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 제주소주 품고 소주시장 진출
하이트진로·롯데칠성과 3파전 기대감 높여
제주소주 규모·영향력 고려시 단기간 내 판도 변화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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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 제주소주 인수…신세계, 수년간 적자 사업 정리
12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의 자회사인 오비맥주는 신세계그룹의 주류 계열사인 신세계L&B가 운영하는 제주소주를 인수·합병한다. 오비맥주는 제주소주의 생산 용지를 비롯해 설비, 지하수 이용권 등을 양도받아 소주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구체적인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제주소주는 2011년 설립된 제주 향토 기업으로 2014년 '올레 소주'를 출시하며 소주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6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이마트에 인수됐고, 이듬해에는 올레 소주를 '푸른밤'이란 브랜드로 재단장해 출시했다. 푸른밤은 출시 4개월 만에 300만병을 판매하는 등 초반 성적은 나쁘지 않았으나 '참이슬'과 '처음처럼' 등 기존 선두 제품군의 시장지배력이 워낙 견고했던 탓에 소비자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제주소주의 '푸른밤' |
결국 제주소주의 영업손실액은 이마트가 인수한 첫해인 2016년 19억원에서 2020년 106억원을 불어나며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졌고, 유사 사업 부분을 통합해 효율적으로 사업을 관리하겠다는 회사 판단하에 2021년 3월 신세계L&B에 흡수 합병됐다. 신세계L&B는 인수 이후 푸른밤 생산을 중단하며 국내시장에서 철수했고,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제주소주 공장에서 과일소주를 위탁생산해 동남아 등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반전을 이뤄내지 못하며 사업 개편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부상했다. 신세계L&B는 지난 6월 제주사업소를 물적 분할해 제주소주를 신설회사로 설립했다. 주류 제조 관련 사업은 제주소주로 넘겨 손을 떼고, 기존 주류 수출입과 도소매업에 집중해 사업 효율화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신세계L&B 측도 "소주 등 주류 생산과 제조 등과 관련한 모든 사업의 분리를 통해 기존 사업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할 목적에 관해 설명했다. 당시 업계는 신세계L&B의 제주소주 분할이 기존 와인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대외적으로 명확히 한 것인 만큼, 제조 중심의 제주소주 매각을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분할 이후 약 두 달 만에 새 주인을 맞게 됐다.
오비맥주, 소주판 흔들까…"단기간 내 판도 영향 어려워"
국내 최대 맥주 제조사가 소주사업에 진출한 만큼 일각에서는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와 함께 국내 소주시장이 3파전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인수가 단기간 내 소주시장 판도에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주와 맥주 시장의 특성에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 '참이슬 후레쉬' |
일반적으로 소주는 식당과 주점 등이 주력인 반면 맥주는 가정시장 내 소비가 더 높은 편이다. 이는 소주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트진로가 맥주시장에 연착륙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소주 브랜드의 강력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소맥' 영업과 마케팅을 진행해 비교적 용이하게 유흥시장 내 자사 맥주를 노출할 수 있었고, 이렇게 확보한 소비 경험과 인기가 가정시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오비맥주는 이 같은 영업 전략을 구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맥주와 소주 시장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하이트진로의 소주시장 내 영향력이 오비맥주의 맥주시장 내 영향력보다 압도적이고 강력하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오비맥주가 짧은 시일 내 게임 체인저가 될 만한 소주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쉽지 않다는 평가다. 제주소주의 생산설비 등이 기존 선두 사업자와 경쟁할만한 수준이 아닌데다, 제주소주에서 선보였던 푸른밤 등이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브랜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반드시 제주에서 생산돼야 하는 제주 거점 제조면허여서 전국구 소주로 키우기 위해서는 물류비용 등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원활한 유통을 위해 병입 공장 신설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에 앞서 용기 주입면허도 추가로 취득해야 한다.
오비맥주의 대표 브랜드 '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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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도 이를 의식한 듯, 당장 국내 소주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목표보다는 제주소주를 대표 맥주 브랜드인 '카스'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더욱 다양한 주류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또 제주소주가 수출에 집중해 온 브랜드인 만큼 제주소주의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해 카스 수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자범 오비맥주 수석부사장은 "오비맥주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맥주 경험을 제공하는 데 전념하는 동시에 이번 인수를 통해 카스의 수출 네트워크 확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비맥주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신규 발급이 이뤄지지 않아 희소성 있는 소주 제조면허를 확보하면서 향후 다양한 기회를 모색할 수 있게 된 점이 긍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비맥주가) 현재 소주시장이 독점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해 기존 규제의 개선을 추진하는 등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구 수석부사장이 "이번 인수는 오비맥주의 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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