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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수업 중 어려운 수학 문제 풀지 마세요, 우리 아이 열등감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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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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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윤미숙 교사노조연맹 부위원장


"수업 중에 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나요. 우리 아이 열등감 느끼잖아요. 그냥 교과서에 나오는 쉬운 문제만 다루세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한테 받아쓰기 테스트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 아직 잘 못하는데 상처받아요"

"틀린 것 빗금 치지 마세요. 우리 아이 기분 나빠져요"

윤미숙(44) 교사노조연맹 제2부위원장 겸 정책실장은 지난달 28일과 이달 2일, 4일 세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종종 이런 항의성 민원을 받는다"면서 "선생님들이 원하는 대로 수업을 이끌어 가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수학 교과에서 나오는 익힘 문제들이 너무 쉽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심화 문제를 숙제로 내주고, 다음날 학교에서 문제 풀이를 해주면 어려운 문제는 다루지 말라는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학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자기의 아이가 학교에서 열등감을 느껴서도 안 되고, 상처받아서도 안 되고, 기분이 나빠져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윤 부위원장은 "이런 민원을 받은 선생님은 원래 구상했던 대로 수업하지 못한다"면서 "그런 민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사안으로 꼬투리를 잡혀서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당해 범죄자로 취급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동학대로 신고된 선생님은 교육청, 지자체, 경찰서 등에 끌려다니며 조사를 받게 된다"면서 "이 과정에서 선생님은 교육자로서 의욕을 잃고, 심한 경우 삶의 의지까지 상실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윤 부위원장은 "작년 하반기 서이초 사태 이후 교권 4법 개정,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지도, 민원 대응팀 가동 등 몇 가지 조치가 이뤄졌지만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국회의원과 교육부, 교육청, 지자체 공무원 등은 여전히 교육 현장을 모르면서도 선생님의 의견을 무시한다"면서 "이들은 대체로 교사와 학생보다는 자기들의 실적 쌓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성장한 윤 부위원장은 부산교대를 졸업한 뒤 2004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2020년에는 부산 교사노조 창립위원장, 2021∼2022년에는 2대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작년에는 전국 초등교사노조 정책실장 겸 대변인, 올해부터 교사노조연맹 정책실장 겸 제2부위원장, 전국초등교사노조 수석 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한국의 전체 교사는 몇 명인가?

▲ 가장 최근 통계인 2023년 4월 현재 유치원과 초중고의 정규직 교사는 40만 명, 기간제 교사는 7만 6천 명 정도입니다.

합하면 48만 명입니다.

-- 이중 교사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몇 명인가?

▲ 현재 12만 5천 명입니다.

전체 정규직 교사 대비 30% 정도입니다.

비정규직 교사까지 포함한 전체 교사 대비로는 26%입니다.

-- 교사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많이 겪기 때문인가?

▲ 교사들은 아동학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합니다.

신고를 당하면 일단 범죄자 취급받습니다.

아동학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이는 부당할 뿐 아니라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올해 초 김해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6학년 반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 얼굴에 여자 비키니 사진을 합성했습니다.

선생님은 군대에서 막 제대한 20대 남자였습니다.

-- 반 아이들 전체가 합성사진으로 선생님을 조롱한 것인가?

▲ 몇몇 주동자가 사진을 합성해서 돌리고, 선생님이 수업하느라 돌아서 있을 때 손가락 욕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렸습니다.

카톡으로 자기들끼리 "담임이 재수 없다"고 욕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화가 났지만, 사과받는 정도로 끝내려 했습니다.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아이들이 사과하기를 거부했나?

▲ 사과는 했습니다.

사과하고 난 다음에 "와, 선생님 얼굴 봤냐? 선생님이 울려고 하더라. 웃참하느라 힘들었다"면서 카톡으로 또 조롱했습니다.

웃참하느라 힘들었다는 것은 웃음이 나오는데 참느라 힘들었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은 교육 차원에서라도 이 아이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면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선생님을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습니다.

-- 어떤 아동학대를 했다는 것인가?

▲ 선생님이 수학여행 때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했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체육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에어컨을 빨리 안 틀어줬다는 이유였습니다.

-- 그런 이유로 선생님들이 경찰 수사를 받기도 하나?

▲ 경찰에 아동학대로 신고가 되면 교육청이 먼저 조사를 나왔습니다.

