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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안상미의 와이 와인]<253>와인, 만원짜리를 고급이라고 내놨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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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고급와인 판매업자가 소장하고 있는 와인을 대거 풀었다. 상류층들이 호감을 가지고 너도나도 와인잔을 집어들었다. 찬사가 쏟아졌다. 왕실 행사니 얼마나 비싼 와인을 내놨을지 기대감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먼저 레드와인에 대한 평이다.

"향이 정말 좋네요. 과실미에 풍미까지 좋고, 깊은 맛이네요. 그렇죠?"

"딱 내가 마시고 싶은 와인이에요. 한 잔 더 마시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다음은 샴페인 차례다. 판매업자의 제안에 다들 샴페인잔에 귀를 귀울였다.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가)마치 음악처럼 들리네요!"

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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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소매업체 알디(Aldi)의 유튜브 채널에 한 영상이 올라왔다. 고급 와인상으로 가장한 저스틴 유랄디(Justin Youraldi)가 영국 웨스트석시스에서 열린 왕립국제경마 행사에 자리를 잡고 참석자들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그간 세계 최고의 와이너리들에서 수집해온 고급 와인이라고 내세웠지만 사실은 저렴한 마트 와인이었다.

알디는 매장수가 1000개가 넘는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영국에서 가장 저렴한 슈퍼마켓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몰래카메라 같은 이번 영상의 의도는 명백하다. 와인 좀 안다는 상류층이 맛을 봐도 고급 와인으로 느낄 정도로 자사 와인의 가성비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름인 저스틴 유랄디 역시 풀어보면 저스트 인 유어 알디(Just in Your aldi)다. '알디 마트에 다 있어요' 쯤이다. 다들 자신이 맛 본 와인을 한 병에 최소 20파운드(한화 약 3만5000원)에서 많게는 40파운드(약 7만원)로 예상했는데 실제 가격은 레드와인이 4.99파운드(약 8700원)에 불과했다. 물가 비싼 영국 기준으로 보면 데일리 와인에도 못 미치는 저렴한 와인이다.

가성비 와인을 위해 깔린 판인데 정작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와인 스노브(Wine Snob)'들이었다. 스노브란 속물 혹은 잘난 체하는 사람을 말한다. 와인 스노브라면 와인으로 잘난 체하는 사람, 와인 좀 아는 척 하는 사람 정도 일테다.

저스틴이 와인에 대해 설명하자 행사에 참석한 소위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은 동의하기 바빴다. 심지어 레드 와인의 포도를 두고 남아공의 유명한 포밸리에서 재배했다고 하자 한 남성은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남아공의 와인 산지 가운데 포밸리라는 곳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저스틴이 샴페인 잔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유도한다. 큰 버블과 작은 버블의 소리가 다르지 않냐고 묻자 한 여성은 "정말 큰 차이가 나네요"라고 감탄한다. 큰 버블과 작은 버블을 언급한 것도 그렇지만 전문가도 구분할 수 없는 차이다.

알디가 2000명의 와인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4명 가운데 한 명은 만원 짜리 와인과 10만원 짜리를 구분할 수 없다고 답했고, 절반 가까이는 내놓은 와인에 대한 평가가 좋으면 더 비싸게 주고 샀다고 과장한다고 했다.

와인 평론가가 아닌 이상 가격 차이를 구별하기도 힘들 뿐더러 와인 역시 아는 척하기보단 좋은 사람과 기분 좋게 즐기면 될 뿐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와인 스노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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