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이상국(1946~)
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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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을 회상한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에 다녀온 어머니는 아이를 품에 안아 젖을 물리면서 먼 산에 산그늘이 내린 것을 망연히 바라본다. 하루의 해가 뉘엿뉘엿 기운 무렵이었을 것이다. 장성(長成)한 시인은 어느 날 옛집에 들러 산그늘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시인은 그동안 대처(大處)로 나가 사느라 힘들고 고생스러운 세상살이를 겪었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 그러하셨듯이 산그늘을 바라보는 일을 저절로 익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시인은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시 ‘그늘’에서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고 썼다. 다른 시에서는 세상의 인심이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도무지 없다고 애석해했다.
그렇다면 어머니에게, 그리고 시인에게 산그늘은 어떤 마음을 얻게 했을까. 산그늘은 수선스럽지 않다. 불쾌한 소음이 없고, 요란하지 않고, 담담하고 또 적요(寂寥)하다. 산그늘은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와 바람을 홑이불처럼 덮어준다. 산그늘은 시인의 우울과 고립감을 다독이고 새뜻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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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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