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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강남역 뒤덮은 분노의 목소리 “여가부 공석 방치하는 정부, 딥페이크 가해자들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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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군대와 직장을 파고든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 13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인 여성들은 “반복되는 딥페이크 성범죄, 국가도 공범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가와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말하기 대회 _ 분노의 불길’ 행사를 주관한 서울여성회와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서페대연) 관계자들을 포함해 총 150여명의 참가자가 자리를 지켰다.

이날 발언대로 나선 청소년 장효주양은 “서로를 의심하고 얼굴을 가리고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것이 두려워 사회적 관계망인 SNS를 걸어 잠그는 우리 청소년들 모두가 피해자”라며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은 강한 트라우마를 남겼고, 우리 사회가 병들어있다는 절망감을 줬다”고 했다. 장양은 “학교와 정부가 우리를 전혀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며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가면 벗기’와 ‘해방의 쓰레기통’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왜곡된 성문화의 가면’을 벗기겠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가면을 벗은 후, 딥페이크 성범죄의 원인이 되거나 이를 방조했던 텔레그램·언론·교육당국·경찰·국회·정부를 규탄하는 의미로 쓰레기통에 해당 피켓을 버렸다.

다음은 참가자들의 발언 전문.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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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 서울여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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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을 주관하고 있는 서울여성회 성평등교육센터장 박지아입니다.

공동행동이 현재 외치는 대표 구호는 ‘너희는 우리는 능욕할 수 없다’입니다. 이것은 역으로 그동안 사회가 피해자를, 여성을,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모욕해왔다는 말입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성차별과 여성 모욕이 극단적으로 폭력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된 지 한달여가 지난 지금 우리는 똑똑히 확인하게 됐습니다. 여성을 모욕하고 여성을 놀이감과 성폭력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을 방조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딥페이크 성범죄를 가벼운 문제로, 과장된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견뎌야 하는 문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바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방조하고 지금도 나몰라라 하고 있는 국가, 윤석열 정부가 바로 딥페이크 성범죄의 공범입니다.

어제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 “정부가 잘못했다는 답변을 듣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라며 정부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좌하고 행정부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그런 국무총리의 답변은 딥페이크 성범죄를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취임 5일 만에 서지현 전검사가 팀장을 맡았던 ‘디지털성범죄 TF’를 폐지한 것에 대해서도 유감이라는 말만 남겼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1차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7개월이나 부재한 상황에 대해서는 ‘필요성에는 동의한다고 하지만 시기를 말할 수 없다’며 역시 무책임한 발언을 했습니다. 2주 전에 딥페이크 성범죄를 마약수준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발언이 그저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회구조적 차별이 없다며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했습니다. 2023년에는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방지를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현재 7개월째 여가부 장관을 공석으로 고집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인사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반인권 인사를 올리고, 독립기념관장에는 친일인사를 올리고, 고용노동부장관에는 반노조 태극기 인사를 올리는 인사를 강행하면서 여가부 장관은 임명조차 하치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 안전에는 무관심하고 딥페이크 성범죄에는 무책임한,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정부가 있기에 가해자들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잠깐만 피하면 안 잡힐꺼라고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비오는 날 거리에 나섰습니다. 정부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리고, 반성하고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모였습니다. 정부조차 책임지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피해자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예전에 정부가 출산지도를 만들어서 여성들을 출산의 도구처럼 취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여성들은 ‘너희가 아무리 그래봐라. 우리가 억지로 아이를 낳는가 짬뽕을 사먹지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도 이렇게 외치려고 합니다.

“너희가 아무리 우리를 모욕하는 사회여도, 여성을 모욕하고 피해자에게 어떨 수 없다고 말해도, 그래봤자 우리가 쫄줄 아냐. 우리가 느끼는 것은 수치심이 아니라 분노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분노의 불길을 만들어 딥페이크 성범죄를 가능하게 만든 성차별 사회와 범죄를 방조한 공범인 윤석열 정권을 태워버리고,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박가현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고려대학교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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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현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고려대학교 지회장. 서울여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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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에서 고려대 지부장을 맡고 있는 24살 대학생 박가현입니다.

