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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지리산서 일제 지배 물리치고자 하는 의병의 염원 바위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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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바위글 중 가장 높은 지대, 가장 많은 글자 수

파인드비

천왕봉 바위글씨 조사를 위한 분필 작업 (사진=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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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힘을 빌어 일제를 물리치고자 하는 의병의 염원을 새긴 바위글씨가 새롭게 발견되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국립공원 천왕봉 바로 아래에 위치한 바위에서 의병의 염원이 새겨져 있는 바위글씨(石刻)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바위글씨는 권상순 의병장의 후손이 2021년도 9월에 발견하고 국립공원공단에 지난해 11월에 조사를 요청해 확인된 것이다.

권상순(1876~1931) :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으며, 1894년 전후로 지리산에 들어와 의병을 조직하고 훈련을 시키고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구전이 전해진다.

국립공원공단 연구진은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이 바위글씨 전문을 촬영하고 탁본과 3차원 스캔 작업으로 기초조사를 펼친 결과, 자연석 바위에 전체 폭 4.2m, 높이 1.9m의 크기로 392여자가 새겨졌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확인된 근대 이전의 바위글씨(194개 추정)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발 1,900m대)해 있으며 글자수도 가장 많은 바위글씨다.

연구진은 이 바위글씨의 글자가 마모되어 전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워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최석기 부원장과 한학자 이창호 선생에게 의뢰하여 그 내용을 판독했다.

판독 결과, 이 바위글씨는 구한말 문인 묵희(墨熙, 1875~1942)가 지은 것으로 1924년 지리산 천왕봉 밑의 바위에 새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바위글씨를 번역한 최석기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천왕(天王)을 상징하는 지리산 천왕봉의 위엄을 빌어 오랑캐(일제)를 물리쳐 밝고 빛나는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토로한 것이 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송형근 국립공원공단이사장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정상에서 일제에 대항한 의병과 관련된 바위글씨가 발견된 것은 국립공원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여주며, 지리산 인문학과 지역학 연구에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전문 번역본

서경 「제전(帝典)」(「순전(舜典)」)에 "만이(蠻夷)가 중하(中夏)2)를 어지럽혔다."라고 하였으니, 중하와 오랑캐가 사방을 경계로 한 것이 분명하고도 오래되었도다. 춘추의 대일통(大一統)은 곧 양(陽)을 부지하고 음(陰)을 억제하며 왕도(王道)를 존숭하고 패도(覇道)를 내치는 것으로 화하(華夏:중화문명)를 숭상하고 이적(夷狄)을 물리치며 충량(忠良)을 현양(顯揚)하고 난적(亂賊)을 주벌(誅罰)하는 것이 그것이니, 그 중하를 존숭하고 오랑캐를 물리친 것이 또한 늠름하지 않은가.

대개 황극(皇極)이 나라를 창업하고 왕도(王道)를 행할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받들어 전하였는데, 총 얼마 동안의 기년(紀年)이 지난 뒤에는 성인이 태어나 천하를 책임지고서 임금과 스승이 되었으니, 이것이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가 삼황(三皇)의 기년이 되며 모두 상고시대의 여러 해이다. 소호씨(少昊氏)·전욱씨(顓頊氏)·제곡씨(帝嚳氏)·당요씨(唐堯氏)·우순씨(虞舜氏)가 덕으로 서로 계승하였으니, 이것이 오제(五帝)의 기년이며 모두 몇 년이다.

하후씨(夏后氏)가 순(舜)임금의 선양(禪讓)을 받았고, 상(商)나라 탕(湯)임금이 우(禹)임금의 하(夏)나라를 계승하였으며, 주무왕(周武王)이 탕임금의 상나라를 정벌하였으니, 이것이 삼왕(三王)의 기년이며, 모두 몇 대 몇 년이다.

한고조(漢高祖)가 주나라 천자가 쇠미해진 틈을 엿보고서 일어나 황제가 되어 몇 세대를 전했는데, 조만(曹瞞)이 유궁후예(有窮后羿)와 왕망(王莽)을 이어 잠시 신성한 기물을 훔쳤다. 그러나 촉한(蜀漢)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의기를 떨쳐 잘 끝마쳤으니, 총 몇 년이다.

진무제(晉武帝)가 염흥(炎興)을 만나 나라를 일으켜 면면이 몇 년을 이어갔다. 오호(五胡)가 중화를 어지럽혀 송(宋)나라·제(齊)나라·양(梁)나라·진(陳)나라가 겨우 명맥과 지위를 보전하여 총 몇 년을 내려왔다. 隋나라가 통일하여 몇 년을 지배하였으며, 李淵 부자가 스스로 일어나 唐나라를 건국하여 여러 세대 몇 해를 전했다.

조씨(趙氏)의 송(宋)나라는 평안하게 다스려진 때가 또한 몇 년이다. 그런데 북방의 여러 오랑캐가 송나라를 침범하여 마침내 타무르(鐵木兒)를 만나 그에게 멸망 당하였다. 대명(大明:명나라)은 천명을 누려 몇 세대 몇 년을 전했으나 누르하치(努哈赤)에게 멸망 당하여 거의 명맥이 끊어졌다.

아! 천도가 그릇된 것인가? 옳은 것인가? 어찌하여 황호(皇昊)가 떨치지 못한단 말인가. 혹 영력(永曆)이 이어지려는 것일까? 그러나 사해가 텅 비었고, 온갖 오랑캐가 발호하고 있으니, 또한 어느 때나 안정될 것인가? 장차 6만 년을 전해 온 문화가 이에 금수(禽獸)의 지경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닌가?

오늘날 천지가 크게 닫혔다고 하는데, 다시 열리는 기미는 언제쯤일까? 오랑캐를 크게 통일하여 문명이 밝게 빛나고 넓게 퍼져가는 날을 반드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울분과 원통함을 금치 못하고서 피를 토하고 울음을 삼키며 이 남악(南嶽:지리산) 천왕봉(天王峯)에 올라 만세 천왕(天王)의 대일통을 기록한다. 아! 슬프다.

숭정(崇禎) 후 여섯 번째 갑자년(1924) 가을 7월 임자일 초하루 나라를 잃은 유민 고죽(孤竹) 묵희(墨熙)가 짓고, 화산(花山:안동) 권륜(權倫)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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