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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매경춘추] 은퇴와 디지털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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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미국에서 60대 이상 노년층의 '인공지능(AI)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 전역에서 노인센터를 중심으로 AI 강좌가 크게 늘고, 60대 이상 은퇴한 어르신들이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기술을 배우려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새로운 기술을 장착한 신문물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배울 것이 점점 더 늘어나니, 오늘날 나이 든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30여 년간 공무원으로 일한 후 감사하게도 새로운 조직의 기관장으로 일할 기회를 얻어 계속 일하고 있지만, 나에게도 은퇴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선후배, 동료들이 잇달아 정년퇴직했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나도 현 직책의 임기가 끝날 때쯤 어떻게 이후 삶을 설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늘 마음 한쪽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은퇴가 낯설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늘 은퇴를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나는 10년 단위로 은퇴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 직장생활 10년 차 때, 은퇴 후 남편과 트레킹 여행을 꿈꾸며 버킷리스트를 만들던 게 그 고민의 시작이었다.

20년 차쯤엔 정부 부처들이 세종과 오송으로 이전하면서 명예퇴직의 가능성과 나의 진로를 저울질하며 은퇴를 깊이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는 서울과 오송을 오가며 출퇴근하느라 몸이 힘든 상황에서도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다. 이후 꾸준히 노력해 전문가이자 리더로서 인정받으며 30년 차가 됐고, 다시 퇴직에 대한 고민이 피어오를 때쯤 코로나19 팬데믹이 들이닥쳤다. 당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면서 은퇴에 대한 개인적 고민은 잠시 지연되었으나, 엔데믹을 맞으며 나 또한 퇴직과 노년에 대한 고민을 재개했다. 그 끝에 두 번째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10년 단위로 3번, 은퇴에 대해 깊게 고민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체감했다.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100세 시대, 평생 현역 등…. 시대가 변하며 은퇴에 대한 키워드도 계속해서 바뀌었다. 나는 점차 은퇴를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로 여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려면 세상이 변하는 방향, 속도, 흐름을 끊임없이 좇으며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평생 일터에 매몰되어 살다가 퇴직하면 마치 어린아이가 되어 세상에 내몰리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조직에 속한 존재로 살다가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온전히 독립된 존재로 세상 앞에 오롯이 서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빠르게 발달하는 기술 변화로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한다.

미국 노년층의 AI 공부 열풍이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의 적극적이고 열린 자세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퇴를 위해선 다른 어떤 독립보다도 '디지털 독립'이 중요한 것 같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혀 잘 활용하겠다는 열린 마음가짐만으로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준비가 시작된 것이리라. 자, 은퇴를 앞둔 모든 이들이여.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켜고 AI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박인숙 한국규제과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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