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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연금과 보험

100세 시대인데 ‘유병자 연금보험’ 감감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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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지난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내원객이 보호자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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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로 인한 ‘유병장수’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저축성 보험인 유병자 연금보험 개발이 올해에도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병자 연금보험은 질병을 앓고 있어 평균 이하의 기대수명을 가진 고객에게 기존 연금보험보다 더 많은 연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10여년 전부터 개발이 논의됐지만 연구·통계 부족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보험협회는 유병자 연금보험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앞서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은 지난 3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생명보험 산업의 성장전략 중 하나로 유병자 연금보험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만 올해 중 개발 여부 등 구체적인 계획이 결정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협회는 단기간 상품을 출시하기보다 충분한 연구와 사례 분석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유병자 연금보험을 개발하자는 논의는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2016년에도 금융 당국과 생명보험업계는 유병자 연금보험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유병자 연금보험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국정 과제로 채택된 이후 여러 차례 개발이 논의됐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유병자 연금보험 개발이 실패를 거듭한 가장 큰 이유는 통계 부족 때문이다. 유병자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건강하지 않은 사람(비표준체)의 각종 의료 정보를 토대로 예정사망률이나 추가 질병 발생 가능성 등 리스크를 측정해야 하는데, 국내 보험사들은 지금껏 비표준체 통계를 충분히 쌓지 못했다. 통계 부족으로 리스크를 잘못 측정했다간 오히려 손해만 볼 수 있어 상품 개발에 적극적일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보험사들은 유병자의 질병·상해를 보상하는 보장성 보험(유병자 보험)을 판매할 때도 해외의 비표준체 통계를 차용하고 있다. 인종은 물론 생활 습관과 문화 등이 다른 해외 고객의 의료정보를 사용하다 보니 리스크 측정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국내 비표준체 통계가 충분하지만, 의료계 반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금껏 보험사가 보건의료데이터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규제개선을 요청해 왔는데, 해결되지 않고 있다”라며 “공공기관이 민영보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어 새로운 담보를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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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사옥 전경. /각 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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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자 연금보험 판매가 보험사에 별다른 이득이 되지 못하는 점도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새 회계제도(IFRS17) 기준 도입으로 생명보험사는 연금보험과 같은 저축성 보험보다 질병·상해를 보상하는 보장성 보험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생명보험사가 고령화 시대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고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미 유병자 연금보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영국 보험사협회(ABI) 등에 따르면, 영국의 전체 연금시장 중 유병자 연금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기준 30%가 넘는다. 미국과 독일은 판매량이 저조하지만 유병자 연금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유병자 연금보험에 대한 연구가 자세히 없었고, 실질적으로 올해 처음 연구가 시작된 것”이라며 “보험사의 사회적 역할 때문에 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올해 중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이학준 기자(hakj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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