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날 하마스 지도자 암살 강행…"전쟁 멈추지 않겠다는 것"
팔레스타인 내 이슬람 정파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30일(현지시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하니예는 회담 직후 이란 수도 테헤란 숙소에서 이스라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로이터=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이 이틀 사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 최고위 인사를 연달아 암살하면서 중동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특히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당일 이곳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당해 중동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확전이 필요하지 않다며 사태 진정에 나섰지만, 당장 국제유가가 오르는 등 불안한 모습이다.
알자지라, 테헤란타임즈 등 중동 매체에 따르면 하니예는 31일(이하 각 현지시간) 오전 2시 테헤란에 마련된 퇴역군인 숙소에 머무르던 중 유도탄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하니예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하마스 지지 선언을 부탁할 목적으로 테헤란에 체류 중이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하니예는 하마스 내부에서 그나마 온건파로 꼽히는 인물로, 가자지구 평화 협상을 담당했다. 하마스는 하니예가 지난 4월 이스라엘 공습으로 아들 셋, 손주 넷을 잃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내 아들들의 피가 (다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보다) 더 귀하진 않다"면서 휴전 협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하니예를 비롯한 지도부 전체가 지난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민간인들을 살해한 사건에 관여했다면서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하니예가 하마스 군사능력을 키우는 데 일조한 것은 맞지만 10월 공격에 가담했는지 불분명하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잇단 주요 인사 피살에 대해 하마스를 비롯해 이란 중심의 '저항의 축' 세력은 잇따라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마스 대변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강력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예멘 후티 지도자인 모하메드 아리 알 후티는 "극악무도한 테러 범죄"라고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은 최고국가안보위원회를 소집해 이번 피살 사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다.
미국 국무부 산하 외교안보수사대(DSS)가 작성한 푸아드 슈쿠르 지명수배서./로이터=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앞서 이스라엘은 전날(3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로 꼽히는 푸아드 슈쿠르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 이스라엘 골란 고원 폭격으로 청소년 12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보복한 것인데, 헤즈볼라는 해당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레바논, 하마스 지도부 인사가 연달아 이스라엘에 피살되자 전문가들은 중동 위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불어났다고 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이란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 공격을 감행한 것은 상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산 바라리 카타르 대학 교수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이것은 이란을 향한 메시지이며 전세계를 향한 메시지"라며 "이스라엘은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바라리 교수는 "이스라엘이 외국에서 하마스 지도자 암살을 시도할 것은 분명했지만 테헤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공격했을 때 이란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국제사회가 전쟁 가능성을 끌어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두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앞서 지난 4월 이란은 이스라엘 폭격으로 다마스쿠스 영사관이 파괴됐다면서 드론과 미사일을 300대 이상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를 타격했다. 이에 이스라엘이 드론, 미사일 공습으로 맞대응하면서 전면전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재로 전면전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엑스 게시글에서 이란 대통령 취임식 당일 발생한 사건임을 강조하면서 "이란은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보복 조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알자지라는 "이후 상황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면서 하니예 피살을 명분으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종전을 선언할 수도 있고, 중동 갈등이 더욱 확대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전쟁 시작부터 하마스 완전 궤멸을 목표로 삼았지만 하마스 완전 궤멸이 가능한지, 하마스를 궤멸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지난달에는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하마스는 이념이다. 제거는 불가능하다"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알자지라는 "하니예는 이스라엘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라며 "하니예를 살해했으니 전쟁을 끝내라는 이스라엘 여론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31일 필리핀에서 취재진과 만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교가 개입할 여지는 언제나 있다"면서 "갈등이 확산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하니예 피살 소식이 알려진 후 국제유가는 2% 안팎으로 급등했다. 국제유가 기준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는 한국시간 31일 오후 3시39분 기준으로 전일 대비 1.77% 올라 배럴당 80.02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2.01% 올라 배럴당 76.23 달러를 기록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