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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유세 지루해" 해리스 도발에 넘어간 트럼프, 냉정 잃고 거짓 주장 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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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10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미국 대선 후보 방송 토론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침착함을 유지한 반면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도발에 넘어가 흥분한 태도로 거짓 주장을 쏟아내며 유리한 주제에서조차 승기를 잡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오후 9시부터 미 ABC 방송 주최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에서 약 1시간 45분 진행된 경제·임신중지·이민·대외 정책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정책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불리한 주제로 꼽히는 남부 국경 통제 관련해 현 정부가 추진한 국경 보안 법안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막았다고 답변한 뒤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에 여러분을 초대한다"며 "여러분은 그의 유세에 참여한 대중이 지루함과 피곤함 탓에 금세 떠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자극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발끈해 "우린 정치 역사상 가장 크고 놀라운 집회를 연다"고 반박하며 해리스 부통령이 유세에 참여하는 군중에 돈을 지불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

이어 이민 문제에 대해선 거짓 주장과 혐오 발언을 반복해 스스로 신뢰를 깎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선 (이민자들이) 개를 잡아먹고 있다. 고양이도 먹고 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잡아먹고 있다"는 소셜미디어(SNS)에 퍼진 이민자 혐오를 조장하는 거짓 소문을 언급했다.

이에 사회자가 ABC 취재 결과 해당 소문에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개가 잡아먹혔다고 말하는 사람을 봤다"며 주장을 정정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자 수백만 명이 "정신병원과 감옥" 출신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하고 "수백만 명의 범죄자"가 국경을 넘어와 "이민자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혐오를 조장했다.

프레시안

▲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미 ABC 방송 주최로 대선 후보 토론회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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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유리한 주제인 임신중지권 보호 관련해 열정적으로 발언하며 강점을 드러냈다. 해리스 부통령은 임신중지권 관련해 "전국의 여성들과 얘기를 나눴다"며 "12, 13살 근친상간 생존자가 강제로 임신을 유지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의회가 (임신중지권을 보호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복원하는 법을 통과시키면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랑스럽게 법안에 서명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 미국에서 임신중지권이 크게 후퇴하게 한 연방대법원 대법관 3명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철회할 의도로" 임명했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임신중지 금지령"이 강간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까지 유지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도널드 트럼프는 여성에게 여성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해 민주당 쪽이 "출생 뒤 처형, 더 이상 임신중지가 아닌, 처형까지 괜찮다고 한다"는 거짓 주장을 내놨다. 이에 사회자가 아이가 태어난 뒤 살해하는 것이 합법인 주는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연방대법원 결정을 옹호하며 임신중지권 관련 입법을 각 주에 맡기는 현 상태를 옹호헸다. 그는 "나는 임신중지 금지에 찬성하지 않는다"면서도 연방 차원 임신중지 금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했다.

두 후보의 견해 차이는 대외 정책 기조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현재 치르고 있는 전쟁에서 승리하길 원하냐는 사회자 질문에 즉답을 피하고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고만 했다. 사회자가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것이 미국에 가장 이롭다고 보냐고 재차 묻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 미국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막지 못했다고 비난하며 "나는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와 푸틴(러시아 대통령)을 잘 알고 좋은 관계"로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해리스 부통령은 "당신은 조 바이든이 아닌 나와 경쟁하고 있다"고 상기시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태도는 "포기"이며 "그건 미국인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의 지원 덕에 "우크라이나는 자유로운 독립국으로 서 있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면 푸틴은 지금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눈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을 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럽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의미에 대해 무지하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정부의 약점 중 하나인 가자지구 전쟁 관련해서 해리스 부통령은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그 방법"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자지구 전쟁 해법 관련 질문을 받고 "그(해리스)는 이스라엘을 싫어한다. 만약 해리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스라엘은 2년 안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답변을 내놨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 부통령으로서 전 세계를 여행했을 때 세계 지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비웃었다. 군 지도자들과도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당신이 수치스럽다고 한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도발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헝가리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는 비난을 받는 친러시아 성향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가장 존경 받고 두려운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라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르반 총리를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 하나"로 묘사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 대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고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연애편지를 주고 받은 건 잘 알려져 있다"며 "이 독재자들이 당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길 원하는 이유는 아첨과 호의로 당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게 당신과 일한 많은 군 지도자들이 당신을 불명예스럽게 여기는 이유"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남아시아인이자 흑인인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 정체성에 관해 부적절한 공격을 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해리스)가 무엇이든 상관 없다"며 즉답을 회피했지만 이어 "그(해리스)가 무엇이 되고 싶어하든 괜찮다"며 결국 기존 발언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서 "그(해리스)가 몇 년 전 흑인으로 변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엔 그가 흑인인 줄 몰랐는데 지금 그는 흑인으로 알려지길 원한다"며 "그(해리스)는 인도인인가, 흑인인가?"라는 인종주의적 발언을 해 비판을 받았다.

