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33℃도 육박한 지난 6일 오전 11시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 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어민 김평만(62)씨가 일하고 있다. 김씨 머리 위로 통영시가 띄운 드론에서 '폭염 경고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안대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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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피할 곳 없는 바다
폭염 특보가 18일째 이어진 지난 6일 오전 11시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 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0.95㏊). 검게 탄 어민 김평만(62)씨와 동티모르 국적 외국인 근로자 2명은 연신 사료로 쓸 정어리를 옮기고 판매할 물고기를 선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내리쬐는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이 시각 체감온도는 33℃(32.6℃)에 가까웠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는 무더위였다. 그런데도 김씨는 “오늘은 시원한 편이다. 이틀 전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며 "땡볕에 일을 하다 보면 체중은 자연스럽게 준다"고 했다. 지난 4일 같은 시각 통영 체감온도는 이때보다 약 2℃ 더 높은 34.9℃였다. 이런 폭염 속에서 계속 일하다 보니, 김씨는 2주 새 몸무게가 73㎏에서 69~70㎏으로 3~4㎏ 빠졌다고 한다.
이처럼 드넓은 바다에서 일하는 양식장 어민들은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김씨는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가끔 머리가 핑~ 돈다”고 했다. 바다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선 땡볕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양식장 한쪽에 마련된 컨테이너가 유일한 피난처다. 폭염 대책은 평소보다 휴식 시간을 자주 가지면서 시원한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는 게 전부다.
체감온도 33℃도 육박한 지난 6일 오전 11시쯤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동티모르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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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핑~ 바다 빠질 뻔”…하지만 못 쉬어
그렇지만 폭염을 피해 마냥 쉴 수도 없는 형편이다. 김씨가 주로 양식하는 농어(10만 마리)는 지금이 제철이다. ‘여름 농어’는 여름철 보양식으로도 인기다. 김씨가 키우는 쥐치(35만 마리)도 늦봄부터 주로 팔린다고 한다. 그는 “사정이 이러니 덥다고 일을 안 할 순 없지 않냐”고 말했다. 다른 해상 가두리 양식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통영 양식장 어류의 절반 이상(54%)을 차지하는 우럭은 다음 달(9월)이 제철이다.
이 때문에 어민들은 한창 더운 오후 시간대를 피해 봄·가을철보다 2시간 빠른 오전 5시부터 일한다. 이어 한창 더운 2~3시쯤 퇴근하는데, 점심시간이 어중간한 탓에 해상에선 밥을 먹지 못할 때도 잦다. 무더위에 체력은 떨어지고, 영양분 섭취마저 부족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지자체는 수시로 폭염 경고 방송을 하는 동시에 온열질환자 발생 여부를 살피고 있다. 이날 통영시는 확성기를 부착한 드론을 띄웠다. 뭍에서 약 600m 떨어진 김씨의 양식장 상공에서도 ‘야외 활동 자제’, ‘폭염 안전수칙(물·그늘·휴식)’ 등을 알렸다. 경각심 차원에서다. 김씨는 “‘이 일만 해야지’ 하다가 나도 모르게 더 일한다. 방송 듣고 ‘좀 쉬어야겠다’ 생각하니 고맙다”고 했다.
한낮 최고기온 33도를 기록한 지난 7일 경남 통영시 한 양식장에서 어민이 폐사한 어류를 건져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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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온 언제 덮칠까…남해안 어민 ‘전전긍긍’
남해안 양식장 어민들은 고수온이 더 걱정이다. 양식장 어류는 고수온을 피할 수 없어 집단 폐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영에서만 고수온으로 155억3700만원 상당 피해가 발생했다. 이때 어류 1173만6000마리 등이 폐사했다. 국내 최대 양식업 밀집지인 경남에서는 지난해 고수온 피해액이 207억원(어류 1466만 마리 등)에 달했다.
다행히 남해안은 서해안과 달리 수온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경남도 등에 따르면 최근 경남 남해안 수온은 21~23℃ 수준이다. 이날 김씨 양식장에 설치된 수온계에도 수심 3·5m 지점 수온은 각각 22.6℃, 20.9℃였다. 고수온에 취약한 우럭이 버틸 수 있는 한계수온(28℃)에 이르지 않았다. 오히려 적정수온 (12~21℃)에 가깝다.
지난해 8월 경남 통영시 산양읍의 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 조피볼락(우럭) 폐사체가 떠올라 있다. 사진 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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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대 빠지면 고수온 온다”
이는 냉수대(주변 수온보다 5℃이상 낮은 물 덩어리)가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8일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에 따르면 이날까지 진해만과 외해인 통영 두미도 부근을 제외하면, 경남의 남해안에는 고수온주의보가 발령되지 않은 상태다. 그 전 단계인 고수온 예비특보만 발령돼 있다. 고수온주의보와 고수온 예비특보는 수온이 각각 28℃ 이상, 25℃ 이상 도달하거나 도달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진다.
수과원 관계자는 “냉수대가 중층(3~5m)뿐만 아닌 표층(1~2m)까지 머물고 있어 통영·거제 등 수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며 “냉수대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현재까진 남풍 계열이 불어 (냉수대가) 빠지지 않았지만, 북동풍 계열로 바뀌면 조류가 변화해 냉수대가 빠지면서 수온이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영시 관계자도 “실제로 지난해 태풍 카눈이 지나가면서 냉수대가 빠져 수온이 급격하게 올랐다”며 “우럭 등 고수온에 취약한 어종이 적응할 시간도 없이 대량 폐사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경남 통영시의 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에서 박완수 경남지사가 고수온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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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온 대비할 면역증강제 공급↓
지자체는 비상대책반을 가동하는 등 고수온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수온 대비 산소발생장치와 수온이 낮은 저층(6~10m) 바닷물을 표층으로 끌어올리는 저층해수공급장치 등 고수온 대응장비도 바다를 낀 경남 6개 시·군(통영·거제·고성·남해·하동·사천)에 보급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고수온에 대비할 단기 대책인 면역증강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비타민 등 영양분이 든 면역증강제를 먹여야 고수온 피해를 줄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올해 경남도가 자체 사업으로 공급한 면역증강제는 14t에 그쳤다. 지난해 22t보다 8t 줄었다.
경남도 관계자는 “(세수 부족 등으로) 예산이 없어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에) 국비 사업 중에 가능하면 지침을 개정해 지원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통영=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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