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1년에 500만건 통신자료 조회
정보인권 침해 논란에 국회가 입법 나설 듯
언론노조 등 언론현업시민단체가 지난 8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언론인 대상 대규모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를 규탄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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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지난 1월 여러 언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표 등 야권 인사들의 통신이용자정보(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한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104개 전기통신사업자가 검찰, 경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에 제공한 통신자료는 총 221만2642건이다. 1년에 500만건가량의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이 당사자 모르게 수집하고 있다.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사실상 사찰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검찰은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라고 항변한다. 논란이 계속되자 과기부는 조만간 관계기관들과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여야 모두 무차별적 통신자료 조회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만큼 어떤 방향으로든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지 자세히 살펴봤다.
통제 없는 무방비 통신자료 조회
서울중앙지검의 통신자료 조회는 지난 8월 초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검찰로부터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 통지’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2021년부터 2022년 대선 직전까지 보도된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 관련 기사로 윤 대통령이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다며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지난해 11월 이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은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도 최근 통신자료 조회 메시지를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메시지에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가 지난 1월 4일 수사 목적으로 성명과 전화번호를 조회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통신사에 확인한 결과 실제 조회 건수는 더 많았다. 검찰은 2023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7차례 통신자료를 받아갔다. 제공 정보에는 성명과 전화번호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일도 포함돼 있었다.
기자가 지난 8월 2일 받은 ‘통신 이용자 정보 제공 사실 통지’ 문자메시지. |
사건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주변인들도 통신자료 조회 대상이 됐다는 게 탁 소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8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내·누나·조카 등 가족들, 학교 친구, 후배, 이쪽(언론계)과 전혀 상관이 없는 한 20년 전에 만났던 사람 등 내가 통화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통신자료 조회 메시지를 받았다”며 “검찰에서 내 통화 내역을 본 것 같은데 따로 통지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범죄혐의와 어떤 관련이 있어 탁 소장의 주변인들에 대해서까지 통신자료 조회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까지 나 때문에 피해를 보게 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검찰이 이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 수 없는데 당사자 동의도 없이 자료를 가져가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번 통신자료 조회 대상이 3000여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A씨는 “조회한 곳이 반부패수사부라고 돼 있어서 내가 무슨 부패에 연루됐다는 건가 싶어 기분이 나빴는데, 나는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검찰이 광범위하게 마구잡이로 열어본 것 같은데, 이런 조회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위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직 언론인인 B씨는 “기자에게는 인적 연결망이 중요한데 통신자료가 다른 목적으로 남용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인권위도 “인권 침해 최소화” 권고
문제는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해 법에 정해진 통제 절차가 없다는 것이다. 주거지, 휴대전화 등에 대한 일반적인 압수수색의 경우 수사기관은 법관에게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고, 압수수색 대상자와 범죄혐의의 ‘관련성’이 인정돼야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기관이 통신 내역을 포함하는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받을 때 법원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다. 통신자료는 별다른 절차가 없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의 열람 또는 제출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할 뿐이다.
이 때문에 조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범죄혐의와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피의자와 통화한 적이 있다면 일단 정보 수집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논란이 일자 지난 8월 4일 “통신가입자 확인은 수사 절차에서 당연히 행해지는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라며 “사건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통화 상대방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수사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현행법의 통신자료 조회가 헌법상 영장주의 위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유리문에 검찰 마크가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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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수사와 무관한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이 수집하는 셈이고, 수집된 자료가 어떻게 활용될지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의 선의에만 기댈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통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1월 송두환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수사 목적을 위해 통신자료와 같은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는 수사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며 “적절한 통제 절차를 관련 법률에 마련해 기본적 인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5년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 2019년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도 한국의 통신자료 제공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특히 검찰은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수사를 하면서 여러 언론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해왔는데, 이번 통신자료 조회도 그 일환으로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사들은 “법령 따를 뿐” 해명
전기통신사업법이 통신사가 통신자료 제공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를 규정한 게 아니라 ‘따를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통신사가 자체 판단해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기는 하다. 헌재가 통신자료 제공이 영장주의 위배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도 이 자료 제공이 통신사에 대한 강제가 아니라는 것(임의수사)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6년 수사기관이 형식적 요건을 갖춰 요청한 이상 전기통신사업자는 원칙적으로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결을 한 적이 있다. 한 네이버 이용자가 통신자료를 경찰에 준 네이버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자 원고 패소 취지로 판단하며 판결문에 쓴 내용이다. 2심 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가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심사해 자료를 제공할지 결정하는 등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깼다.
강제는 아니지만 응하는 게 타당하다는 식의 사법기관 판단, 별다른 방침을 제시하지 않는 정부 태도 속에서 통신사들은 수사기관이 요청하는 대로 자료를 제공한다. 통신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하면 수사기관 반발 등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점도 통신사에 부담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법령 등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형식적 요건에 맞지 않는 때만 수사기관 요청을 반려한다고 보면 된다”며 “건수가 많아서 통신사가 자체적으로 하나하나 검토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다른 통신사 관계자도 “우리는 법령에 따라서 할 뿐”이라고 했다.
다만 포털사업자인 네이버는 영장주의 위배 우려를 고려해 현재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네이버 프라이버시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투명성 보고서를 보면 네이버는 2024년 상반기 수사기관으로부터 10건의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받았지만 ‘0건’을 제공했다. 2023년 상반기와 하반기에도 각각 21건, 8건의 요청을 받았고 자료를 주지 않았다. 네이버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와야만 통신자료를 넘겨주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통신사들의 태도는 이용자정보보호에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
논란이 커진 만큼 국회가 제도 개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통신자료 제공 때 법원 허가를 거치게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지난 8월 9일 황정아 의원 대표발의)을 내놓았다. 일각에선 법원 허가를 도입하면 수사의 신속성·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선 법원의 사전 허가를 원칙으로 하되 긴급할 때는 자료를 먼저 받고 사후에 바로 허가받도록 예외 규정을 두면 된다는 반박이 있다.
국민의힘도 제도 개선 필요성 자체는 인정한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7일 “법원에 의한 통제, 영장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장동혁 최고위원은 지난 8월 6일 “통신자료 조회라는 성격상 극도로 제한적으로 활용돼야 하고 과도한 수사가 있으면 안 된다”며 “법원을 거치지 않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기록 조회 논란 때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사찰 공화국”이라고 비판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이번 사안에서 표적이 된 기자나 정치인은 제보자나 내부 고발자 등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과 엮여 있을 가능성이 큰데 통신자료 조회로 (신원이) 드러날 우려가 있다”며 “단순히 인적사항 제공이 아니라 여러 사람 간의 사회적 관계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는) 악용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 대표는 이어 “자료를 요청한 수사기관도, 자료를 준 통신사도 문제가 없다는 법원과 헌재 판단 속에서 이용자는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의문”이라며 “어느 쪽에서도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활용된 권리 침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과기부 관계자는 통신자료 조회 남용 방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냐는 기자 질문에 “관계기관과 협의를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대검찰청에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대검찰청이 응하지 않았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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