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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스탈린이 사랑한 모차르트 음악 [休·味·樂(휴·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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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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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마리아 유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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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엔 오페라처럼 웃음과 눈물의 연극성이 투영돼 있다. 자신의 협주곡을 스스로 무대에 올리며 전파했던 모차르트는 오페라 주인공처럼 피아노를 통해 노래하며 연기했다.

첫 등장부터 오케스트라에 묻어가지 않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관현악이 제시하는 리토르넬로와 구별되는 솔로의 첫 등장부터 음악적 조명을 환하게 비춰 관객 주목을 이끈다. '독주 vs 총주'라는 물리적 음량의 병립뿐만 아니라 주연과 조연, 선역과 악역처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연극적으로 설정했는데 드라마에 깃든 대립과 갈등의 서사를 통해 피아니스트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웃음과 눈물의 절묘한 역설, 장난치면서도 반항적인 악상은 양날의 검처럼 다면적이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란 서로 다른 두 음향체의 관계가 구체적 단어나 줄거리로 결속되지 않다 해도, 청중들은 연극의 대사와 플롯을 떠올렸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관련해 소비에트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흥미로운 일화를 전해주었다. 철권통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모스크바 라디오에서 실황 중계된 이 협주곡을 접하고 금세 매료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협연자는 스탈린의 공산정권에 사사건건 저항했던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였다. 그녀는 앙코르 곡을 연주하는 대신 반체제 작가의 금지된 글을 낭독할 정도로 공산당엔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스탈린에게 중요한 건 연주자의 성분보단 모차르트의 유려한 악상이었다. 곁에 두고 계속 감상하기 위해 라디오 방송국에 레코드를 요청했다. 그러자 모두가 당황했다. 스탈린이 보여준 의외의 감식안이나 관대함 때문이 아니었다. 유디나가 연주한 모차르트 협주곡은 라이브로 송출됐을 뿐 녹음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방송국은 협연자와 오케스트라 단원을 밤늦게 소집해 밤을 새워 녹음한다. 날이 밝기 전 독재자에게 배달할 음반을 만들어야 함에, 스튜디오엔 두려움과 공포가 만연했다.

이튿날 오전, 스탈린을 위한 단 하나의 레코드가 무탈히 전달되자 유디나는 포상금으로 2만 루블을 획득한다. 반체제 음악가의 상징과 같았던 그녀는 전액을 교회에 기부하며 이렇게 일갈한다. "스탈린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겠다.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스탈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시신 옆 축음기에서 재생되던 이 음반을 발견했다. 독재자가 마지막으로 감상한 음악은 유디나가 협연한 바로 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이었다.
한국일보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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