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및 근본적 종합 대책 마련 촉구 학부모 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 학부모가 발언하고 있다. 김채운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텔레그램을 통한 불법 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학부모들이 제대로 된 성인지 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착취 문화를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10대가 올해 붙잡힌 딥페이크 피의자의 73.6%를 차지하는 등 청소년을 중심으로 가해와 피해가 번지는 참담한 상황에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 모인 학부모 단체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당국이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질적인 성폭력 예방교육을 확대하는 등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중학생·고등학생 아이를 둔 구민서(평등 교육 실현을 위한 경기 학부모회)씨는 지난주 큰 아이로부터 “엄마, 겹지방(겹지인방, 서로 겹치는 지인을 확인해 불법 합성물을 올리는 대화방을 뜻함)이라고 들어봤어?”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이는 “우리 학교 애들 다 좋은 애들인 줄 알았는데, 소름 끼친다”며 구씨에게 엑스(옛 트위터) 주소를 알려줬다. 그곳엔 구씨 동네에 있는 학교 이름들이 나열돼 있었다. 딥페이크 피해가 일어난 학교 명단이었다. 구씨는 “이미 지역 카페에는 ‘자녀가 딥페이크 피해자다’, ‘어디 학교 몇 반 아이가 가해자다’라며 가해자 아이와 부모 전화번호까지 올라오는 상황”이라며 “아이가 사랑하는 학교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이 상황이 너무 마음 아팠다.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참담했다”고 말했다.
송윤희(서울 혁신교육 학부모 네트워크)씨는 “부모들은 내 아이도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불안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아이들을 위한 안전 조처는 에스엔에스(SNS) 계정의 사진을 모두 지우라는 것이었다”며 “성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노출이 있는 옷을 입지 말라는 식의 이런 대책이 진정 이 상황이 해결책이라는 말이냐. 이건 오히려 가해를 정당화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논리”라고 꼬집었다.
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및 근본적 종합 대책 마련 촉구 학부모 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 학부모가 발언하고 있다. 김채운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학부모들은 이미 딥페이크 성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엔(N)번방 사건 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학생·교사·보호자 대상 연수가 늘어났었다. 하지만 ‘성인지 교육이 아이들의 성행위를 부추긴다’,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이들의 가치관에 혼란을 준다’는 반대와 예산 감축으로 그나마 희망이었던 성인지 교육이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며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자극적인 환경과 도구만 쥐여 준 꼴”이라고 말했다.
여미애(평등 교육 실현을 위한 서울 학부모회)씨는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성평등'·‘섹슈얼리티' 등을 삭제했고, 여성가족부는 성 인권 교육 사업 예산을 폐지했다. 학교와 도서관에서는 성평등이나 청소년 성교육 관련 도서들을 퇴출했다. 학생인권조례마저 국민의힘 시의원들에 의해 폐지됐다”며 “이 거대한 성착취 문화와 규범이 세대를 넘어서 이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학부모들은 정부와 교육 당국이 성폭력 예방교육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사건의 밑바탕에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잘못된 인식, 우리 사회 전반에 짙게 깔린 여성혐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놀이감으로 만드는 문화 등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며 △국가 차원 디지털 성범죄 비상사태 선포 △전국 초중고교 딥페이크 성범죄 전수조사 △실질적인 성폭력예방교육 확대 △디지털 기록 삭제, 법률 지원 등 피해자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딥페이크’와 ‘N번방’ 진화하는 사이버 지옥 [더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