지인의 불법합성물을 제작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이 대학별로 전국에 70여개가 운영이 됐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제가 다니는 학교, 고려대학교도 있었는데요. 이상하리만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이 대규모 성범죄 사건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는 친구를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들었냐,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보면 너무 충격 먹었다,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걱정되어서 사진 몇 장을 내렸다, 라고는 말을 하지만 그러고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다음 주제로 대화는 넘어갔습니다.

제 친구들이 특별히 여성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 아니면 공감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반복되는 무력감이 학습돼, 거대한 구조적 힘에 압도돼, 차마 이걸 내 문제라고 생각하면 느껴질 공포감을 회피하고자 생긴 외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이들에게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대학에서 나오는 유일한 여론이자 목소리는 ‘일부 남성의 문제로 성별 갈등을 일으키지 말아라’, ‘호들갑 떨지 말아라’라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의 좌절감을 주는 게시글들뿐입니다.

외면할 수밖에 없고, 혼자 염려하다 문제를 잊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곁’입니다. 이건 우리 여성들의 문제가 맞고, 같이 행동할 수 있다고, 제발 외면하지 말고 성별 갈등에 휘말릴까 걱정하지 말고 나와달라고,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어 두었으니 함께 말하자고.

저는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이름으로 공동행동에 함께 하고 있는데요, 이 공동행동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이 공동행동이 8년 전과 같이, 다시 여성들에게 눈을 뜨고 나올 수 있게 하는 용기이자 여성운동의 저수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제 고려대에서는 학내인권단체들과 함께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오픈마이크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총 다섯 시간 동안 규탄 대자보에 대한 연서명을 무려 300명이나 받았습니다. 저는 어제 받았던 서명들에서, 캠퍼스에서 처음 보는 수줍게 연대하러 오는 수많은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됩시다! 이 문제로 인해 걱정하고, 두려워 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공동체가 됩시다. 세상의 변화가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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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가 지난 13일 주관한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말하기 대회 _ 분노의 불길’ 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여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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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현아라고 합니다. 오늘 발언을 위해 기사를 쭉 훑어보았습니다. 오늘 올라온 기사에 미디어오늘 이슬기 기자는 최근 딥페이크를 취재보도한 기자들이 겪고 있는 고민을 공유했습니다.

기사에는 최근 “기자들도 당해봐야”한다며 여성 기자합성 텔레그램 방이 생겼고 그 방에서 동료 남성 기자들의 성폭력 가해 상황도 지켜봐야 했다는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 딥페이크에 대한 “어린 남성들의 철없는 장난이다” “어차피 진짜가 아니잖아”라는 반응들에 어떻게 내용을 정확하고 맥락있게 전해야 할지 고민이다 라고 했습니다.

제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하여 기사를 먼저 찾아본 이유는 딥페이크 사건이 수면 위로 올랐을 때 ‘새롭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얼굴 합성을 통한 지인능욕형 성폭력은 이미 문제화 된지 오래이고 ai가 상용화 순간부터 딥페이크 범죄는 이미 충분히 예상가능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새롭지 않다면 언제부터 새롭지 않았는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다 “10대 남성들의 단순한 놀이였다”고 말한 것에 제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다들 ‘야메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초등학교 남학생들에게는 통용되던 장난이었어요. 저희반에도 만연했고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같이 웃은 적도 있지만, 그 말은 어쩐지 찝찝함과 은근한 굴욕감을 느끼게 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야메떼는 ‘그만해’라는 말입니다. 성관계에서의 ‘그만해’는 강간을 의미하죠.

저는 그들과 같이 놀고싶었어도 같이 놀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딥페이크라는 기술이 발전해도 저는 그들과 함께 놀이를 즐길 수 없습니다. 혹여 제가 복수심에 어떤 남성을 능욕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떠한 굴욕도 되지 않습니다.

