목표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무상급식 정책에 더 무게 두는 차기 정권
8월 17일 수도 이전을 공식화하는 천도 선언이 이뤄졌다 할지라도 행정기관 이전에 따른 공백으로 인한 혼란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누산타라 건설 계획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외부 투자 유치 부진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 추정되는 누산타라 건설 소요 예산은 약 44조원인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중 80%를 국내외 민간 투자로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글로벌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곳도 있지만 실제로 집행하지 않는 곳들이 상당하다. 이같은 투자 부진으로 인해 최근 신수도청장·차관이 교체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79주년 독립기념일 행사 전부터 천도 공식 선언이 늦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결국 무산돼 버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수도 이전과 관련한 상황도 다소 묘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8월 천도 공식 선언이 무산됐지만 오는 10월 정권 교체 시점에는 천도 선언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금은 이 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인도네시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취임 선서는 수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차기 대통령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당선인은 오는 10월 자신의 취임식을 누산타라가 아닌 자카르타에서 하겠다고 한 것이다. 프라보워가 자카르타에서 취임식을 한다는 것은 새 대통령 취임 전에는 수도 이전이 공식적으로 선언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프라보워 당선인이 취임식 직후 천도 선언을 할 수 있지만, 현재 그는 수도 이전 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천도 프로젝트 자체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이후 수도 이전과 관련된 언급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새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내세운 대표 정책인 무상급식 사업 시행에 대한 의지도 수도 이전과 관련한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무상급식에 대한 새 당선자의 의지가 신수도 사업의 불확실성과 연관되는 것은 ‘재정’ 문제 때문이다. 사업 시행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데, 신수도사업과 동시에 진행할 여력이 되느냐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무상급식이 100% 전면 확대되는 2029년에는 38조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수도 이전 못지않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무상급식을 위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미 71조 루피아(약 6조원)를 예산으로 배정한 상태다.

이에 한정된 예산 속에서 신수도 건설을 위한 투자 부진이 계속된다면 결국 수도 이전은 계속 뒤로 밀릴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누산타라에서 열린 첫 각료회의에 참가한 프라보워 당선인은 수도 이전 계승 사업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3~5년 정도가 되면 수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의구심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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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 인도네시아 누산타라에서 진행된 독립기념일 행사.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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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라앉는 도시
조코위 대통령이 수도 자카르타의 이전을 결정한 것은 도시 소멸 위협과 심한 과밀 현상으로 인해 거주 불안정성이 심해지며 수도로서의 역할에 한계에 부딪쳤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카르타의 소멸 문제는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자카르타는 도시 면적의 60% 이상이 해수면 아래에 있는데, 해수면이 계속 올라오면서 도시를 잠식하고 있다.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라앉는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섬나라의 특성상 물 조달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난개발이 자카르타를 가라앉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계획된 자카르타의 적정 거주 인구는 50만 명 정도였지만, 현재 자카르타 인구는 1100만 명에 이른다. 긴 시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감당할 관개시설 미비 등으로 물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자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지하수를 개발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이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하수 개발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지반 침하 현상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복합적 요인으로 2030년이 되면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매년 최대 8㎝씩 가라앉는 북자카르타의 경우 약 90%가 해수면 아래에 잠길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된 상태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자카르타시가 이 문제를 막기 위해 매년 1조원이나 되는 예산을 쏟아 부으며 해법을 모색했지만 별 실효성을 얻지 못했고, 결국 수도 이전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누산타라 건설과 관련된 각종 정책 홍보에서 자카르타의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자각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누산타라 건설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강조되는 키워드가 ‘삶의 질이 보장되는 도시’인데, 핵심은 물 공급이다. 조코위 대통령이 누산타라 대통령궁에 마련된 새 집무실에서 첫날을 보낸 후 기자들에게 “물과 전기, 인터넷 등이 잘 준비돼 있다”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2022년 수도 이전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당시, 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깨끗한 물’을 언급한 바 있다.

누산타라 수도 이전에서 또 하나 강조되는 부분은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에 집중된 국가 불균형 발전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총 인구 2억 7000여만 명 중 56%가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에 집중돼 있다. 각종 개발도 자바섬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로 인한 각 주간의 GDP 격차가 상당하다. 인도네시아 경제의 60%가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수도 이전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새 수도가 건설되는 곳은 칼리만탄섬으로,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낙후된 지역이다. 도로 등 기반시설도 열악하다.

우스만 칸송 정보통신부 국장은 “수도 이전 이유 중 하나는 자바섬에 집중된 인도네시아 경제가 여러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누산타라는 국가 균형 발전과 부의 균등 분배를 위해 선택된 단계”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외에도 조코위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도 있다. 조코위 대통령은 사실 인도네시아의 명문가 출신이 아니다. 그는 흙수저 출신으로 인도네시아 최고 권력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레거시’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누산타라가 그의 치적이 되면 정치적 유산이 강해지는 측면도 있다. 일각에서는 누산타라의 위치를 두고 인도네시아가 해양 아세안 중심국가로서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전 계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 시절에도 수도 이전 계획이 나왔다. 현재 누산타라가 지어지고 있는 보르네오섬으로 천도 계획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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