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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마하 0.7’ 썰매 타고 이륙…신개념 우주 수송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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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 ‘라디안 원’ 개발 본격 착수

겉모습은 일반 비행기…사출기 타고 이륙

1단 로켓 불필요…최대 100회 재사용

지구 궤도에서 4.5t 화물 옮길 수 있어

발사 비용 대폭 감소…2028년 시험비행

경향신문

우주 수송기 ‘라디안 원’이 지구 궤도에 도달한 상상도. 최대 4.5t의 화물을 우주에서 지구로 옮길 수 있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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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항공모함 위. 엘리베이터를 탄 함재기들이 항모 내부의 격납고에서 갑판으로 연이어 올라온다. 수분 뒤, 함재기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갑판에 도열한다. 함상 요원 중 한 명이 가장 선두에 선 함재기를 주시하더니 무릎을 잔뜩 구부려 자세를 낮춘다. 그러고는 한쪽 팔을 곧게 뻗어 항모 정면을 가리킨다. 출격 수신호다.

함재기는 주저없이 항모 갑판을 수평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활주 거리는 약 100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함재기는 하늘로 거뜬히 날아오른다. 2022년 개봉한 미국 영화 <탑건: 매버릭>의 도입부다. 이 장면은 실제 출격 상황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미국 함재기 중량은 기체와 각종 무기를 합쳐 한 기당 20~30t에 이른다. 이런 엄청난 무게를 이기고 좁은 항모 갑판에서 함재기가 이륙할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갑판에 설치된 ‘사출기(캐터펄트)’ 때문이다. 증기 힘을 이용해 가속하는 사출기는 함재기를 태우고 쏜살같이 달리는 일종의 썰매다. 일정한 속도에 이른 사출기는 함재기를 분리해 하늘로 내던진다.

그런데 최근 이 사출기 원리를 이용해 ‘우주 수송기’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무슨 얘기일까.

여객기 이륙 속도 3배 질주


지난주 미국 우주항공기업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는 지금껏 인류 역사에 등장한 적 없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만드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CNN 등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혔다. 2028년 시험비행을 목표로, 지상과 고도 수백㎞의 지구 궤도를 연결하는 우주 수송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송기 이름은 ‘라디안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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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수송기 ‘라디안 원’이 로켓 엔진으로 가동되는 사출기를 타고 평지를 질주하는 상상도. 시속 864㎞(마하 0.7)까지 가속해 이륙한다. 사출기는 지구 중력을 뿌리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1단 로켓을 대신한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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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가 공개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면 라디안 원은 동체 좌우로 주날개를 갖췄다. 꼬리 날개도 있다. 보통 비행기 같은 외형이다. 다만 제트 엔진이 아니라 로켓 엔진을 장착했다.

그런데 이 영상의 핵심은 라디안 원의 모양새가 아니다. 이륙 장면이다. 라디안 원은 굉음과 함께 가공할 만한 속도로 지상에서 활주하다 공중으로 올라간다. 약 3㎞짜리 활주로를 달리면서 찍은 최고 속도는 무려 시속 864㎞다. 마하 0.7이다. 보통 여객기 이륙 속도(시속 약 300㎞)의 3배에 육박한다.

이 엄청난 속도를 뿜어낸 것은 라디안 원 기체에 달린 로켓 엔진이 아니다. 라디안 원이 썰매처럼 올라탄 사출기다. 로켓 엔진으로 작동되는 사출기가 초고속으로 수평 이동을 하다 하늘에 내던지듯 라디아 원을 띄운 것이다.

사출기가 만들어 준 속도를 그대로 흡수한 라디안 원은 자체 로켓 엔진을 추가로 켜 지구 궤도, 즉 우주로 솟구친다. 결과적으로 라디안 원은 1단 로켓 대신에 사출기를 사용한 셈이다.

현재 지구 궤도 등 우주로 가는 전 세계 로켓은 모두 1~2단 또는 1~3단으로 만들어진다. 발사 직후 지구 중력을 이기고 고도를 높이는 핵심 임무는 1단 로켓이 맡는다. 연료를 다 태운 1단 로켓은 공중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2단과 3단도 연료가 소진되면 차례로 떨어져 나간다. 분리된 동체는 바다에 빠져 수장되거나 대기와 마찰하며 타 버린다.

라디안 원은 사출기 덕에 그런 분리와 폐기 과정 자체가 전혀 없는 ‘단일 로켓’이다. 1960년대부터 당연시되던 로켓의 고정 관념을 라디안 원이 깨버린 것이다.

발사 비용 10분의 1 예상


라디안 원을 쓰면 무슨 이점이 있을까. 돈을 아낄 수 있다. 고도를 높이면서 버리는 동체가 없기 때문이다. 라디안 원 자체도 최대 100회 재사용할 수 있다.

얼마나 절감될까.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는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늠할 단서는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 마틴이 공동 개발하다 2001년 고강도와 저중량, 내열성을 동시에 갖춘 동체 소재를 찾지 못해 개발을 중단한 ‘X-33’ 때문이다. 당시 제기된 기술적인 문제가 지금은 해결되면서 X-33은 라디안 원의 모델이 됐다.

X-33은 개발 추진 당시 500g짜리 물체를 지구 저궤도에 1000달러(약 130만원)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총 2단 또는 3단으로 구성된 로켓으로는 약 1만달러(약 1300만원)가 든다.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춘다는 뜻이다.

라디안 원은 지구 궤도와 지상 사이를 운항하며 최대 4.5t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다. 승무원은 2~5명이며, 착륙할 때에는 보통 비행기처럼 활주로에 바퀴를 펼쳐 내린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라디안 원으로 지구 궤도의 우주정거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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