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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尹 정부가 도입한 '기업 집주인'이 英·美 시장서 벌인 일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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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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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8월 28일 공개한 기업 소유 임대주택 제도가 "전세사기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 사기가 영세한 개인이나 임대사업자 개인의 문제였다는 진단에서다. 그럼 기업이 임대주택을 소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과 영국에서 최근 문제가 되는 기업 임대주택 'BTR(Build to Rent)' 문제를 자세히 알아봤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8월 28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민간 장기 임대주택 공급안을 공개했다. 국토부의 '서민·중산층과 미래세대의 주거안정을 위한 새로운 임대주택 공급 방안'의 핵심은 '기업 집주인'이다. 기업의 범주에는 부동산투자신탁인 리츠(REITs)와 보험사까지 포함된다.

10만호 공급을 목표로 삼은 이른바 '신유형' 민간장기임대주택 사업자는 자율형의 경우 초기 임대료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 기업들이 20년이란 의무 임대 기간 및 유형별 임대료 증액 기준을 지키면 법인 취득세 중과(12%), 종부세 합산·법인세 추가과세(20%) 적용도 피한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에서 민간이 공급한 물량은 2018년 기준 18만채로 전체의 11% 수준이다. 국토부가 20년 장기 민간임대 물량을 계획대로 10만호 공급하면 2034년에는 공공임대주택 민간 공급 물량의 절반 수준까지 기업 소유 임대주택이 증가한다.

박상우 장관은 기지간담회에서 "신유형 임대주택은 목돈 마련 부담이 줄고 그에 따라 가계부채도 감소하며, 전세사기도 방지할 수 있다"며 "전 세계에 없는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만 안 하고 있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의 경우를 보면 기업 소유 임대주택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 관점❶ 공공임대주택 민영화=국토부 안案은 미국과 영국, 호주 등에서 최근 문제가 되는 이른바 BTR(Build to Rent)이라는 민간 임대주택과 사실상 같은 개념이다. 미국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집을 잃은 미국인들이 대거 기업이 소유한 임대주택인 BTR에 장기간 거주했다.

미국이 순수하게 기업 자본으로 BTR을 공급했다면, 영국은 공공부문의 힘이 더 많이 들어갔다. 사실상 공공임대주택의 민영화에 가깝다. 영국은 2012년 이후 중앙정부가 직접 계획을 짜고, 10억 파운드 기금을 조성해 민간기업이 만든 BTR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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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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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토부 안은 세제 지원 등이 담겨 영국식 기업 임대주택 프로젝트보다 좀 더 공적인 영역에 가깝다. 영미권의 BTR 공급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으로 세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다. 첫째, 주택시장의 구조가 변했다. 기업이 소유한 임대주택이 늘어날수록 전체 임대주택 물량은 오히려 줄었고, 개인의 주택 소유도 함께 감소했다.

둘째, 기업이 임대료를 높이고, 퇴거를 늘려 주거안정을 위협했다. 셋째, 얼굴 없는 집주인 문제가 발생했다. 리츠나 펀드, 유한책임회사인 LLC를 통해서 이름 없는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 관점❷ 얼굴 없는 집주인들=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2022년 6월 2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사모펀드 관계자들을 대거 의회로 불렀다. '집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사모펀드와 주택 그리고 미국의 이웃들'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청문회다.

하원 속기록에 따르면 위원장은 청문회에서 "기업과 사모펀드가 2011~2013년 금융위기로 은행이 압류했던 주택 35만채를 인수하고, 이를 임대시장에 내놓은 것은 약탈적 매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 주택들은 집을 처음으로 사는 사람들, 저소득층 구매자들, 은행에 집을 압류당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금융위기 당시 기승을 떨던 기업 집주인들은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월세가 급등하자 다시 등장했다.

