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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언니! 영미 와수다!”…제주 해녀가 50년 만에 독도서 외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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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5일 제주 해녀인 장영미 씨(69)가 50년 만에 독도 바다에 들어가 감태를 둘러보고 있다. 10남매 중 일곱째인 장 씨는 1974년 당시 둘째, 여섯째 언니와 독도 바다를 누볐다. 제주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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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영미 와수다(왔어요)!”

일흔을 바라보는 제주 해녀가 50년 전 두 언니와 누볐던 독도 바다에 몸을 담궜다. 19살 처녀 때 울릉도와 독도에서 물질을 했던 장영미 씨(69,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 이야기다.

8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이달 5일 장 씨와 박영실 씨(66, 비양도 어촌계) 등 총 7명의 제주 해녀가 독도 바다에 입수했다. 장 씨와 박 씨는 1970년대 울릉도와 독도에서 물질생활을 경험했던 장본인이다. 행사는 제주도가 과거 독도에서 물질을 했던 제주 해녀의 역사적 가치와 헌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했다.

장 씨는 제주에서 물질을 하다 열아홉이던 1974년 울릉도와 독도를 시작으로 11년 동안 제주 밖에서 해녀 생활을 했다. 10남매 중 일곱째인 장 씨는 당시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먼저 뭍으로 나간 둘째, 여섯째 언니를 따라 울릉도로 향했다. 장 씨는 “둘째 언니가 가장 먼저 울릉도에 갔고, 그 다음 여섯째 언니, 그 다음 내가 갔다”며 “당시 집안이 너무 가난해 쌀 받아먹을 돈도 없었다. 세 자매가 물질로 번 돈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둘째 언니는 20년 동안 울릉도와 독도에서 물질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며 “여섯째 언니는 울릉도에서 사망해 묘지도 울릉도에 있다. 독도에 가기 전날 묘소를 방문해 자주 찾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물질을 함께 했던 추억이 생각나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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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제주 해녀인 장영미 씨(69)가 50년 만에 독도 바다에 들어가 감태를 둘러보고 있다. 10남매 중 일곱째인 장 씨는 1974년 당시 둘째, 여섯째 언니와 독도 바다를 누볐다. 제주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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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독도 바다에 들어간 소감을 물었더니 “독도 땅은 관광객도 많고, 길도 생기는 등 변한 곳이 많은데, 바당(바다) 속은 지금 들어가도 어느 고망(구멍)에 뭐가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대로”라며 “물에 들어간 순간 마음속으로 50년 전 함께 물질을 했던 젊고 고운 언니들에게 ‘영미 와수다’라고 외쳤다”고 소회를 밝혔다.

독도 물질에 대한 기억도 들을 수 있었다. 독도 물질에 나선 제주 해녀들은 독도 서도의 ‘물골’에서 몇 달씩 머무르며 물질을 했다. 물골은 독도에서 유일하게 식수가 솟아오르는 천연 동굴이다. 독도에는 전복, 소라 등 다양한 해산물이 있었지만, 해녀들은 주로 미역을 채취했다고 한다. 잠자리는 물골 자갈밭에 가마니 몇 장을 깔고 자거나 나무로 만든 2층짜리 움막에서 생활했다. 특히 제주 해녀들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독도 의용수비대와 독도 경비대의 경비 활동에 필요한 물품 운반, 식수 보급, 식량 조달 등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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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미 씨(69)가 독도 바다 입수 다음날인 6일 동아일보로 보내 온 본인 사진. 장영미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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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씨는 “독도에서 상주하는 방식은 나보다 둘째 언니와 같은 한 세대 위 선배(1960년~1970년대 초)들 주로 했다”며 “나는 ‘남발이’라는 배를 타고 (울릉도에서 독도로) 이동한 뒤 배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서 이틀가량 독도에서 미역과 감태를 캤다”고 회상했다.

그는 “50년 새 제주는 해산물이 10분의 1로 줄었는데, 독도는 50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이렇게 잘 보존된 독도 바다를 남의 나라에 뺏기지 않도록 나라가 제대로 대응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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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제주 해녀 7명이 독도 바다에서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장영미 씨(69)는 왼쪽에서 세번째. 제주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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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장영미 씨(69)가 울릉도 모셔진 여섯째 언니의 묘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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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장영미 씨(69)가 울릉도 모셔진 여섯째 언니의 묘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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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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