교육청에서 나온 사람은 이 선생님이 무슨 혐의로 신고됐는지도 몰랐습니다.

경찰은 알려줄 의무가 없다면서 이야기를 안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교육청 사람은 이 선생님에게 "당신이 신고당했다고 의심되는 모든 상황을 가져와서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지도한 내용들을 모두 정리해서 보내야 했습니다.

-- 결과는 어떻게 됐나?

▲ 선생님은 당연히 무혐의 처리가 됐습니다.

교보위는 주동한 학생 4명에게 출석정지 8일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때가 졸업 직전이었는데, 아이들은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 교실 에어컨을 좀 늦게 틀었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부모는 어떤 사람들인가?

▲ 나도 이해가 안 갑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학부모들의 그런 행태가 아이들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가 성장기에 상처받기도 하고, 그것을 극복해내면서 회복탄력성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일부 학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 교사들이 학부모들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못 하는 일도 있다고 하던데?

▲ 어떤 담임 선생님은 초등학교 5학년 반 아이들에게 좀 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수학 교과서 익힘 문제는 너무 쉬워서 심화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고는 그다음 날에 선생님이 직접 문제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랬더니 학부모의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왜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라고 해서 자기 아이가 열등감을 느끼도록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쉬운 수준만 다루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민원이 들어오면 선생님의 의욕은 꺾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아주 쉬운 문제만 다루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부모가 다른 꼬투리를 잡아서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수업 방해의 다른 사례가 있다면?

▲ 어떤 학부모는 답안지의 틀린 것에 빗금 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아이가 상처받기 때문에 빗금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 그럼 틀린 것은 어떻게 표시해줘야 하나?

▲ 세모로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절반은 맞았다는 의미여서 적절하지 않습니다.

별표나 다른 표시를 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받아쓰기를 하지 말라는 학부모도 있다고 하던데?

▲ 요즘에는 아이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초등학교 4학년이 돼도 받아쓰기를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상대로 받아쓰기를 하게 되는데, 일부 학부모는 그걸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 아이가 잘 못해서 상처받는다는 게 이유입니다.

-- 학부모들은 왜 그런 비정상적 요구를 한다고 생각하나?

▲ 사회 곳곳에 이기주의가 만연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내 아이만 소중하고, 내 아이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학부모의 민원으로 교사들이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 전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외부 체육강사가 강당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체육활동을 주관했습니다.

거기에는 4학년 아이들도 있었고, 6학년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서로 어깨를 주물러주는 타임이 있었는데, 6학년 아이가 선생님의 어깨를 주물러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그럼 나도 주물러줄게"라고 하고 바로 옆에 있는 4학년 아이의 어깨를 주물러줬습니다.

그랬더니 아동학대로 신고당했습니다.

그 선생님이 그 4학년 아이를 평소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 어떤 아동학대를 했다는 것인가?

▲ 그 4학년 아이의 어깨에 멍이 들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교육청과 인권센터는 '혐의없음'으로 판정했지만, 시청 아동학대 전담팀은 혐의가 있다고 봤습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멍이 든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으나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 그 선생님은 시청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나?

▲ 그 선생님은 이 문제를 계속 끌고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부모에게 2천500만 원을 주고 합의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어깨에 멍이 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거액의 돈을 주게 된 것입니다.

-- 아이 어깨를 주물러줬다는 이유로 거액의 돈을 줘야 하나?

▲ 교육적 상황과 맥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나 학부모 이야기만 듣고, 너무 쉽게 아동학대로 판정합니다.

지자체의 공무원과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이뤄진 사례판단위원회가 터무니없이 아동학대 판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 학부모가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 서이초 사태 이후 조심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선생님을 괴롭힐 수 있구나'라고 엉뚱하게 학습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선생님 괴롭히는 방법을 서이초 사태를 계기로 알게 됐다면서 그걸 써먹으려 합니다.

-- 서이초 사태 이후 교권 회복을 위한 조치들이 이뤄졌는데 효과가 없나?

▲ 교사노조연맹이 지난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일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교권이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4%만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 교권은 왜 개선되지 않나?

▲ 여러 가지 조치들이 실효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장 교사들의 말을 충분히 듣고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 교육부, 교육청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교사들의 말을 듣기는 하는데 구색 갖추기 정도로 생각하고는 반영하지 않습니다.

교권 보호보다는 자기들의 실적 쌓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진=교사노조연맹 촬영, 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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