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7 (화)

환자 표류하는데 ‘응급실 부역’ 블랙리스트… 정부 “범죄행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의료공백 분수령]

“추석 명절 감사한 의사 명단” 조롱… 응급실 근무 의사-군의관 실명 공개

3월 ‘복귀 전공의’부터 잇단 리스트… 경찰 “스토킹처벌법 적용 검토”

동아일보

전국 보훈병원 6곳, 추석연휴 응급실 24시간 운영 9일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환자들이 링거를 맞으며 이동하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응급의료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국가보훈부는 “추석 연휴 전후인 11∼25일 전국 보훈병원 6곳의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추석 응급의료 대란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응급실 부역’이라며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게시물이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게시물에는 응급실을 지키는 전문의와 파견 군의관 등의 실명이 포함됐다. 정부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들을 위축시키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며 경찰 수사를 통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 “이름 올라 대인기피증 겪는 군의관도”


9일 의료계에 따르면 7일 한 사이트에 ‘응급실 부역’ 코너가 개설됐고 여기에 병원별 응급실 근무 인원이 일부 근무자 명단과 함께 게시됐다. ‘감사한 의사 명단’이란 이름의 이 사이트는 아카이브(정보 기록소) 형식으로 운영진이 제보를 받아 복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 명단 등을 올리는데 최근에는 응급실 근무 의사 명단을 올린 것이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이트 운영진은 “민족의 대명절 추석,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힘써 주시는 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드린다”고 썼지만 정부는 그동안의 행태로 볼 때 복귀자들을 조롱하며 낙인찍기 위해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게시물에는 ‘군 복무 와중에도 응급의료를 지켜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며 응급실에 파견된 군의관 실명도 포함돼 있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9일 응급의료 일일 브리핑에서 “해당 사이트가 진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사기와 근로 의욕을 꺾고 있다”며 “일부 군의관은 대인기피증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사이트에는 응급실 외에도 의료 현장에 남은 의사들의 실명과 출신 대학, 휴대전화 번호뿐 아니라 부모 직업 등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의사 외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 실명 등 줄잡아 수천 명의 이름이 나와 있다. 경찰은 ‘감사한 의사 명단’ 사이트와 관련해 스토킹처벌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 사직 전공의도 “블랙리스트, 자성 필요”

올 2월 전공의 병원 이탈 이후 블랙리스트 논란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3월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병원에 남은 전공의 실명이 담긴 ‘참의사 리스트’가 공유됐다. 경찰은 이후 수사에 나서 게시자 5명을 특정했고 7월에 검찰에 송치했다. 7월에도 의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실명을 공개한 ‘감사한 의사 명단’이 텔레그램 채팅방에 공개됐고,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에 ‘병원 복귀 전공의 현황을 제보받는다’는 글이 올라와 개인 신상이 포함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블랙리스트가 반복되는 이유를 두고 의사 사회 특유의 폐쇄적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의사들은 짧게는 예과와 본과 6년, 길게는 전공의 기간까지 10년 이상 인간관계가 이어지는 좁은 사회다. 그렇다 보니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경우 ‘배신자’로 낙인찍고 배제하는 악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선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직 전공의 출신인 임진수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감사한 의사 명단은 서로 감시하고 겁박하는 것”이라며 “집단 광기로 물들고 있는데 아무도 (블랙리스트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유포 혐의자에 대해 “사법 당국이 30명 정도를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안다”며 “말하자면 괴롭히고 모욕을 주는 것인데 이런 일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