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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다큐멘토링] 지도자가 사람 다루는 '강온전략'이란 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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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석 발행인]

조선의 요청으로 전쟁에 합류한 명군은 '갑질'을 해댔다. 한양에 도착한 진린 부대는 조선 관원들에게 폭행과 횡포를 마구 부렸다. 류성룡이 나서 "지나치다"고 말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진린을 만난 이순신은 위엄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면서 환영했다. 이처럼 지도자라면 '강온전략'을 능수능란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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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라면 다양한 상황에 맞는 전략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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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고금도에서 병력 확충과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고 있을 때였다. 20대 청년 이의온이 경주에서 고금도로 건너와 이순신 휘하의 의용 수군으로 참여해 병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틈만 나면 청년 이의온과 함께 밤을 벗 삼아 머리를 맞대고 군량미 조달을 위한 의견들을 주고받았다. 이때 이의온은 충청·전라·경상 삼도를 통행하는 선박에 '해로통행첩'을 발행하자는 의견을 냈다. 통행첩을 소지하지 않은 배는 왜적의 탐망선으로 간주해 통행을 금지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순신이 권위적인 태도로 일방적인 지시만 내렸다면 절대 나올 수 없었던 묘책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세부 실행안을 마련했다. 배의 크기에 따라 대선은 쌀 3섬, 중선은 2섬, 소선은 1섬의 수수료를 받고 통행첩을 발급하기로 했다.

해로통행첩을 적용하자 불과 열흘 만에 1만여석의 쌀이 모아졌다. 이순신의 소통 역량은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여기에 고금도를 비롯한 13개 도서島嶼의 둔전에서 생산한 작물과 소금을 팔아 군량미를 매입하면서 군량미 조달 문제는 술술 풀렸다.

군량미 걱정을 덜은 이순신은 고금도 주변 백성들의 협조를 받아 구리와 철 등을 끌어모았다. 백성들은 밥주발과 숟가락까지 제공했다. 모아진 자원으로 각종 무기도 만들어 냈다. 또한 연해 각처의 목재를 실어와 병선도 건조했다.

보화도 통제영 시절에 40여척이었던 전선 규모는 노량해전 직전까지 85척으로 늘어났다. 이밖에도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이 도착할 것에 대비해 진린 제독이 머무를 숙소와 군사들의 병영, 그리고 정박할 선창과 방파제도 만들었다.

1598년 5월이 되자 명나라 수로군 제독 진린 일행이 한양에 들어왔고, 그의 부하 장수 계금은 선발대 3200명을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했다. 한양에 도착해 선조를 만난 진린은 대뜸 "조선의 장수들 가운데 군율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혼쭐을 내겠소이다"며 시건방을 떨기도 했다.

진린이 고금도를 향해 출발할 때, 선조는 신하들과 함께 청파역까지 배웅했다. 하지만 명군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이날 진린의 부하는 군량미 조달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양주목사를 발로 차고 때렸다. 청파찰방 이상규의 목에 오랏줄을 건 채 말을 타고 끌고 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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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갑질을 부리는 진린 앞에서 강온전략을 동시에 썼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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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영의정 류성룡은 진린에게 따졌다. 그러자 진린은 되레 역성을 냈다. "너희 조선 관원들은 이렇게 해야 버릇을 고친다. 너희 놈들이 하는 일이 다 무엇이냐? 적이 오면 다 도망가고 우리 대명 군사더러 죽을 땅에 나가 싸우게 하지 않느냐." 선조의 얼굴은 어느덧 주홍빛으로 변했다.

류성룡이 한탄했다. "이순신이 또 낭패를 맛보겠군. 그가 혼자라도 적 수군을 넉넉히 이기거늘 무엇 하러 명나라에 또 청병을 한단 말이오. 진린이 이순신에게 원치 아니하는 일을 시킬 것이고 이를 거스르면 노할 것이니, 이러고야 아니 패하고 어찌하리오." 그러자 선조와 여러 대신은 "참으로 그럴 것 같소"라며 "이순신에게 미리 귀띔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578년 7월 16일, 명나라에서 파병한 절강성 수군의 호위를 받으며 제독 진린 일행이 고금도에 도착했다. 이에 앞서 이순신 제독은 영의정 류성룡이 보낸 서신을 읽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바다에서 효리(상중에 있는 사람)께선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하며 우러러 생각하오. 진린 제독이 곧 그곳에서 군진을 합하고자 하는데, 갖가지 책응과 조치 등은 잘 처리하실 것으로 믿소. 바라건대 모름지기 협심을 동력해 큰 공훈을 이룩하시오. 훈련도감의 포수 100명이 내려가는 편에 보내오니 부디 나라를 위해 몸을 보중하기 바라오."

이순신은 류성룡이 보낸 서신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간파했다. 이미 명나라 수군이 분탕질을 부린다는 소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터라 이순신은 마치 작전을 수행하듯 치밀하고 세심하게 대응했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린 일행을 맞이했다.

우선, 명군의 기질을 역으로 활용했다. 첫 대면부터 '우리는 강한 힘을 지녔으나 스스로를 낮춰 최대한 예우해준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이순신은 그동안 마련한 판옥선 80여척과 중·소선을 총동원시킨 200여척의 함대를 이끌고 바다로 나아가 학익진을 펼치며 진린의 함대를 맞이했다.

함선마다 오색 깃발을 달고 환영 예포를 천지와 바다가 뒤흔들릴 정도로 쏘아대니 명나라 수군은 첫 대면부터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를테면 확실하게 선방을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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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린은 조선 함대의 기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순신이 13척의 병선으로 300여척의 적을 물리친 명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조선 함대의 모습이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명나라 수군의 함선이라 봐야 조선의 판옥선에 견줘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주력 함선인 사선과 호선은 왜군의 세키부네보다도 못했다.

진린의 군사가 고금도의 명나라 전용 선창에 도착하자 이순신은 진린과 총병 등자룡 등 명나라 장수들을 새로 건축한 아문으로 안내했다. 명나라 병졸들에게는 계급을 따라 마련해놓은 병영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이후 통제영의 군사들이 준비했던 산해진미와 술을 내놨다. 진린은 자기네 나라에 있는 것 같다며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표시했다.

진린은 고금도에 도착하면 일단 트집을 잡아 이순신에게 모욕을 주면서 기선을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겠지만, 이순신의 잘 짜인 '명불허전' 응대와 환영식에 그럴 틈조차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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