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7 (화)

문해력은 학생들만 키우면 끝일까?···“문해력은 ‘인권’의 문제”[인터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정혜승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와 서수현 광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지난달 30일 펴낸 책 <문해력 특강>. 출판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문해력은 손쉽게 어휘력으로 치환된다. 금일 등 한자어를 모르는 ‘요즘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문해력 연구자 정혜승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출간한 책 <문해력 특강>에서 이같은 현상이 문해력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다고 진단했다.

8일 유네스코가 정한 ‘국제 문해의 날’을 맞아 정 교수를 지난 3일 경인교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정 교수는 “문해력은 ‘문자를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독해력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해력과 인권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걸까. 다음은 일문일답.

-<문해력 특강>을 쓰게 된 계기는.

“한국은 대학 입시나 상급학교 진학이 중요한 사회다보니 문해력을 학습의 측면에서만 생각한다. 문해력을 공부와 관련지어 학습하는 기간 동안만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문해력은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세금 환급 등 기본적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인권이 문해력이다. 학습을 위한 읽기 중심으로만 문해력을 생각하면 의사소통을 잘하기 위한 문해력을 고려하지 못한다. 독자는 글 너머의 필자의 의도와 목적을 생각하며 읽고, 필자는 독자의 관심이나 이해 수준을 고려하여 글을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주장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보나.

“문해력 저하를 단정할 만한 일관된 근거가 부족하다. 2014~2023년 중고등학교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국어 추이를 보면 전반적으로 하향하는 추세다. 하지만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성인문해능력조사를 보면 60세 미만의 약 95%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충분한 문해력(4수준)을 갖췄다. 학습 측면에서의 문해력은 떨어지는 경향성을 보이는데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문해력은 향상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문해력이라고 일반화해서 말하지만 문해력은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성격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측면의 문해력이 문제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선 학생들이 단어 뜻을 몰라 학습 진도 나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어휘력을 개발하는 좋은 방법은 읽기다. 단어를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번 경험해야 머릿속 어휘 사전에 들어온다. 2013~2015년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5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 밖에서 얼마나 자발적으로 읽고 쓰는지를 종단 연구했더니 읽기·쓰기 활동 추이가 4학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4학년부터 교과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이들이 책을 접하는 빈도가 낮으니 읽기나 쓰기를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교육을 하는 게 필요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르나 텍스트 유형부터 읽기 시작해 서서히 공부에 도움되는 것으로 넓혀가야 한다.”

-독서 부족의 원인으로 디지털 기기를 많이 꼽는다.

“가능한 추론이지만 뒷받침할 확실한 연구 근거는 없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내가 휴대전화로 읽은 것이 나한테 도움이 되는지 성찰하면서 조절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일각에선 내년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면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매체 사용 시간과 문해력의 관련성을 일괄적으로 말할 연구 결과는 없다.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학생보다 어느 정도 사용하는 학생의 학업 성취도가 더 높다는 연구도 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서책형 교과서의 한계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문해력에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량 제한 없이 다양한 글을 온전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내가 쓴 글을 실세계의 다양한 독자들과 소통하며 피드백을 받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다만 개인정보가 완벽하게 보호돼야 한다. 어린 학생들은 자신과 주변의 개인정보를 여과 없이 글에 담기 때문에 안전하게 관리돼야 안심하고 쓸 수 있다.”

-문해력을 독해력, 작문력, 어휘력, 비판적 사고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이를 기르기 위한 학교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한글책임교육’을 비롯해 문해력을 길러주려는 노력을 공교육에서 많이 하고 있다. 교육부, 시·도교육청에서도 문해력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기초 문해력을 길러주기 위한 단순 연습 프로그램이 많은데 아이들, 특히 5학년 이후 학생들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고 효능감이 떨어진다. 학년에 맞는 주제로 고르되 자료는 쉽게 써 아이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해병대원 순직 사건, 누가 뒤집었나? 결정적 순간들!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