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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단독] 당장 입사 불가한 신입에 "3개월 후 가능" 편의... 국책연구기관 특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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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연구 포기시점 탓에 입사 연기 타진
혼자만 11월 입사 예정... 탈락자도 있어
국토연구원 "기재부에 문의, 문제없었다"
한국일보

국토연구원 청사. 국토연구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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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 공개채용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다른 기관에 연구책임자로 등록된 지원자가 즉시 입사를 할 수 없자, 이 사람만 3개월 후 입사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는 것이다. 연구원이 특정 지원자에게 혜택을 주느라, 탈락한 경쟁 지원자도 있었다. 연구원은 "적법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해명했지만, 공정성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21일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연구원은 올해 3월 '2024년 제1차 연구직(부연구위원) 공개채용' 공고를 냈다. 서류·면접 전형을 거쳐 지난달 총 7명의 최종합격자 명단을 발표했다.

그런데 최종합격자 중 한 명인 A씨는 유일하게 현재 연구원 소속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예정대로라면 이달 입사해야 했지만 A씨가 임용 등록 과정에서 연구원에 '개인 사정으로 11월에 입사가 가능한지'를 문의했고, 연구원이 인사위원회를 열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입사가 연기된 자초지종은 이렇다. A씨는 5월에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과학펠로십(연구지원사업) 연구책임자로 선정됐다. 해당 펠로십에 선정된 연구자에게는 연간 1억 원의 연구비가 5년간 지원된다. 국토연구원은 채용 과정이 모두 끝난 후 이 사실을 A씨에게 전해 듣고 연구원 임용 등록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A씨는 펠로십을 포기하고 국토연구원에 입사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번엔 제재가 발목을 잡았다. 펠로십 신청요강에 따르면 연구개시일 이후 6개월 내 이직하는 것은 '정당한 연구 포기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 등에 의해 정당한 사유 없이 과제를 중단하면, 2년간 모든 국가연구개발활동 참여가 제한되고 제재부과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A씨가 속한 대학 측에도 기관제재금이 부과돼, A씨가 소속된 학교에서 A씨의 펠로십 포기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펠로십 연구 개시(5월)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A씨가 11월 이후 연구원에 입사하기로 한 것이다.

A씨가 지원한 분야의 채용은 서류·면접의 2단계 전형으로 진행됐다. 총 11명이 응시해 서류전형에서 9명이 선발된 후, 면접에서 A씨만 최종 선발됐다. 국토연구원 자리는 공공기관 정규직이다 보니 정년이 보장돼 이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선 '정부출연연구기관 가운데 가장 좋은 연구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연구원은 연봉도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많다. 공공기관 알리오 공시내용에 따르면, 작년 기준 이 연구원의 직원 평균 보수액은 8,347만 원으로 기타공공기관 평균보수 6,769만 원에 비해 훨씬 높다.

일각에서는 특혜 논란이 나온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채용 공고에는 임용이 '8월 중 예정'이라고 나왔다"며 "A씨는 8월에 입사가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채용 과정에서 이를 연구원에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토연구원은 개인 사정을 봐줘서 다른 지원자들과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본보의 문의를 받은 국토연구원도 원칙적으로는 타 기관의 연구책임자로 있는 사람의 입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국토연구원 측은 이번 채용에서의 절차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 문의한 결과, 입사 시점을 연기해도 된다는 취지의 답을 얻었다"고 밝혔다. 관련 법에 따르면 공정채용 위반 여부는 '채용계획수립 단계부터 합격자 결정 단계' 내에서 판단해야 한다. 즉 합격자 발표일부터 임용 예정일까지 기간 등의 세부사항은 '구직자와 연구원의 협의사항'이므로 ‘임용 예정일’ 변경만으로 공정채용 위반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채용 공고문에 '임용 일정은 원내외 사정 등에 따라 변경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시된 점도 근거로 들었다.

노동 분쟁 사건을 다수 담당해온 김세진 변호사는 "이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앞서 있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며 "사정을 고려해줄 만한 지원자였는지, 친분이나 인맥 등이 채용에 영향을 줬는지 등 살펴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A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연구원 측에서 답변한 것 말고 개인적으로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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