아메리칸대학 로스쿨의 브랜든 바이스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기업의 임대주택 사업 강화와 전국 임대료 안정화 정책'이란 논문에서 "미국 임대주택의 3분의 1 이상을 기업이 소유하면서 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며 "기업들이 익명성에 숨어서 세입자들의 주거 환경을 악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에서 개인이 소유한 임대주택 비율은 1991년 92.0%에서 2015년 78.0%, 2021년에는 69%대로 감소했다. 개인 소유 임대주택 340만채가 소멸했다. 주택시장 자체가 흔들리면서 개인이 소유한 주택의 비율도 2015년 48.0%에서 2021년 37.0%로 감소했다. 아메리칸드림의 기본인 자가 주택 비율이 급감한 것이다.

논문은 "애틀랜타 지역 기업 집주인들이 임차인에게 퇴거 통지서를 보낼 확률은 개인 집주인보다 68.0% 더 많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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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22년 하원 청문회에선 퇴거 명령을 받기 위해서 임차인 3000명을 고소한 사모펀드 프리티움파트너스, 임차인 2100명을 고소한 인비테이션홈스 사례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기업 집주인이 펀드 뒤에 숨어서 익명을 보장받기 때문에 과감한 조처를 했다는 얘기다.

미국의 5대 임대주택 기업의 실소유주가 사모펀드인 프리티움파트너스라는 것조차 2021년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2015~2021년 미국 테네시주의 작은 마을인 태미 수 레인 지역에 있는 주택 32채 중에서 19채가 프로그래스 레지덴셜이라는 회사에 팔렸다. 설립 10년이 안 된 이 부동산회사는 시세보다 더 많은 현찰을 주고 산 집들을 임대료와 수수료를 높여 빌려줬다.

프로그래스 레지덴셜은 미 전역에서 이런 집들을 한달에 2000채씩 사들였는데, 조세회피와 자금세탁 관련 기록인 '판도라 페이퍼스'가 공개되면서 프로그래스 레지덴셜의 진짜 주인이 뉴욕의 사모펀드 프리티움파트너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프리티움파트너스는 임대주택 사업에 2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 사람들을 비밀리에 모집해 10억 달러 이상을 모았다"며 "이들의 연간 예상 수익률은 15~20%였다"고 보도했다. 진짜 주인의 수익률 목표가 연간 20%라면 임대료와 수수료의 상승은 당연한 결과다.

■ 관점❸ 필연적 임대료 상승=얼굴 없는 집주인은 영국 BTR의 특징이기도 하다. 인구가 50만명에 불과한 영국 지방도시 맨체스터시 정부는 2012~2020년 "일반 신규주택 임대료보다 20% 저렴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BTR 프로젝트들에 총 83억 파운드를 투입했다. 이 지역 건설회사가 프로젝트에 같은 기간 1540만 파운드만 넣은 것과 대조된다.

호주 매체 더컨버세이션은 지난해 2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2012~2020년 건설된 신규주택의 절반이 기업이 임대용으로 소유한 주택이었고, 4만5000채 중 기업 소유는 2만284채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임대료 수준이다. 지방정부가 자금 투입의 조건으로 내건 저렴한 임대료 약속을 지킨 물량은 전체의 1.1%에 불과한 471채였다. 맨체스터 지역 BTR은 부동산신탁회사인 리츠가 39.0%를 가졌고, 상장펀드가 24.0%, 연금과 보험사가 14.0%, 투자은행이 9.0%를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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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에서 기업 소유 임대주택이 증가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텍사스 주의 주택 건설현장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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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얼굴 없는 집주인 문제는 단지 세입자를 괴롭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의 오픈유니버시티가 맨체스터 기업 집주인들이 투자받은 자금을 추적한 결과 3분의 2가 케이맨제도와 같은 조세회피처, 중동, 중국 등 해외에서 온 돈이었다.

영국 전역에서 기업 소유 임대주택인 BTR은 2012~2022년 24만채 증가했다. 부동산회사 세빌스는 2032년까지 영국에 120만채의 기업 소유 임대주택이 더 들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기업 임대주택의 부작용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한 방식을 도입한 한국은 영미권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피할 수 있을까.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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