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8 (수)

교제살인 통계, 성별 구분 필수…‘젠더화된 폭력’ 확인해야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④ 여전히 피해자를 탓하는 ‘당신’ 에게

경찰, 작년 첫 통계…전체 살인 사건의 24%

성별 구분 없어 여성의 위험은 파악 불가

교제 폭력, 교제 살인 사건이 잊을 만 하면 크게 보도되지만 여전히 국내에선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경찰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 규모를 처음으로 집계했다. 2023년 발생한 살인(미수 포함) 사건의 피의자는 778명이다. 이중 192명(24.6%)이 전·현 배우자와 전·현 애인, 사실혼 배우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이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 규모를 파악한 건 처음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 의해 얼마나 죽을 위험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성별 구분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엔(UN) 경제사회국 자료를 보면 다수의 살인 사건 피해자는 남성이지만 가해자를 친밀한 파트너로 좁히면 80% 이상의 피해자가 여성”이라며 “이는 ‘젠더화된 범죄’”라고 말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경찰은 가장 중요한 성별 구분은 뺀 반쪽짜리 통계만 내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과 최 처장을 인터뷰했다.

경향신문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왼쪽)과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이 지난달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교제폭력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경찰이 집계한 통계의 의미를 어떻게 보나.

김효정 = 선행 피해를 체크한다는 것이 추가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경찰에서 노력을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들인 품에 비해 결과가 너무 빈약해 아쉽다. 기본적으로 성별 통계가 안돼 있고 복합 피해인지, 배타적으로 체크한 것인지 근본 내용이 없다.

최선혜 = 경찰 내부에서 이 통계의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경찰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 어느 단계에서 놓쳤는지, 어떤 지점을 포착하지 못했는지 파악하겠다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신고는 어떤 건으로 들어왔고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되어야 한다. 그를 통해 현재 수사 단계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법·제도적으로 어떤 한계가 있는지 봐야 한다.

-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기준으로 직접 피해를 분석해 15년째 ‘분노의 게이지’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23년 친밀한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8명, 위협을 겪은 여성은 최소 311명이었다.

김효정 = ‘분노의 게이지’는 보도된 살인 사건을 한땀 한땀 작업한 결과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이 빠지게 되니 이 수치는 과소적으로 추정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의지를 가지면 사실 연간 800여건인 살인 사건 중 여성이 살인 피해자인 경우를 전수조사하기는 어렵지 않다. 젠더 기반 폭력의 예방과 대응을 이야기할 때 가장 기초적으로 구축되어야 하는 게 통계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실태와 현황에 대한 파악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엔(UN)과 국제기구에서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기본적으로 성별 통계를 내야 한다고 한다.

- 김 위원은 2022년 여성폭력 통계 집계 작업에도 참여했다.

김효정 = 2022년 여성폭력 통계는 여성가족부, 법무부, 대검찰청 등에 흩어져 있던 통계를 발생 피해 현황, 피해자 보호 지원 등으로 묶어서 집대성한 것의 의미가 있다. 문제는 다음 단계 논의가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피해자 보호 지원 관련해서 성폭력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에게는 주거 지원 제도가 있는데 젠더 기반 폭력 피해자 주거 지원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다. 그럼 이제는 관련 통계 생산을 하자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어떤 통계는 생산은 되는데 성별 분리가 안 되어 있어 의미가 적을 수 있다. 그럼 성별 분리 통계를 내자는 식으로 가야 한다. 그 논의로 가고 있지 않은 게 문제다.

- 교제 폭력, 교제 살인이 다른 범죄에 비해 덜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비판이 있다.

최선혜 = 너무 많이 죽는데 위기감이 없다. 우리 사회는 여성단체가 10년 넘게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이틀에 한 번 죽는다는 식으로 발표해도 중요하게 보질 않는다.

김효정 = 아이가 학교에 안 나온다고 하면 교육부에서 바로 전수조사를 하지 않나. 지난해 여름 연이어 무차별 범죄가 벌어졌을 때 경찰은 탱크도 동원했다. 그런데 여성이 이렇게 많이 죽고 계속 문제제기가 있는데 이렇게까지 안 움직일 수가 있나 싶다.

경향신문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이 지난달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최선혜 =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걸 매우 싫어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교제 폭력 사건이 나와도 가해자가 이상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피해자가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처리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남자가 죽였어’라고 한다면 개인에 대한 비난이 되고 개인이 악마화되고 끝난다. 구조적인 문제로 이야기해야 성별 대결로 가지 않게 된다.

김효정 =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합의가 있으면 중간에 부침이 있어도 계속 그쪽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 구조적인 젠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부터가 근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다. 그럼 문제는 개인화되고 파편화되고 가해자의 악마화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한국은 제도는 다 갖춰져 있다. 해외에서 성범죄 대응 제도를 배우러 올 정도로 잘 되어 있다. 문제는 ‘관점’이다. 부처별로 대응 계획은 매우 많은데 사실 살펴보면 국가적으로 젠더 관점이 없다.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합의가 없으니 역고소 등에 공포가 있는 거다. 여성가족부는 있는데 남성가족부는 왜 없느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아직도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 부재’에 여가부의 위치가 너무 애매하진 것도 영향이 크다. 6월 말 교제 폭력 대책 정리할 때도 여가부가 ‘없는 살림에 갖고 나올 수 있는 젓가락을 다 갖고 나왔다’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내놓았지만 사실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거다.

- 수사기관에서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해 보인다.

