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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가계빚' 방패로…이창용 버티는 이유 2가지[시험대 오른 한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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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양대 책무인 '물가·금융안정' 방패로 금리인하 압박 버텨

미국마저 '연준 실기론'…실제 인하 전까지 물밑 공방전 예상

뉴스1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완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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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혜지 김유승 기자 = 정부와 정치권이 쏟아내는 기준금리 인하 요구에도 한국은행이 꿋꿋이 신중론을 고수할 수 있는 이유는 법률이 내어준 두 방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양대 설립 목적인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으로, 최근 정부가 한은을 압박하는 데 쓰는 내수 진작 등의 명분은 엄밀히 말하면 중앙은행의 법적 책무가 아니다.

물론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 압력을 가하는 현상은 한국만 겪는 일이 아니며, 미국도 최근 대동소이한 일을 겪고 있다. 중앙은행 책무를 지키겠다는 한은과 빠른 금리 인하를 원하는 외부 진영 간 대립은 실제 인하 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12일 한은에 따르면 이창용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기자 간담회에서 "물가 둔화 추세와 금리 인하 시 나타날 수 있는 성장, 금융 안정 간 상충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와 폭 등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가계부채, 수도권 부동산 가격 등 국내 금융 안정에 대한 고려도 못지않은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향후 금리 인하 시점을 결정하는 데 있어 금융 안정을 한층 전면에서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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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1일 금통위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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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발언은 한은법 제1조에 나타난 설립 목적과 맞닿아 있다. 한은법 1조 1항은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물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규정한다. 이어서 1조 2항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 금융 안정에 유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금리 인상기 들어 첫 인하라는 중대 결정을 내릴 때도, 한은은 물가 안정을 우선하면서 금융 안정을 살펴야 하는 셈이다.

반면 정부와 정치권의 조기 금리 인하 요구에는 내수 부진에 대한 선제 대응 차원이라는 목적이 강하게 읽힌다.

국민의힘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는 지난달 15일 유상대 한은 부총재가 참석한 회의에서 고금리 장기화 기조의 부작용을 부각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놨다.

특위 위원장인 김상훈 의원은 "한은이 발표한 소비자 심리를 보면 내수 장기 부진을 타파하기엔 아직 여력이 없어 보인다"고 지목했다. 김 의원은 "장기 내수 부진 원인은 고금리 장기화"라면서 "최상목 부총리도 소상공인이 지목한 내수 부진 주원인으로 고금리를 꼽았다"고 나열했다.

이어 "금통위의 독립된 결정권을 존중해야 하나, 특위에 참석한 여러 의원이 최근 우리 서민·국민이 느끼는 금리에 대한 불편함을 여과 없이 말할 것 같다"며 "그 부분을 충분히 참고해 의사 결정에 반영되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어 정부가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수출은 낙수 효과가 덜한 데다 미국 경기가 침체하면 수출마저 낙관하기 어려워 한은을 계속 압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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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통합별관 내부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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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은법이다. 한은법은 정부 정책과 어떻게 합을 맞출지에 대해 "물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할 뿐, 내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조항은 갖추고 있지 않다.

오히려 법률상 책무에 따르면 한은은 현시점에서 금리 인하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은은 상반기 내수 부진이 예상보다 깊었으나 하반기 갈수록 물가 안정이 진전되면서 가계 실질 소득이 개선되고 소비 위축이 완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 금통위원은 지난달 금리 결정 회의 당시 "소비가 1분기 큰 폭 상승 후 2분기 조정됐으나 하반기엔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봤다.

거꾸로 장애물은 금융 안정 쪽에서 자꾸만 불거지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집값 상승 기대 심리를 부풀리면서 수도권 중심으로 주택 가격을 밀어 올리고, 부동산 매매 심리를 자극해 가계부채 하향 안정화 기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금통위원은 지난달 회의 당시 "금리 인하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 전제돼야 한다"며 "금리 인하가 경제 구조조정 노력을 되돌리거나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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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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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종종 정부와 마찰하는 경우 추후 예산과 관련해 곤란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한은은 매해 급여성 경비를 정할 때 기획재정부로부터 사전 승인을 얻어야 해, 사실상 정부가 한은의 인건비와 복리후생비를 거머쥔 상태다.

하지만 한은은 중앙은행 책무를 위반해 실기할 경우 미래에 쏟아질 비판을 동시에 의식해야 한다. 이에 법률이 부여한 책무인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방패막이 삼은 채, 최대한 적정 시기에 금리를 내리겠다는 것이 한은의 기본 입장이다.

다만 중앙은행 독립이 더 잘 보장된 미국에서도 최근 '연준 실기론'이 제기되면서 금리 인하 압박이 이어지는 터라, 한은의 고심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아직 연준 같은 기관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한은은 정부의 압력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실제로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은 시장의 중론인 10~11월보다 앞당겨져야 한다는 시각도 전문가들 사이에 존재한다. 물가 안정은 최근 확신에 가까워졌고, 가계부채 문제는 정부의 거시 건전성 정책으로 대응하면 된다는 취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를 붙잡는다고 가계부채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며 "집값 상승은 공급 절벽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워 꺾으면 되고, 가계부채 증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확대 등으로 막으면 되는데 굳이 금리 인하 시점을 놓쳐서 내수를 지나치게 침체시킬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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