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전력에 발목 잡힌 AI-반도체… AI 경쟁 심화하며 전력 수급 비상
대만 과학단지서 대규모 정전… 美선 AI 인센티브 철회 검토
빅테크, 전력 인프라 투자 나서… 신생 에너지 기업 주가 크게 올라
“지역 간 전력 인프라 수준 따라 경제 발전 격차 크게 벌어질 것”
《AI 경쟁에 전력 확보 비상
인공지능(AI)발 전력 고갈 우려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급증으로 당장 내년부터 전력 고갈이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AI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글로벌 전력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이 5년 안에 고갈될 것이라는 제 예측은 틀렸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18∼24개월 내 전력 부족에 시달릴 것입니다.”
글로벌 디지털 인프라 기업 ‘디지털브리지(DigitalBridge)’의 마크 간지 최고경영자(CEO)가 올 4월 1분기(1∼3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전화회의) 중에 내놓은 전망이다. 간지 CEO는 2022년 베를린 인프라 콘퍼런스에서 2027년이 되기 전 전력이 고갈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시점을 2025년 하반기(7∼12월) 또는 2026년 상반기(1∼6월)로 당겨 잡은 것이다. 그는 “오늘날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은 글로벌 경제 전반의 최전방에 서 있다”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전력”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AI 경쟁은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똑똑한 AI 모델을 만드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기에 따라 AI를 빠르게 학습시킬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전력 문제를 해결해야 AI 싸움에서 이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프라 전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 유례없는 AI發 전력 급증에 전 세계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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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AI는 말 그대로 ‘전기 먹는 하마’다. 한 번 온라인 검색을 할 때마다 평균 0.3Wh(와트시) 전력이 필요했다면 챗GPT 같은 생성형 AI 모델은 검색당 10배 수준인 2.9Wh를 소모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이미지·영상 기반 AI는 텍스트 AI 대비 전력 소모량이 40∼60배에 달한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표준 기관인 업타임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AI가 글로벌 전력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에서 내년 10%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 현지 언론에선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걱정했던 전력 문제가 터진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황 CEO는 앞서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행사 ‘컴퓨텍스 2024’에서 “대만에서 추가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는 데 전력 인프라가 큰 도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 반도체 제조업의 전력 소비량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23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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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데이터센터가 잡아 먹을 전력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정부가 약속한 투자 인센티브를 철회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나왔다. 미 조지아주가 대표적이다. 올해 3월 공화당 소속 주 상하원 의원들이 기존 데이터센터 인센티브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데 이어 신규 데이터센터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중단하자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첨단 산업 유치에 열을 올리던 조지아주는 올해 산업용 전기 수요가 이미 사상 최대를 찍어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TSMC가 공장을 짓고 있는 애리조나주도 전력 인프라 대규모 업그레이드 없이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오하이오주에서도 미국 전력회사 아메리칸일렉트릭파워(AEP)가 “급증하는 데이터센터와 2025년 완공 예정인 인텔 반도체 공장 때문에 전력 수급 부담이 급격히 커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력 인프라 감시·감독 기구인 북미전력안정성회사(NERC)는 매년 10년 치 신규 전력 수요 전망치를 내놓는데 지난해 이 수치를 2022년 대비 2.5배로 확대했다.
● 인프라도 새 먹거리… 신사업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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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빅테크는 전력 확보를 위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관련 인프라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기존 송배전, 화석연료 발전 등 전통 인프라 기업보다는 신재생에너지나 원자력 발전, 액침냉각 등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업들에 더 큰 기대가 모이고 있다. 기업들은 단순 전력 확보를 넘어 탄소 감축 미션도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올 4월 한 벤처캐피털(VC)이 2000만 달러(약 276억 원) 규모로 진행한 스타트업 ‘엑소와트’ 투자에 참여했다. 엑소와트는 태양광 발전에 널찍한 패널 대신 렌즈를 활용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5월 브룩필드애셋매니지먼트의 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내년부터 2030년까지 10.5GW(기가와트) 규모의 재생에너지를 공급받기로 했다. 구글은 지난해 11월 데이터센터용 전력 확보를 위해 지열발전 스타트업인 페르보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지열은 지구 내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날씨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성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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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시장에서도 신생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고 있다. AEP나 서던컴퍼니, 넥스트에라에너지 등 최소 7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기업들은 1년 사이 주가가 10% 안팎으로 소폭 오르는 데 그친 반면에 상대적으로 신생인 버티브홀딩스, 콘스텔레이션에너지, 비스트라 등은 더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며 거의 3배로 뛴 곳도 있다.
● “전력 인프라 놓치면 발전 기회도 놓쳐”
구글 클라우드의 데이터센터 내부 서버실. 구글 블로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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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전력 인프라를 확보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국가 간, 지역 간 경제적 격차는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은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확보된 곳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시설 및 설비 투자를 검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이 특정 지역에 몰리는 결과로 이어져 또 다른 수급 불균형을 낳는 등 악순환을 파생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에너지 컨설팅 회사 그리드 스트래티지스는 “그리드(전력계통)가 따라가지 못한 지역은 경제 발전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부동산 회사 JLL의 앤디 크벤그로스 데이터센터 시장 담당 상무는 “이제 모두가 전기를 쫓아 자원을 집중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유례없는 사태에 전력 회사들은 수급 불균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다. 시스템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라고 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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