최선혜 = 수사기관은 일반 국민보다는 인식 수준이 높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보다 인식 수준이 낮을 때다. 수사 기관이 피해자에게 ‘네가 그때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어야 한다’고 하면 법적 지식이 부족할 수 있는 일반인은 자기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수사관들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너 지금 무척 위험하고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피해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범죄자들과 동등하게라도 처벌을 하라”


- 친밀한 관계에서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를 가중 처벌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효정 = 거제 사건은 만약 묻혔다면 상해치사가 됐을 거다. 살인 사건으로 안 잡혔을 것이란 뜻이다. 가중처벌 얘기가 나오지만 ‘모르는 사람들끼리 벌어진 사건’ 만큼만이라도 처벌해줘야 한다. 가정폭력의 경우 가정보호 사건으로 처리되면 전과도 안 남는다. 피고인을 상담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해주고 피해자가 처벌 불원한다면 다 들어주는데 이렇게 처리되는 범죄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밖에 없다.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에서 ‘가정 보호’보다 ‘피해자 보호와 안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부터 안 된다.

- 교제폭력 관련 입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이 각기 다르다.

최선혜 = 가정폭력처벌법에서 대상자만 확대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보니 그런 방식의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가정폭력처벌법이 제대로 작동 안 하는 부분에 대해서 개선이 먼저 되어야 한다. 또 법들이 너무 쪼개져 있다.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등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현장 경찰들은 응급조치 등을 판단할 때도 중복되는 것이 많아 혼란스러울 수 있다. 친밀성 때문에 처벌이 잘 안되는 문제와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해야 하는 부분을 통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 틀에서 교제 폭력을 어떻게 법적으로 규정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효정 = ‘가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각보다 너무 강해서 어려움이 있지만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을 전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교제폭력 대응이 우선 급하니까 교제 폭력을 법 안에서 규율하도록 하고 처벌 불원 조항 없애는 논의를 하면 된다. 다른 한쪽에서 전면 개정 논의를 겸하면서 말이다. 여러 방법이 가능한데 지금 거기까지 건드리기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것 아닌가.

경향신문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달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A는 사귄다고 하는데 B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며 교제 관계를 정의할 수 없다는 얘기를 계속 한다.

김효정 = 정말 문제다. 사적인 문제고 내심의 영역이라 어렵다는 거다. 근데 다른 나라들은 교제 관계를 정의하고 있다. 영국은 친밀한 관계를 맞은 사람, 미국 연방법은 친밀하거나 로맨틱한 관계 등으로 정의한다. 관계와 상호작용의 빈도, 주변 사람이 얼마나 아는지, 서로 얼마나 헌신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 거다. 또 전·현 교제관계 뿐 아니라 ‘교제 등 친밀성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과정에 있는 관계’, ‘일방적인 친밀한 관계의 형성을 요구하는 관계’ 등 다양한 친밀한 관계의 맥락이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국내에서도 사실 내심의 영역을 법이 판단한다. 의도를 갖고 죽이면 살인이고 의도 없이 사람이 죽으면 상해치사인 것 아닌가.

법이 가정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전근대적 인식이 사실 있는 거다. 왜 교제관계 정의가 어렵냐면 형사 사법기관이 편의를 따르고 있어서다. 피해자 관점으로 보지 않아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판단하는 편리한 방식으로 가다 보니 법률혼 아니면 사실혼이라는 구분을 넘지 못하는 거다.

신고 7만건 - 검거 1만2000명 - 구속 1.8%


- 교제폭력 관련 신고는 계속 늘고 있는데, 검거된 사람은 신고 수에 훨씬 못 미친다. 사법 처리된 비율은 더 적다.

최선혜 = 2022년 기준 교제폭력 112 신고 건수는 7만 건인데 검거 인원은 1만2000명으로 확 줄어든다. 폭행, 상해, 협박 등 혐의에서 처벌 불원되는 거다. 피해자는 여성이 많지만 쌍방으로 엮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사법 처리 현황으로 보면 구속 비율이 1.8%밖에 안 된다. 가정폭력은 3.6%, 성폭력 3.6%, 스토킹 3.7%다. 검거해서 구속되는 비율이 대략 4%라면 누가 신고하겠는가. 피해자는 사회 시스템에 믿음이 있을 때, 사회 시스템이 나를 지켜줄 것이고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이 덜할 때, 그래서 나에게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신고한다. 그럼 이를 뒤집으면 왜 신고하지 않는지 나온다.

- “왜 헤어지지 않았느냐”고 여전히 피해자에게 묻는다.

김효정 = 이제 가정폭력은 범죄라는 인식이 조금 생겨났다. 피해자가 헤어지지 못해 문제가 벌어지면 아이도 있고 복잡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를 해주기도 한다. 반면 교제폭력 피해자들한테는 ‘왜 헤어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젠더 기반 폭력의 맥락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에도 여성 중심 커뮤니티에서는 안전 이별 이야기를 많이 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를 알고 있다.

- 2030세대 여성들이 원하는 정책으로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주요하게 올라온다. “죽을 수 있는데 연애와 결혼을 어떻게 하느냐”는 목소리도 크다.

김효정 = 초저출생 현상에 대해 인구학자, 사회학자들이 보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사회 불평등으로 모아지고 있다. 성평등은 이러한 인구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열쇠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고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절대 성평등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성별화되어 있다. 여성들이 범죄 피해에 대해 두려움이 큰 사회라는 건 성평등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지표다. 젠더 폭력과 초저출생 문제를 연관시켜 보는건 굉장히 타당하다. 젠더 기반 폭력이라는 관점을 잘 세우는 것부터 시작이다. 한 군데 물 새면 조금 수리하고 또다른 데 물 새면 또 수리하는 식으로 할 게 아니라 관점을 잡고 구조를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임아영 젠더데스크 겸 플랫팀장 layknt@khan.kr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임아영 젠더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해병대원 순직 사건, 누가 뒤집었나? 결정적 순간들!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