이 놀이는 전복될 수 없는 놀이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강남역 앞에서 외친 “여자라서 죽었다”는 말, 여성이라서 딥페이크 당한다는 말이 분명해집니다.

야메떼에서부터, 딥페이크까지 이어져온 그 놀이의 목표는 ‘굴욕감’이었습니다. 권김현영 교수는 “불법촬영이라는 말로는 더이상 담기지 않는다. 딥페이크 포르노 대량 제작 사태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포르노’ 라는 말은 감정적 연결보다 앞서는 기계적 흥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여성을 상호작용하는 인간으로서 보기보다 흥분을 주는 놀이, 기계 대상으로서만 읽고 여성으로부터 인간성을 빼앗아 굴욕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모습 자체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이 굴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보여졌을 때 추락하는 쪽이 나라는 것이 굴욕적인 것입니다. 제 위치가 그 정도라는 것을 느끼는 이 굴욕감은 가짜가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구조적 성차별처럼, 딥페이크로 인한 성폭력은 진짜입니다.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함께 공유되는 지인능욕은 그 자체로 괴롭힘이고 폭력입니다.

그리고 피해자도 진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폭력이 고발된 이후에도 당연히 잘 살아가야 합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아주 오래된 굴욕을 넘어,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 오래된 굴욕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분노하고 깨부시고 바꾸어야 합니다.

몇년 전,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 일베를 한다고 자랑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2017년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 친구는 일베라는 낙인을 숨기기 위해 자취를 감췄고, 학교에선 성폭력 교수에 대한 공론화가 이어졌으며 평등한 교내를 만들기 위한 모임들이 이어졌습니다.

마녀사냥으로 페미가 숨는 지금의 시대 이전에, 일베가 숨는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시대를 우리는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여야만 딥페이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모든 공간에서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저 이미지나 ai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라고 크게 외쳐야합니다. 강남역, 보신각, 학교, 국회 여기저기를 차지해야합니다. 이렇게나 우리가 크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께 강한 힘을 느끼고 저도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긴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단테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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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가 지난 13일 연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말하기 대회 _ 분노의 불길’에서 참가자들이 정부를 향한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여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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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에 사는 20대 여성입니다. 저는 학교 남학생들의 성희롱 문화와 그로 인해 제가 중학생 때 당했던 일, 현재 학생들이 당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학창 시절 남자아이들의 성적인 말과 행동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아실 겁니다. 남학생들은 학교 복도에서 성적인 말을 외치고 다녔고,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습니다. 여학생들에게 심심찮게 성희롱 발언을 던졌고, 아무도 그걸 문제 삼지 않으며 무시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동급생 남학생들은 몇몇이 무리를 지어 제게 성희롱적 발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애들은 밤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제 뒤를 졸졸 따라왔습니다. 반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저 무시했습니다.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자애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고 제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 하더군요. 아무도 절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버티다가 시간이 흐르고 저는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창에게 ‘걔들이 한 성희롱 때문에 남자가 꺼려진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걘 ‘네가 겪은 일은 알지만, 당시 남자애들에게는 과시의 한 형태였다. 하나의 문화였다.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오히려 그 애들을 옹호하더라고요. 네, 누구도 제가 당한 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만 당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제게 상처가 되지 않았단 말은 아닙니다. 그 남학생들이 잘못하지 않았단 말도 아닙니다.

저는 다음 세대의 여자 아이들이 제가 겪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고, 학교에선 여학생들을 억압하며 미온적 대처만 할 뿐입니다. 학교가 대처할 타이밍을 놓친 사이, 남학생들은 학습해 갑니다. 아, 여학생들을 성희롱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 내가 이런 일을 해도 내게 불이익이 없구나. 이렇게 범죄를 배워갑니다. 딥페이크에 대해 농담하며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닙니다. 여학생들도 알아갑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해도 나만 힘들어지는구나. 학교는 날 지켜줄 생각이 없구나. 이렇게 무기력과 불신을 습득합니다. 그리고 입을 닫습니다.

