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국면마다 협상 중심에 선 인물
"가자지구 강경파와 소통하는 경로"
최근까지 이스라엘 휴전 협정 참여
31일 암살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지난 30일 이란 테헤란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대통령 집무실을 방문해 회담을 하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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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된 이스마일 하니예는 20년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이끈 최고위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최근까지 국제사회가 중재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 협정을 이끄는 등 중요한 외교 국면마다 '하마스의 얼굴'로서 협상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하마스 초기 멤버에서 팔레스타인 총리까지
하니예는 1962년 가자지구 북쪽 샤티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현재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면서 식량 배급으로 끼니를 때우며 성장했다. 가자지구 이슬람대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하마스 창설자인 아메드 야신(1936~2004)과 가까워졌다.
'제1차 인티파다(1987~1993·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 기간인 1988년 창설된 하마스에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여러 차례 이스라엘에 의해 체포와 투옥을 반복하다 1992년 레바논 남부로 추방된 그는, 1993년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오슬로 협정 체결 등 국제 사회에 번진 찰나의 해빙 무드를 틈타 가자지구로 돌아왔다.
이스마일 하니예(왼쪽) 하마스 정치 지도자가 지난 30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만나 회담을 갖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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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하니예의 하마스 내 입지는 날로 탄탄해졌다. 야신의 보좌관을 지내면서 조직을 장악했고, 2004년 야신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하자 '집단 지도부'의 일원으로 임명됐다. 2006년에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총리에 올랐다. 이후 선거 결과를 두고 파타(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갈등을 빚다 해임된 그는, 하마스가 일방적으로 가자지구를 통치하게 되면서 가자지구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하마스의 정치 및 외교 전선"
2017년 현재의 가자지구 지도자인 야히야 신와르에게 자리를 넘긴 하니예는 정치국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2년 뒤 카타르와 튀르키예 등으로 망명했는데, 최고급 호텔에서의 호화 생활이 공개되며 지탄을 받기도 했다. 2018년 미국은 하니예를 '국제 테러리스트'로 지정했다. 지난 4월에는 세 아들과 손주 등을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잃기도 했다.
외신은 하니예를 '하마스의 정치 및 외교 전선'이라 묘사한다. 그는 오랜 기간 중동 국가들과 하마스의 외교 관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이집트·카타르·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과의 휴전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은 "하니예는 가자지구의 신와르와 같은 강경파 인물들과 소통하는 핵심 경로로 여겨졌다"며 "아랍 외교관과 공무원들은 가자지구 내부의 다른 호전적인 세력에 비해 그를 비교적 실용주의자로 봤다"고 전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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