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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MT시평]애널리스트와 사료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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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모두가 장밋빛 환상을 품고 결혼하지는 않겠지만 함께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인생의 결단을 내린다. 드라마, 혹은 역사에 나오는 정략결혼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야 내 부족함을 채워줄 바로 그 상대를 만났다고. 그래서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 나의 행운을 알리고 또 축복받기를 원하는 것일 것이다.

M&A도 비슷하다. 매수자에게 M&A는 결혼과 다를 바 없다. M&A로 천상계로 올라간 기업이 있는 반면 잘못된 만남으로 못 볼 꼴을 보게 된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결혼과 달리 M&A 전 매수자는 입을 다문다.

애널리스트로 오래 일하다 보니 분석 대상 기업의 M&A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물론 대기업집단 위주의 한국 기업문화 풍토상 적대적 M&A 사례는 사례집에서나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다. 매물이 흔치 않고 매수자 풀도 매우 제한적이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사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데 사모펀드가 큰손이지만 최종 엑시트를 위해 결국 대형 은행지주회사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옛날 게임 '프린세스메이커'가 생각난달까.

M&A 관련 정보는 정말 희귀하기 때문에 다들 언론 기사에 주목한다. 세기의 결혼이 그런 것처럼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많은 기사가 작성되지만 정보가치가 높은 경우는 흔치 않다. 이는 정보소스가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매수자들이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매수자가 흘린 말 한마디에 포지션이 드러나고 가격이 움직이는데 매물을 찾아 부동산중개사무소를 돌아다닌 것만으로 사려던 아파트 호가가 오르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보소스는 매도자 쪽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방금 전에도 누가 보고 갔다, 지금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서 빨리 결정 안 하면 못 산다, 심하게 저평가돼 있는데 결국 재개발 보면 진짜 싼 거다. 정말 지겹게 들은 이야기인데 M&A라고 다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보가치가 없다면 2차 분석을 통해 정보가치를 찾으면 된다. 기업분석과 거리가 먼 역사를 대학에서 공부한 필자가 애널리스트로서 도움되는 것을 배운 게 있다면 바로 '사료비판'이다. 그 어떤 과거 문헌도 특정한 의도와 관점에서 작성됐으므로 그 정보의 근원을 찾는 작업이 '사료비판'이다. 이 회사의 가치는 얼마 이상이라거나 이 회사를 사면 얼마나 도움이 된다는 기사 그 자체보다 정보의 소스가 왜 그런 언급을 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투자자들이 찾는 진짜 정보일 경우가 많다.

때로는 문헌분석도 효과적이다. 기자들이 같은 정보원을 두고 변주해 각자 작성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기자가 작성한 기사가 입소문처럼 번진 것인지는 기사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명확히 드러난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같은 내용의 기사들이 묶음으로 검색되는 환경에서 비교는 아주 쉽다.

정보가 제한된 환경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보도가 없다고 언론을 탓한다. 하지만 원천적으로 얻을 수 없는 정보가 아니라면 '비판'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그러한 정보가 우리에게 더 큰 가치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보 자체보다 비판적 정보 이용에 더 많은 것이 달렸다. 애널리스트가 그런 직업이다.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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