주변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당사자들의 허락을 구하지 못해 공개할 순 없지만, 여학생이 학교를 어떻게 불신하게 되는지. 왜 학교에 자신의 일을 말하는 걸 포기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몇몇 학생은 성범죄를 당했을 때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에서 선생님을 아예 제외하기까지 합니다. 학교에 보호를 요청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남학생들은 더욱더 여학생들을 억압하고 다닙니다. 그건 일종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소수의 여학생을 제외하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쟤들 또 저러네 어휴’ 하고 넘어갈 뿐입니다. 소수의 학생도 약간의 불편함, 불쾌함은 느끼지만. ‘원래 저런 애니까. 쟤들이 어떻게 보복할지 모르니까. 무서워서. 따돌림 당할까 봐. 왜 너만 유난이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침묵합니다. 이 상황에서 말을 꺼내는 용감한 학생은 정말 박수를 받아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이번 딥페이크 사건은 누구의 책임인가요?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남학생 교육이 실패했음을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적어도 제 뒤에 올 모든 여학생이 침묵, 무기력, 불신을 배우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장효주 청소년


8월 25일 저녁 친구들과 함께 있는 카톡방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다들 빨리 얼굴 올라간 사진을 지우자라는 이야기와 함께 친구들이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기사를 올려줬습니다. 친구들은 인스타 계정을 비공개했고, 카카오톡 등에 올렸던 사진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 계정이 불안정한 친구들도 여러 번 이중보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얼떨결에 인스타 계정을 이중보완하고 얼굴이 나온 사진들을 sns에서 내렸습니다. 피해학교 명단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피해학교 명단에 재학중인 학교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오히려 찾아보길 꺼려 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가담자 규모가 중복 포함해 22만이란 기사를 봤을 때 저는 제가 숫자를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여러번 읽고 또 읽어도 22만이란 숫자는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이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지도를 제작한 것을 보았습니다. 전국에 피해자가 있는 곳이 빨간색으로 표시돼있었는데 지도는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마치 피해자들의 피눈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여자중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 갔을 때, 반 친구들의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 숫자가 과장됐다. 오보이다. 혹은 그 중 한국사람은 몇 명 안된다 등 너무 지나친 공포를 조장한다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와 제친구들은 일단 사진을 내리고 계정을 잠궈뒀습니다. 과장됐다 라고 주장하는 친구들도 사실 사진을 지우고 계정을 닫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국민의힘 이준석 국회의원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발언을 하고 텔레그램을 규제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게 그 정치인의 말처럼 단순히 과장된 일일까요? 인권에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 정치인과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분들에게 묻고싶습니다. 저는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을 때도 이렇게 교육청 앞에서 인권의 의미에 대해 되묻곤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인권의 의미는 존엄성, 자유, 평등을 바탕으로 개인의 존중과 보호를 목표로 한다고 했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옆에 있는 또래 남성 친구를 못 믿고 얼마든지 그 친구가 가해자가 되고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상은 무엇입니까? 내 얼굴과 인격이 누군가에게 능욕의 대상이 되고 조리돌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자님들이 피해자를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와 간접적인 피해자를 나누고 싶은 것 인가요? 우리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빼앗겼습니다. 서로를 의심하고 얼굴을 가리고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것이 두려워 사회적 관계망인 sns를 걸어 잠그는 우리 청소년들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경제 책에서 본 적 있습니다. 저신뢰 사회가 개인의 건강과 국가 전체 경제에도 안좋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그토록 목매는 국가 경제에도 저신뢰 사회는 악영향을 줍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은 저와 친구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겻고,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 라는 절망감을 주었습니다. 학교가 정부가 우리를 전혀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해줬습니다. 대책을 마련해주십시오. 경쟁에 찌들어 벼랑에 몰려있는 청소년들의 인권마저 내팽개치면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한다는 거짓말을 멈추십시오. 이상입니다.

