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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해리스 암살 시도는 왜 없나”... 美 대선, 광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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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겨냥… 2차는 사상 초유

“대선 앞두고 내전 수준의 혼란”

조선일보

“부패 정치인 없애버리자” 폭동 선동 티셔츠까지 - 17일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유세장에서 한 지지자가 트럼프 이름이 쓰인 옷을 입고 서 있다. 그 뒤에 걸린 옷에는 ‘참전 용사들이여, 부패한 정치인을 제거하자’라는 구호와 사진, ‘1946년 8월 2일’이라는 날짜가 인쇄된 옷이 걸려있다. 1946년 8월 2일 테네시주 애선스에서 2차 대전 참전 용사 등 주민들이 지방 관료들의 부패에 반발해 무장 봉기했던 ‘애선스 전투(Battle of Athens)’를 상기시키며 트럼프를 ‘부패를 척결할 지도자’로 치켜세운 것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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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총격 시도가 15일 발생했다. 지난 7월에 이은 두 번째 암살 시도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대립과 분열이 극에 달하면서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의 정치 폭력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내전(內戰) 수준의 정치 분열이 폭력으로 가시화되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잇따른다”며 “대선 결과에 따라 폭력 사태가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건 이후 J 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대선 후보)를 죽이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었다. 민주당 측은 언사를 자제해야 한다”고 하는 등 책임 공방 과정에 발언이 점점 거칠어지는 점도 증오와 폭력의 정치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대선 레이스 중 트럼프에 대한 두 번째 암살 시도는 지난 15일 오후 플로리다주(州) 웨스트팜비치의 트럼프 소유 골프장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발생했다. 골프를 치던 트럼프를 암살하려 기다리던 남성이 골프장 철창으로 소총 총구를 내민 모습을 미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발견하고 총을 발사해 제지했다. 당시 트럼프와 소총 사이의 직선거리는 300여m에 불과했다고 미 수사 당국은 밝혔다. 용의자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58)는 30분 넘는 도주 시도 끝에 체포됐다. 그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를 찍었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에 불만을 품어왔다고 알려졌다. 트럼프는 지난 7월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야외 유세를 하던 중 총격 사건으로 오른쪽 귀 윗부분이 관통당하는 상처를 입었었다.

조선일보

그래픽=정인성


라우스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수사 당국과 법무부는 이번 사건을 명백한 ‘암살 시도’로 규정했다. 라우스가 머문 장소엔 조준경이 장착된 구(舊)소련제 SKS 소총, 음식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 촬영 장비 ‘고프로’ 등이 발견됐다. 수사 당국은 이전에도 소셜미디어 등에 정치적 글을 자주 올렸던 라우스가 고프로를 통해 범행 장면을 생중계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암살 시도라고 수사 당국이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다.

대선 후보를 노린 암살 시도가 두 달 만에 또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로 미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11월 대선이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 민주·공화 양당과 지지자들의 갈등이 또 다른 폭력 사태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반복되는 폭력 사태로 서로에 대한 비난 발언의 수위가 높아지고, 소셜미디어 등이 이런 갈등을 증폭시켜 지지자 간 분열이 전에 없이 극심해진다는 점이 우려를 특히 키운다. 워싱턴포스트(WP)·NYT 등은 “과거에도 대선 기간 폭력이 선거 운동에 영향을 준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 선거엔 잠재돼 있던 폭력성이 눈에 띄게 가시화돼 표출되고 있다”며 “선거까지 남은 (약 50일의) 기간이 길게 느껴질 정도로 전 세계가 미국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민주·공화 진영은 이번 암살 시도가 상대 진영의 위협적 언사 때문이라며 서로를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는 사건 다음 날 WP 인터뷰에서 “나는 민주당의 수사(修辭)가 (나를 향한) 총탄을 날린다고 믿는다. 위험한 총알이 날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 해리스가 자신을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비판한 것이 라우스 같은 이들을 부추겨 암살 시도로 이어지게 했다는 주장이다. 부통령 후보인 밴스 상원의원도 유세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이견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민주당 대선 후보인 해리스를 죽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과격한 지지자들에겐 해리스 암살을 시도하라고 부추기는 듯한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다. 밴스의 발언 후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런 발언은 일부에게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매우 위험한 수사”라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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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인성


최근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비슷한 뉘앙스의 글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그는 사건 당일 X에 “바이든·카멀라(해리스)를 암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라고 썼다가 폭력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몇 시간 만에 글을 내렸다. 머스크는 이후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대변인은 이에 “폭력은 농담 소재가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에 비해 미국 사회에 만연해진 과격한 수사는 정치적 폭력을 더욱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상대를 비판하는 발언 수위가 지나쳐 양 진영의 극성 지지층이 공격성을 부추긴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그간 정치적 반대 세력을 ‘해충(vermin)’ 등으로 비유했고, 일부 이민자들에 대해선 ‘짐승들(animals)’이라고 했었다. 또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하지 못할 경우 “미국 전체가 ‘피바다(bloodbath)’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대선 때 발생한 ‘1·6 사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반대로 트럼프가 총격을 입기 직전인 7월 초 조 바이든 대통령도 유세 도중 “트럼프를 과녁 중앙에 놓아야 할 때(공세를 트럼프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발언해 ‘트럼프 총격’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 정치권 일각에선 지금의 거친 분위기를 감안할 때 11월 대선 이후 대형 폭력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해리스·트럼프 누가 승리하든 극렬 지지자들이 결과에 불복·반발하면서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이긴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이 의사당에서 난동을 부린 이른바 ‘1·6 사건’을 선동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대선 후보 생방송 토론 때 패배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그 어느 법원도 결과를 들여다보지 않았다”며 여전히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과열되는 미 대선을 두고 국제 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번 암살 시도는) 매우 우려스러운 사건이다. 폭력은 정치에 그 어떤 역할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소셜미디어 글에 “미 대선 후보를 상대로 한 치명적 공격을 저지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가 취해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를 노린 폭력에 유감을 표한다. 민주주의와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한편 지난 7월 1차 암살 시도가 트럼프 지지 표심을 일시적으로 뭉치게 했듯이 이번 사건이 유권자 표심(票心)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트럼프는 7월 총격을 당한 이후 곧바로 일어나 “파이트(Fight·싸우자)”라고 외쳐 지지층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었다. 트럼프가 다시 한번 암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지지층을 더 결집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은 이미 트럼프 지지율에 반영돼 있고 무당층과 민주당 지지자 등의 추가적인 지지를 끌어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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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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