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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르포]서울 한복판에서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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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9번째 '꿀잠대회' 개최
역대 최다 인원 신청…참가자 70여 명
휴대폰 중독에 잠 못 드는 이들에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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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가 개최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꿀잠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올림픽공원 피크닉장에 누워서 명상하고 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zuzu@


지난 8일 오후 12시 서울 올림픽공원 피크닉장. 나무 그늘 아래 70여 개의 에어매트가 비치됐다. 유한킴벌리가 개최한 '2024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숲속 꿀잠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잠자리다. 이 대회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모바일 콘텐츠를 시청하느라 수면에 방해를 받는 이들이 도심 속 숲속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열렸다. 벌써 올해로 아홉번째다.

숲속 꿀잠대회는 지난 2016년 시작됐다. 올해 모집에는 총 2만4543명이 신청했다. 역대 최다 인원이다. 지난해 1만5000여 명이 참가한 것에 비하면 한층 경쟁이 치열해졌다. 올해 경쟁률은 350대 1이었다. 이는 그만큼 각종 스트레스와 외부 요인으로 '꿀잠'을 바라는 현대인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슬픈 일이다.

기자도 그 중 한 명에 속했다. 참가자 확인 부스에서 '꿀잠키트'를 받았다. 키트에는 수면안대, 귀마개, 담요, 빵, 음료, 크리넥스 티슈, 물티슈 등이 담겨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장갑과 집게였다. 이 물건의 용도는 뒤에 설명하겠다.

대회에 집중하도록

주최 측은 대회 시작에 앞서 휴대폰을 수거해갔다. 대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엔 휴대폰을 소지할 수 있었다. 수면 전 심신을 차분히 해줄 요가도 진행했다. 손바닥을 매트 위에 올려놓고 편안하게 누워 숲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종소리와 함께 명상했다. 이후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올림픽공원에 조성된 나무들의 잎사귀가 살랑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끊임없이 내 주위를 맴돌았던 작은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정좌 자세로 "아에이오우"를 외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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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꿀잠대회 참가자들이 요가를 하고 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zu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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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시작 전 30분 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대회가 시작되면 화장실 이용이 불가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이 화장실에 줄지어 다녀왔고, 어떤 참가자들은 잠들기 전 빵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오후 2시. 꿀잠대회가 시작됐다. 꿀잠대회는 약 2시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 시간동안 참가자들의 심박수를 일정 간격으로 체크한다. 심박수 편차가 가장 적은 참가자 1~3위를 선정해 시상한다. 베스트 꿀잠러 1, 2위에게는 인천-울란바토르 왕복 항공권을 각각 2장, 1장 제공한다. 3위에겐 자담치킨 상품권 10만원권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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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관계자가 참가자의 심박수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zu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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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잠에서 깨면 탈락이다. 탈락할 경우 올림픽공원 피크닉장 주변을 돌며 미화활동에 참여한 후, 수거한 쓰레기를 안내부스에 반납하면 유한킴벌리 제품을 랜덤으로 제공하는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앞서 장갑과 집게를 제공한 이유다.

기자도 안대를 쓰고 잠을 청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바람소리와 새소리,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감상 3분정도 지났을 때 행사 관계자가 다가와 심박수 체크 기기로 왼쪽 검지 손가락을 찝었다. 이후 곤히 잠이 들었다.

대회 중간 방해공작도 있었다. 앞서 대회 중에 참가자들에게 치킨 냄새를 풍길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 실제 대회 중 누군가 기자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것은 잠시였다. 이미 얕은 잠에 빠진 터라 깨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꿀잠' 대회 맞네

오후 3시 40분경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이렇게 푹 잘 수가…'. 평소 새벽 2시에 잠을 청하고 아침 7시경 눈을 뜨는 일상의 반복에서 이날처럼 푹 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개운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기자만 이런 느낌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정가람(28) 씨는 "헬스장 오픈 아르바이트와 음악 관련 일을 겸하다보니 하루에 짧게는 3시간가량, 길게는 5시간 잔다"며 "(꿀잠대회는)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내년엔 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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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유한킴벌리 숲속 꿀잠대회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zu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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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평균 수면시간이 약 5시간 30분이라는 직장인 김예지(29) 씨는 "평소 야근을 하거나 1인 가구라 집안 일을 하고 나면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게 밤 10시 이후인데 시간이 아까워서 잠들기 전 숏폼 콘텐츠를 2시간가량 즐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심박수를 체크하러 올 때마다 잠에서 깰까봐 긴장돼 선잠을 자긴 했지만 숲속에서 힐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대회에는 18~35세 참가자가 전체 참가자의 70%에 달했다. 그중 최연소 참가자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2명이었다. 최고령 참가자의 나이는 45세였다. 1등을 수상한 참가자는 게임 그래픽 관련 일을 하는 도은지(23)씨였다. 그는 "게임을 제작하며 야근을 한 게 (꿀잠대회) 1등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고3인 참가자 2명은 각각 2등과 3등을 차지했다. 이 참가자들은 "입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도파민 중독사회

현대인의 수면 부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국립수면재단이 권장하는 18~64세의 하루 적정 수면 시간은 7~9시간이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는 109만8819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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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꿀잠대회에 셰익스피어의 '우리의 짧은 삶은 잠에 둘러싸여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세워져 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zu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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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바일 콘텐츠 등에 의한 '도파민 중독'은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유한킴벌리가 올해 대회 참가 신청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일평균 스크린타임이 4시간 30분 이상'이라고 답했다. '잠자고 씻는 시간 외에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라고 답한 이는 53%였다. 휴대폰을 하다가 밤을 새운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52%, 도파민 유발 요소들로 숙면에 어려움을 느낀 경험이 있는 응답자도 39%인 것으로 조사됐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이 40주년을 맞았고 꿀잠대회는 내년에 10번째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자극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우울감을 해소하고 심리 안정과 치유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숲속에서 힐링을 통해 일명 '도파민 디톡스'를 경험하고, 숲과 자연이 제공하는 가치를 체험하실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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