강나연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 동아리 ‘서페대연’ 운영위원


경향신문

강나연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 동아리 ‘서페대연’ 운영위원. 서울여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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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서페대연의 운영위원 강나연입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지 2주가 다 돼가고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단순히 미성년자들 사이에 아는 사람의 얼굴로 가짜 영상물을 합성하는 놀이가 퍼져있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착취물을 미성년자를 포함하여 누구나 쉽고 빠르게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문제입니다. 성착취 문화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사회의 신뢰기반을 파괴할 동안 국가가 무능하게 지켜 보고만 있었던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성 인식과 사회 신뢰가 아래로부터, 뿌리부터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로 드러난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피해가 과장됐다고 말합니다.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합니다. 차라리 과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여성도 성착취물로 도구화되지 않는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라고 믿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제 구속된 30대 가해자 1명이 제작한 성착취물이 128개입니다. 직장 동료, 후배, 동문, 미성년자까지 24명의 피해자를 만들어냈고, 교환을 목적으로 성착취물을 9700개 수집했습니다. 한 사람이 수집할 수 있는 성착취물이 1만개에 가까운데, 그 중에 피해자는 몇 명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의 사태가 과장입니까? 심지어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조사한 대로, 전세계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한 피해자 중 53%가 한국인입니다. 외신은 한국이 성착취물을 생성하고 유포하는 진원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될 때까지 국가가 대책 없이 손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믿고싶지 않은 현실입니다.

20대 대학사회의 일원으로서 더욱 마음이 착잡한 것이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성범죄에 단호하게 대응할 수 없는 중고등학교 교실과 대학 사회의 문화입니다. 외모 품평을 성차별이라고 말하고, 여성혐오 발언이 불편하다고 말하면 순식간에 ‘페미’라며 낙인 찍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집단적으로 사이버 불링을 합니다. SNS 개인 계정으로 찾아와 욕설을 하거나 전화하며 괴롭히기도 합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이 고발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너무도 쉽게 피해자를 의심하고 피해자 때문에 가해 교수가 불쌍하다는 여론이 형성됩니다.

지난 5년간의 백래시 속에서 ‘여성혐오 하지 말라, 외모 품평 하지 말라, 성차별 하지 말라, 성폭력 하지말라’는 여성들의 입을 막아둔 동안, 한쪽에선 너무나 자유롭고 광범위하게 디지털 성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까지 여성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여성들이 자신의 자존심과 존엄성이 짓밟혀도 ‘걔들은 원래 그래’라고 하며 새로울 것 없다며 애써 체념하고 살아야 합니까?

대학에 공동체라는 것이 사라진지는 오래입니다. 대학 사회라는 말도 어색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대학이라도 내가 밥 먹고 놀고 떠드는 사람은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나도 모르게 나를 장난감 취급할거라는 불안은 없어야 합니다. 어떤 대학생은 딥페이크 사건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원래 그럴 것 같아서 새로울것도 없다고요. 분노스럽지도 않다고요. 이미 대학은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대학 공간을 쟁취합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만들기위한 싸움을 위해 대학생 공동행동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활보할 공간을,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 것입니다. 대학생 공동행동으로 대학사회를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성평등한 공간으로 만듭시다.

대학사회와 중고등학교를 폭력과 차별의 공간으로 둔 국가를 규탄합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분노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가해자들 뿐만 아니라 국정 책임자들도 마찬가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끈질기게 요구합시다. 최근 발의된 딥페이크 차단 6법, 일명 서지현법이 어떻게 국회에서 통과되는지 지켜보고, 정부가 10월까지 마련하겠다고 한 범정부 종합대책이 얼마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종합대책인지 지켜봅시다. 다음 주, 강남역 7시에 이 자리에서 우리 다시 모입시다. 감사합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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