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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생리공결 쓰려면 ‘소변검사’ 내라는 대학…전문가 “소변검사가 무슨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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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예술대학교가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생리 공결 증빙서류 강화 안내문. 서울예술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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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교가 학생들에게 생리공결 신청 시 소변검사를 의무화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학교 측은 “부정한 생리공결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학생들은 “생리공결 도입 취지에 반하는 과도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1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예술대학교는 지난 12일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올린 안내문에서 오는 2학기부터 생리공결 증빙서류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안내문은 “병원에서 ‘소변검사’ 실시 후 발급되는 진단서 및 진료확인서에 한해 출석인정이 허용된다”며 “진단서 혹은 진료확인서에 반드시 소변검사를 실시했다는 문구가 기입돼야 한다”고 했다. 생리공결은 생리통이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여학생을 위한 제도로서 생리통 때문에 수업에 결석할 경우 출석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서울예대 교무처는 “지난 1학기 전체 출석인정의 53.5%가 생리공결 출석인정으로 나타났다”며 “일부 학생의 경우 생리통과 무관하게 결석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활용함에 따라 부정 사유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고 했다. 출석인정은 예비군 훈련, 생리통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결석했더라도 출석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대학 측은 이어 “대학 협력기관인 A병원에서 소변검사 실시 및 관련 서류 발급이 가능하다”며 학교 인근에 병원을 안내했다.

이 학교 학생들과 누리꾼들은 “소변검사 의무화는 과도하다”며 반발했다.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X에 “학생 성별 비율만 봐도 여자가 더 많고 여학생이 한 번씩만 써도 (통계가) 절반 이상 나온다”며 “전체 출석인정 중 생리공결이 53%인 건 문제 없는 수치”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A병원은 여성의학과도 아닌 도수치료 전문 병원인데 이곳을 지정해서 소변검사를 하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변검사가 생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소변검사로는 생리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며 “월경 중에도 월경양이 적으면 소변검사가 깨끗하게 나올 수도, 월경중이 아니라도 혈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전문의는 “생리공결을 위해 진료확인서를 발급받는 경우 월경통에 대해 문진을 하지, 내진을 통해 피가 나오는 것을 보거나 월경의 양을 확인하지 않는다”며 “소변검사도 믿을 수 없으니 직접 의사에게 질경을 삽입해 월경중임을 진찰받으라고 할 것인가. 의학적인 검사를 가장했지만 결국 여성의 몸 상태에 대한 증언을 무시하고 권위에 기대어 증명하라는 폭력”이라고 말했다.

생리공결 제도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6년 교육부에 시행을 권고하며 도입됐다. 당시 인권위는 “여성의 생리통은 질병으로 취급할 대상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적 특성 중 하나로 보면서 여성의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또한 악용 우려를 이유로 생리로 인한 결석을 ‘병결’ 혹은 ‘기타 결석’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해선 “이러한 관행은 생리통은 드러내지 말고 단지 개인적으로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교나 직장에서 생리 공결·휴가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인천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최모씨(21)는 “이전에 생리공결을 쓴다고 하니 주변에서 ‘겉으로 보기엔 아파 보이지 않는다’고 해 화가 났던 적이 있다”며 “몸도 아픈데 ‘생리공결을 악용한다’는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이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사무직으로 일하는 박모씨(27)는 “생리통이 심한 편인데 회사에서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라 그냥 약을 먹고 참으며 일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100인 이상 기업 대리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한 여성관리자패널조사에 따르면 70.7%가 ‘생리휴가 제도가 있다’고 답했지만 23.7%만이 ‘생리휴가 제도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윤 전문의는 “생리공결과 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사용하는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월경을 하는 몸의 경험은 다양할 수 있는데, 이런 경험과 여성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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