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지난 8.18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 2기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표가 최근 중도층을 겨냥한 외연 확장에 나선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이 대표 고유의 정치적 색깔, 정책 방향보다는 다소 중도·보수화되는 경향이 엿보이고 있다.
이 대표의 최근 행보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11일 중견기업·중소기업 단체를 연이어 만난 일이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중견기업인들에게) 실제로 고용유연성 문제 때문에 되게 힘들죠? 이게 기업인 입장에서 현실적 문제일 거예요. 이게 악순환되고 있는데, 제가 볼 땐 회사는 앞으로 절대 정규직을 뽑지 않죠. 다 임시직 형태로, 기간제로 뽑잖아요. 노동자들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는 절대 정규직을 뽑지 않으니까 악착같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거예요. 안 지키면 큰일나는거죠. 다음에는 정규직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사회안전망이라고 하는 게 너무 취약해가지고 너무 불안한 거예요. 예를 들면 호주같은 곳은 똑같은 일을 할 때 임시직이 보수가 더 많다, 안정성이 떨어지니까. 같은 일을 안정적으로 하면 보수가 줄고, 불안정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추가 지급한단 말이죠. 그래서 정규직이 아니라도 불안하지 않다. 저는 이게 대타협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노동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안하고, 기업인 입장에서는 고용 유연성 땜에 힘들고. 이걸 해결해야 하는데, 결국에는 사회안전망, 내가 이 직장을 정규직이 안 되더라도, 정규직에서 배제되더라도 내 인생이 불행하거나 위험해지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게 하려면 안전망 확충이 돼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든 기업이든 그부분 부담을 늘려줘야 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고용유연성을 확보하면 생산성이 올라갈 것 아니냐. 그 중 부담 일부를 늘려도 손해가 아닌데, 그걸 서로 못 믿는 거죠. 노동자들은 유연성 확보하면 내가 곧 잘리지 않을까, 기업인들은 투쟁이 격화되고 내 부담만 늘어나는 것 아닐까 서로 불신이 있는 것이다. 이건 장시간 토론과 신뢰 회복을 통해서 타협을 해야 한다. 누군가가 중심을 잡고, 서로 불신하고 불안하지 않게 (해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갈 수 있는데 지금은 모두가 불신해서 대화가 안 된다."
이 대표가 명확하게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전제로 '고용 유연성'을 도입하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대표는 지난 2021년 7월 대선 출마선언 당시에도 "충분한 사회안전망으로 해고가 두렵지 않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보장되는 합리적 노동환경을 만들겠다"고 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 이후 지속적으로 '감세' 쪽으로 기운 사인을 내기도 했다. 이 대표는 8.18 전당대회 당일 당선 직후 한 언론 질의응답에서 "상속세 세율을 인하하는 것은 반대한다"면서도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 금액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일괄공제가 5억이고 배우자 공제액이 5억이라 10억이 넘으면 집값 초과분에 대해 세금을 44% 내야 해서 집을 팔거나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물가나 수도권 대도시 집값(상승)을 고려할 때 가족 중 누가 사망했는데 상속세 때문에 쫓겨나는 상황이 없도록 방안을 강구해야겠다"고 그는 말했다.
8월 10일 당대표 출마선언 후 한 질의응답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 문제에 대해 "시행 시기 문제를 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유예를 시사했다. 이후 8월 24일에는 KBS TV로 방영된 후보자 간 토론회에서 금투세와 관련해 "(기존 법에는) 5년 동안 연간 5000만 원, 총 2억5000만원을 벌어야 과세 대상"이라며 "이를 연간 1억 원 정도로 올려 5년간 5억 원을 버는 데 대해선 세금을 면제하자"는 구체적 청사진까지 내놨다.
종부세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8.10), "종부세든 금투세든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에 마치 신성불가침 의제처럼 무조건 수호하자는 건 옳지 않은 태도"(8.18),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한 채,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저항을 감수하면서 굳이 그렇게 (종부세 부과를) 할 필요가 있겠나"(8.30)이라고 완화 방침을 강하게 시사했다.
진보진영의 금기인 감세와 노동 유연성에 대한 언급은, 8.18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 내에서 견고한 기반을 재구축한 이 대표가 기존의 당 지지층을 넘어 중도·보수층으로의 지지 확장을 노리는 신호로 해석됐다. 아직 3년 남은 대선을 향한 발걸음이 벌써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재명 2기' 지도부 구성을 놓고 '사실상의 대선캠프'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수석최고위원에는 '이재명 대통령 집권 플랜 본부장'을 자처한 김민석 의원이 당선됐고, 당 인재위원회와 총괄특보단에 정성호·안규백 의원을 배치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인재위는 기존의 인재영입위원회를 개칭한 것으로, 인재영입위나 특보단은 당 상설조직이기는 하지만 선거 때가 아닌 '평시'에는 존재감이 크지 않은 조직이다.
특히 인재위원장이자 이 대표의 오랜 측근이고 동지인 정성호 의원이 "과장된 표현"이라고 진화하기는 했지만, 이 대표가 집권에 대비해 그림자 내각, 즉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구성을 인재위에 지시했다는 <한국일보>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인재'영입'위가 아닌 인재위인 만큼, 지난 총선 당시 당애 이미 영입된 인사들을 포함해 당이 가진 인력 풀을 최대한 활용해 대선에 대비한 포진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정 인재위원장은 '섀도 캐비닛은 과장된 얘기'라면서도 "향후 인재위의 활동 방향에 관해서 논의를 했었는데, 이 대표께서는 '당 내의 인사들도 적절하게 재배치하고 외부의 전문가들을 많이 영입했으면 좋겠다. 또 당 내외에 있는 분들이 또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 이런 취지의 말씀을 했다"고 했다. '사실상 대선행보 아니냐'는 재질문이 나오자 "정당이 (목표하는 바는) 궁극적으로는 정권 잡는 것 아니겠나. 지방선거 승리,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답해 딱히 부인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또 추석연휴 직전에는 합리적 보수·중도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 원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상돈 전 의원을 잇달아 만났다. 이 역시 중도·보수층 표심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됐다. 현재 지도부 일원인 최고위원 자리에까지 오른 한때의 '보수 여전사' 이언주 의원을 총선 전 영입해 당선시킨 것도 이 대표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추석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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