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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삼성 반도체라인을 더 쉽게 멈추게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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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총파업에 돌입한 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07.08/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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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창사 55년만에 단행한 첫 파업이 지난 1일 사실상 무위로 돌아간 가운데 국회에선 파업을 더 부담없고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5일 임시회 첫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시 회사 기물을 부숴도 노동조합에 집단 책임을 물을 수 없고 회사가 기물을 파괴한 한명한명을 찾아 그 책임을 묻도록 하는 내용과 하청업체의 노조가 원청업체 사업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노조가 생산라인을 점거한 후 CCTV를 가리고 생산시설에 위해를 가해도 노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수백~수천개의 하청노조와 원청 사용자가 일일이 교섭을 해야 하는 불가능한 문제도 발생한다.

야당에선 노란봉투법이 우리 사회의 최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바꿀 기회를 주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 하나가 세상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졌을 것이다. 이 세상은 단순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분법적 투쟁 구도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한 계층간에 이권으로 얽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다.

이런 만인의 전쟁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독단이 아닌 상호 공감하고 합의하는 '조금은 거칠더라도 다투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법은 결국 여러 회피 방법을 찾을 빌미를 주고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2007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다면 만든 소위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만 봐도 알 수 있다. 2년을 초과해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오히려 독이 됐다. 2년이 되기 전 해고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부지기수다. 기업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노동의 유연성 부족 때문이다.

한번 채용하면 회사 사정이 어렵더라도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는 신규채용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가 해고요건을 까다롭게 요구하는 데는 사회안전망이 실직 후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 이유도 있다.

따라서 국가가 실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충실히 갖추고, 기업에게 노동의 유연성을 제공하면 비정규직 보호법 같은 법 자체가 필요없게 된다. 국회가 비정규직 보호법을 강화할 게 아니라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강제적인 입법에 앞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으면 해답은 나온다. 따라서 표심에 기대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지기보다는 국민 전체에 무엇이 이로운가를 숙고해야한다.

노란봉투법으로 삼성전자 정규직 근로자들이 반도체 생산라인을 멈추는 게 쉬워져 그들의 목적 달성이 빨라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생산중단에 따른 손실 책임을 묻기 어려워지면 노조의 이익 뒤에 있는 주주들의 손해는 물론 삼성전자 하청업체의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또 사회계약법상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닌 원청업체에까지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면 협력업체가 수백~수천개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LG전자·SK하이닉스·HD현대·포스코 등 우리 산업을 지키는 기업들은 연구개발보다는 파업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1월에 이어 5월에도 우리 수출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올라섰다. 이런 쾌거를 지속하려면 노사안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수출의 16% 가량을 차지하고 평균연봉 1억 2000만원을 받는 반도체 대기업노조가 50만원의 여가포인트를 제시한 회사의 안을 걷어차고 100만원으로 올려주지 않는다며 파업의지를 이어가는 실정이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이들은 더 강한 무기로 더 쉽게 기업을 압박할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을 놀라게 하는 '놀란봉투법'이자, 끊임없이 논란만 야기하는 '논란봉투법'이 될 소지가 크다. 부디 여야가 충분한 협의를 통해 근로자와 기업 모두에 도움이 되는 입법에 나서길 바란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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