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치안이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최대 도시·국가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com)가 발표한 2023년 안전도(Safety Index) 순위에서 한국은 17위로 꼽혔습니다.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덴마크(21위) ·싱가포르(27위)·독일(44위)보다 앞섭니다.
그런데도 아직 수천명의 조직폭력배가 우리 주변에 도사린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서로를 경계하며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조폭들은 언제든 이 무게추가 기울면 물리적 폭행을 가하며 금전 이익을 취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범죄와의 전쟁’. 발톱만 드러낸 채 서로를 할퀴진 않고 있는 그 긴장의 현장을 파헤쳐 소개했습니다.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2023 조폭의 세계(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71)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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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부 - MZ 조폭〉
가입 권하자 “월급 얼마예요” 기성세대 조폭도 MZ 버겁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6544
“팔 쓱 내밀면 돈이 생긴다” 1500만원 ‘이레즈미’ 위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3285
MZ 조폭이 고백했다 “조폭 배출 일진학교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5270
2022년 10월 어느 날, 대구지방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A 경감의 책상 앞에 약 스무 명의 20대 청년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았다. 손에는 수갑을 찼다. 조직폭력배(조폭)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 붙잡힌 이들이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보니 상당수가 경찰이 관리하는 조폭 명단에 있었다. A 경감은 붙잡힌 이들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이들 중 일부는 영화에서 나오는 빡빡머리에 문신을 새긴 험상궂은 조폭의 전형이 아니었다. 대학생 같은 평범한 MZ(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 통칭) 세대 청년의 외모였다.
“젊은 사람들이 합법적인 일을 해야지, 왜 이런 일에 끼어든 거예요?”
“그냥 돈 좀 벌려다 보니….”
동생뻘 되는 모습을 한 조폭들의 구구절절한 개인사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동안 조사한 범죄 사실에 대한 질문에 이들은 풀 죽은 목소리로 “예”라는 대답만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이 2020년 10월 서울 남산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폭력조직 '수노아파' 39명을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수노아파 등 전국의 20~30대 또래 조폭들이 모임을 하며 친목을 과시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서울중앙지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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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구청 강력수사대가 합동으로 온라인 도박 사이트 운영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로 한꺼번에 잡은 조폭은 전국 150여 명이었다. 그중 7분의 1 정도가 20대 조폭이었다.
몸집도 좋지 않은 이들이 조폭에서 맡은 일은 이용자 모집, 프로그램 관리, 수익금 정산, 현금 인출이었다. 요즘 조폭계에선 몸이 아닌 머리 쓰는 조직원이 필요하다. A 경감은 “과거 갈취 등 고전적 조폭과 달린 온라인 도박 등 지능형 사업에 뛰어든 21세기형 조폭계에는 인터넷에 능숙한 20대 MZ 세대가 대거 가담하는 추세”라며 “조직원 선발도 SNS를 통해 이뤄져 MZ세대 유입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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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으로 유입되는 MZ세대…10~20대 38%
‘MZ세대 조폭’이 증가하고 있다. 조폭 범죄가 단순 폭행, 협박, 갈취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지능화‧첨단화하면서 10~20대의 범죄 가담이 덩달아 늘고 있다. MZ 조폭 현상은 중앙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단독 입수한 경찰청의 ‘폭력조직 관리 현황’에서 확인된다.
신재민 기자 |
지난해 검거한 조폭 범죄 피의자 수는 3231명으로 지난 10년 사이의 최고치였다. 이 중 20대는 1030명에 32%로 가장 많았다. 조폭(검거 기준)은 2018년까지 30대가 가장 많았는데 이듬해부터는 20대가 30대를 앞질렀다. 10대 조폭의 비율도 2013년 2%(52명)에서 2022년 6.5%(210명)로 상향세다. 10~20대 조폭을 합하면 전체의 38%를 웃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의 관리 대상 조폭 중 10~20대 비율과 검거된 조폭의 10~20대 연령 비율이 비슷하다”며 “이는 소수의 젊은 조폭이 주로 검거되는 게 아니라 10~20대 잠재적 범죄자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
취재하며 만난 전‧현직 조폭과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덩치가 크고 떼 지어 다니며 패싸움이나 하고 난동을 부리던 전통적 의미의 조폭 시대는 쇠퇴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의 일진급 학생을 관리하며 포섭하는 영화 속 관행이 일부 남아 있지만, 조폭 가입을 위한 신체적 문턱은 낮아졌다.
조폭의 주업이 폭력‧갈취‧협박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등 ‘고수익 저위험’ 사업으로 전환한 탓이 크다. 실제 업소 갈취는 지난해 24건으로 2013년(146건)에 비해 6분의 1 토막으로 떨어졌다.
