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0 (화)

10월 헌재 마비설…거야, 무더기 탄핵몰이 이걸 노렸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10월 헌법재판소 마비’ 괴담이 돌고 있다. 10월 17일 임기가 만료되는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의 후임자 지명 과정이 지연되면 헌재 기능이 멈춰버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 이후 7명의 공직자를 겨냥해 탄핵 카드를 빼 든 게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앙일보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5월 3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5월 심판사건 선고를 앞두고 자리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수신료 분리징수’ 헌법소원 선고, '헌정사 첫 검사 탄핵심판' 선고를 비롯해 대체복무제와 문재인 정부 종부세 위헌 여부 등에 대해 결론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5월 말 22대 국회 개원 이후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강백신·김영철·박상용·엄희준 검사, 이상인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이진숙 방통위원장 등 모두 7명에 대해 탄핵을 추진했다. 앞서 21대 국회에선 8명의 공직자 탄핵을 추진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해당 공직자의 직무는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된다. 헌재의 사건 심리는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열린다. 헌재 재판관이 6명 이하가 되면 심리가 중단돼 직무 정지 기간이 추가로 늘어난다. 재판관 9명의 임기 만료 시점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10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재판관은 총 4명이다. 9월 20일 이은애(대법원장 지명)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고, 10월 17일엔 국회 몫인 이종석(자유한국당 추천), 이영진(바른미래당 추천), 김기영(민주당 추천) 재판관의 임기가 끝난다. 국회 몫 재판관 3인 선출은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국회 몫 재판관 선출 절차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론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1인, 여야 합의 1인 등 3인을 정한다. 하지만 이는 관례일 뿐 법 규정에 따른 게 아니어서 강제력이 없다. 예컨대 170석 민주당이 반대하면 3인 중 단 한 명도 지명할 수 없다.

중앙일보

김영옥 기자


이 때문에 여권에선 ‘10월 헌재 마비설(設)’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은 통화에서 “만약 민주당이 의결에 협조하지 않으면, 3인 재판관 자리는 공석으로 남고 헌재는 ‘6인 체제’가 된다”며 “헌재는 재판관이 최소 7명 이상 출석해야 사건 심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6인 체제는 곧 헌재 식물화”라고 우려했다.

헌법학회장인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마비 상태가 이어지면 아쉬운 쪽은 민주당이 아닌 정부·여당”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의 탄핵 공세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검사 출신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도 요건을 갖추지 못한 무더기 탄핵 몰이가 하나도 인용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헌재 마비를 통한 공직자 직무정지의 장기화일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 기능이 멈추면 국민의힘의 반격 카드인 권한쟁의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무력화된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12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문회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했다. 전 국민에게 25~35만원을 지급하는 민주당의 민생회복지원금법에 대해서도 권한쟁의를 검토 중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통령 거부권과 함께 거야(巨野)의 폭주를 제어할 몇 안 되는 수단”이라며 “헌재가 멈추게 되면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 법사위원은 “우린 여권이 원하는 대법관 임명도 절차대로 다 진행하고 있다”며 “여권에서 근거 없는 괴담을 유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중앙일보

7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5회국회(임시회) 4차 본회의에서 검사(강백신) 탄핵소추안의 법제사법위원회로의 회부 동의의 건이 재석 161인 중 찬성 158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되는 가운데 박성재 법무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착석해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헌재는 한 차례 마비된 전례가 있다. 2018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민주당 추천을 받은 김기영 재판관 후보자의 정치 편향을 문제 삼자, 국회 몫 재판관 3인에 대한 표결이 미뤄졌다. 결국 35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여야가 극적인 타협을 이룬 뒤에야, 헌재는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이번에도 국회 몫 헌재 재판관 3인을 놓고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몫 추천 재판관 중 어떤 성향이 더 많은지에 따라 헌재 구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현재 헌재 재판관을 보수 성향 2인(이종석·정형식), 중도 3인(이영진·김형두·정정미), 진보 4인(문형배·이미선·이은애·김기영) 구도로 본다. 이 가운데 보수 1인(이종석), 중도 1인(이영진), 진보 2인(이은애·김기영)이 10월까지 교체된다. 이은애 재판관 후임으론 조희대 대법원장이 보수 성향 재판관을 지명할 거란 관측이 많다. 이렇게 되면 국회 몫 3인을 뺀 헌재 재판관 6명은 보수 2인, 중도 2인, 진보 2인이 된다. 법조계에선 “국회가 추천하는 재판관 3인에 전체 헌재의 이념 성향이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일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현 의원(가운데),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왼쪽), 한민수 과방위원이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상인)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이미 국회 추천 3인의 배분을 둘러싼 물밑 신경전이 시작됐다. 특히 여야 합의 추천 1인의 배분이 관심이다. 야권에서는 “12석을 가진 제3당 조국혁신당이 여야 합의 1인을 추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8년 여야 합의 몫을 교섭단체였던 제3당 바른미래당이 가져갔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여야 합의 몫을 진보 성향 재판관으로 채우면 안 된다는 우려도 있다.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여야 모두가 수긍할만한 합리적 재판관을 추천하라는 게 여야 합의 몫의 취지”라고 했다.

손국희·김기정 기자 9key@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