해리스 부통령은 관련해 직접적으로 반박하기보다 "지속적으로 인종을 이용해 미국인들을 분열시키려 한 이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는 건 비극"이라고 비판하고 "나는 우리 중 대부분이 우리를 갈라놓는 것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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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미 ABC 방송 주최로 열린 대선 후보 토론에 참석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토론 중 상대방인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응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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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은 대체로 해리스 부통령이 이날 토론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나열하고 유세가 지루하다고 평가하는 등 해리스 부통령의 도발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끼를 물어" 냉정을 잃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 선거캠프 관계자가 이러한 도발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화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흥분해 자기 방어에 시간을 쏟으며 유리한 주제에서조차 충분히 의견을 피력하지 못했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정부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의 수석보좌관을 지낸 마크 쇼트가 이 과정에서 "트럼프가 경제와 국경 관련 바이든·해리스 행정부 비판에 집중할 기회를 놓치고 대신 그(해리스)의 미끼를 물어 선거 부정과 (거짓 소문인) 반려동물을 먹는 이민자 관련 혼란에 빠져들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해리스가 토론에서 이겼다. 접전조차 못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토론에서 직접적인 여성 비하 및 인종차별 발언을 하진 않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의 말을 인용할 때 반복적으로 여성을 흉내내는 듯한 가는 목소리와 과장된 표정을 사용하며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마지막 발언에서도 향후의 포부를 보여주기보다 "우리는 실패하고 있는 국가"라며 현 정권에 대한 비난을 반복하고 자신을 방어하기를 택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마지막 발언에서 "우리는 뒤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중소기업 지원과 생활비 하락 등을 내세운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 임신중지권 보호 등 주요 포부를 차분히 정리하고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통합을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해 해리스 부통령이 "멋진 일"을 하겠다고 늘어놓고 있는데 그간 "왜 하지 않았냐"며 부통령직에 있던 3년 반 동안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 보좌진들이 이 공격이 마지막 발언이 아닌 더 앞선 부분에서 나오길 바랐다고 전했다. 두 후보 모두 이날 토론에서 정책을 구체화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론 종료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기자들이 대기 중인 공간(spin room)에 직접 방문해 "내가 해 본 토론 중 가장 잘한 토론"이라고 자평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통상 이 공간엔 후보가 직접 방문하기보다 각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자리한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토론 뒤 해리스 캠프 쪽에서 10월에 토론을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선 "오늘 졌으니 두 번째 토론을 원하는 것"이라며 수락을 꺼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뉴욕타임스>는 짚었다. 기존에 합의된 대선 후보 토론은 총 두 차례로, 한 차례는 지난 6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이뤄졌고 추가 토론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해리스 부통령과의 토론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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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미 ABC 방송 주최로 열린 대선 후보 토론 종료 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재 공간(spin room)을 방문해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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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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