김영희 디자이너 |
반면에 사행성 영업 적발 건수는 10배 이상(2013년 74건→2022년 751건) 폭증했다. 칼이나 각목을 휘두르며 몸을 던지는 싸움 실력이 조폭의 자격이 아니라는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당장 돈벌이가 급한 10~20대, 특히 중·고교 중퇴자뿐 아니라 취업문을 넘지 못한 대졸자가 조폭 가담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고 했다. 조폭과 범죄의 연소화(年少化)를 막기 위한 범 사회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김영희 디자이너 |
홍성우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 반장은 “조폭의 ‘전통적 먹거리’인 유흥업소 운영과 보호비 명목의 갈취는 구습이 됐고, 온라인 도박 사이트 운영 같은 비대면 범죄가 주된 수익원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유흥업소가 문을 닫자, 성매매로 적발된 조폭도 지난해 2명으로 지난 10년간 가장 적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요즘 조폭들은 인터넷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 행세를 한다. 그러다 보니 조폭에 대한 젊은층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거부감도 약해지고 있다. 조폭이 불특정 다수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에서 온라인 도박 프로그램 개발자 역인 이제훈이 카지노 사업에 관해 논의하는 장면. 조폭은 최근 직접 폭력을 쓰는 범죄를 줄인 대신, 사행성 영업으로 활동 영역을 옮기는 추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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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조폭 가입 물으며 “월급 얼마예요”
MZ 조폭은 MZ세대 고유의 인식과 행동을 고집한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전‧현직 ‘기성세대 조폭’은 변화된 MZ 조폭의 특징을 이렇게 말했다.
첫째, 의리보다 내가 우선이다. “가족적 의리가 약하다. 조폭 세계의 가족보다 돈을 우선한다. 공권력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기성 조폭은 ‘형님·아우님 주변’을 보호했다면, 최근 젊은 조폭들은 ‘자신’을 보호한다.”
둘째, 돈 벌어야 형님 소리 듣는다. “과거처럼 초년병 조폭들의 합숙 문화가 현저히 줄었다. 돈은 조폭 가족 사업이 아니라 개개인이 알아서 번다. 돈 못 버는 형들은 ‘형님’ 취급받기 어렵다. ‘돈 있는 형님’을 좇아 ‘라인 갈아타기’가 흔해졌다.”
서울청 강력수사대에서 조폭을 수사했던 윤철희 구미서 수사2과장은 “최근 20대 조폭은 자기를 소개할 때 ‘OO파’가 아니라 ‘OO형님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 게 아니라 돈 잘 버는 형님 아래에 있다고 소개한다”고 했다. 부산 사하구의 폭력조직원이었던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요새 20대 조폭들은 조직에 들어올 때부터 ‘월급 얼마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본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이 2020년 10월 서울 남산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폭력조직 ‘수노아파’ 39명을 기소했다. 이 중 수노아파 행동대원 등으로 신규가입해 검찰에 입건된 10~20대 조직원은 20명이다. 사진 서울중앙지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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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대 조폭…“전과 쌓이는 악순환 가능성”
조폭 생활은 한번 빠져들면 손을 씻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수사기관에 입건된 조폭 중 절반 이상이 9범 이상의 누범자였다. 지난해 통계에선 범죄를 저지른 조폭 중 92.1%가 전과자였다. 10~20대에 폭력 조직에 발을 담그면 정상적 생활로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검거된 40대(24.4%)와 50대(10.1%) 조폭 대부분이 범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본다. 이른 나이에 조폭 생활을 시작할수록 생애 내내 범죄에 연루돼 지낼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의 지적이다.
" 젊은이들이 한번 빠져든 조폭 생활에 맛을 들인 채 전과가 계속 쌓이다 보면 범죄의 늪에서 평생을 허우적대야 한다. 조폭 세계를 강력하게 분쇄함으로써 MZ세대가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높은 진입 장벽을 세워야 한다. "
김경진 기자 |
■ '2023 조폭의 세계' 목차
〈제1부 - 전국구 조폭〉
“눈데 와가 사진 찍습니꺼!” 살 떨린 ‘두목 결혼식’ 잠입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6171
“상계파 힘 쓰는 형이 상주” 빈소서 목격한 조폭 인증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7902
“형님은 손 뗐다” 감싸줬더니 “저놈이 부두목” 배신당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9634
5만원 여관방, 생선 날랐다 ‘조폭 에이스’ 마흔에 닥친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7911
〈제 2부 - 기업형 조폭〉
비상장주 다루던 그 금융인, 수 틀리자 회칼 빼들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1448
“나 건달 아녀, 기업인이여” 하얏트 거머쥔 배상윤의 몰락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6207
휴지통 속 찢겨진 종이 한장…‘하얏트 조폭’ 돌연 순해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1503
〈제3부-마약·도박 조폭〉
“10억 벌고 3년 썩으면 OK!” 조폭이 돈 벌기 쉬운 나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2988
“마약 배달하면 1000만원” 돈 앞에 ‘가오’도 버린 조폭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9844
국제 탐사기자의 충격 증언 “멕시코 조폭, 한국 진출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6530
〈제 4부 - MZ 조폭〉
가입 권하자 “월급 얼마예요” 기성세대 조폭도 MZ 버겁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6544
“팔 쓱 내밀면 돈이 생긴다” 1500만원 ‘이레즈미’ 위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3285
MZ 조폭이 고백했다 “조폭 배출 일진학교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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