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론 이자에 짓눌려 낮엔 빵집, 저녁엔 대리기사 투잡
“뼈 빠지게 일해도 남는 것 없어…식당 폐업하고 배달 일”
높은 임대료와 14%가 넘는 카드론 대출이자로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신촌 상권 모습. / 사진:김태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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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마지막 주, 퇴근 무렵에 대리기사 김모(51·남) 씨를 만났다. 늦은 저녁 서울 여의도역 5번 출구 벤치에 앉아 대리기사 콜을 기다리던 김씨는 애타게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대리기사 콜이 뜨면 바로 ‘수락’ 버튼을 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에게 허락된 대리기사 근무 시간은 길어야 하루 2시간.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로 11년째 노량진에서 아내와 빵집을 하고 있다. 장사가 잘될 때는 수능을 마친 학생들에게 무료로 빵을 나눠주곤 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이야기다. 요즘은 월세 내는 것도 벅차다. “코로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숨만 쉬어도 대출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죽을 맛이다.” 김씨의 말이다.
대화를 나누던 중 김씨가 벌떡 일어났다. ‘여의도~일산’ 콜이 뜬 것이다. 재빠르게 수락 버튼을 누른 김씨가 뛰기 시작했다. 대리비 3만5000원에서 수수료 20%를 빼고 2만8000원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여의도에서 일산까지 안 막히면 20분 안에 도착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김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일산까지 가면 하루가 다 간다. (일산에서) 버스 타고 집에 가면 새벽 1시가 넘는다.”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김씨도 마음 같아선 동료 대리기사들처럼 새벽 3~4시까지 대리를 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5시에는 어김없이 출근해야 한다. 빵집 주 고객층이 노량진 학원 수강생들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황금시간대인 아침 6시~6시30분에 빵을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한다”고 했다. 일찍 집을 나서는 학생들이 주로 이 시간대에 아침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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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되는 건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어”
대리기사로 투잡을 하는 김씨는 “카드론을 또 다른 카드론으로 돌려막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서울 명동 거리에 붙은 카드대출 광고 스티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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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11년 전, 8평 남짓한 이곳 빵집을 얻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이었던 빵집 임대료는 올해 무려 25만원이 뛰었다. 월세뿐 아니라 카드론(장기카드대출) 대출이자만 매달 37만원씩 나간다. 카드론까지 끌어다 쓴 이유는 식자재비가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숨만 쉬어도 220만~230만원이 나간다. 돈이 증발한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김씨의 한탄이다. 올해 초부터 대리기사를 시작한 이유도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카드론을 또 다른 카드론으로 돌려막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빵집에서 일하고 대리기사를 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쉬고 싶을 만도 하지만, 15%가 훌쩍 넘는 카드론 금리를 생각하면 쉴 수가 없다”고 했다.
다음날, 김씨의 빵집에 들러봤다. 가장 비싼 빵이 2500원이었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매달 220만~230만원을 손에 넣는 게 어려워 보였다. 빵 가격을 왜 올리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이곳(노량진)에서 가격 인상은 폐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빵값을 올리면 학생들이 인근 맥도날드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4400원인 맥모닝 베이컨 에그맥머핀 세트에는 커피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의 빵집에서 가장 비싼 2500원짜리 빵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빵이 안 팔리면 저녁 9시 이후에는 모든 빵을 할인가인 1000원에 ‘떨이’한다. “뼈 빠지게 일해도 남는 건 없다.” 김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30년 가까이 돈가스 식당을 운영 중인 이모(40대·여) 씨도 고물가·고금리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그는 “올해 초 처음으로 폐업 절차를 알아봤다”고 털어놨다. 11평짜리 식당을 운영하는 이씨는 매달 임대료와 식자재 등으로 최소 600만원의 고정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에 지난 5월부터 카드론 이자가 매달 25만원씩 빠져 나간다. 이씨의 주머니가 채워지기 바쁘게 텅 비는 이유다. “폐업을 고민하던 2022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매달 90만원은 꼬박꼬박 집에 가져갔는데…” 이씨는 말을 흐렸다. “식당에 앉아있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나마 학기 중에는 인근 대학교 학생들이 간간이 찾아왔는데, 방학이 시작된 지난 6월 중순부터는 말 그대로 ‘최악’이라고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식기세척기랑 의자라도 당근마켓에 내놓고 폐업할까, 별 생각을 다한다. 식자재가 썩어가는 게 지금 내 마음을 보는 것 같다.” 이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IMF 사태 때도 꿋꿋이 버텼다는 그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계속된 고금리·고물가의 직격탄은 30년을 버틴 이씨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길에 나앉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배달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다.” 이씨가 먼 산을 바라봤다.
“어휴, 폐업도 돈 있는 사람들이 해요.” 폐업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씨는 이렇게 답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었다.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폐업전문점을 하는 박모(40대·남) 씨를 찾아갔다. 박씨는 “사업장 규모와 업종에 따라 천지차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보통 8~9평 소규모 카페의 경우 철거, 원상 복구하는 데 인건비만 110만원”이라고 했다. 여기에 바닥을 들어내고, 폐기물 처리하는 비용, 에어컨 등 처리 비용, 건물을 임대 이전의 모습으로 복구해놓는 비용 등을 합하면 최소 250만원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점포 면적이 클 경우 폐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300만~600만원은 잡아야 한다.
박씨는 “(폐업) 철거 문의가 늘어난 건 사실”이라면서도 “실제 철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박씨가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폐업 철거는 보통 두 명이 하는데, 한 사람당 10만원, 즉 20만원의 마진은 남아야 착수한다고 했다. 문제는 폐업하는 점포가 실제로는 많지 않아 철거점 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 9일 동안 단 하루도 일감을 못 구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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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자영업자 “사업은 꿈도 꾸지 않을 것”
폐업철거는 보통 두 명이서 하는데, 한 사람당 10만원, 즉 20만원의 마진은 남아야 착수한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모습.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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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소상공인 부담을 덜기 위해 폐업 시 최대 25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박씨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고 말했다. 250만원으로 폐업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점포 임대료가 대폭 낮아져야 한다고 했다.
폐업한 자영업자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6월 말 식당을 접고 새출발했다는 이모(30대·남)씨를 회생법원 앞에서 만났다. 식당을 운영하던 올해 초, 그는 폐업 비용 때문에 3개월 이상 사업을 접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렸다. 결국 폐업 절차를 모두 끝내는 데 6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다달이 내야 하는 식당 임대료에 짓눌려 살았다. 카드론을 또 다른 카드론으로 돌려막다 보니 결국엔 이렇게 회생법원에까지 서게 됐다. 요즘엔 부동산 창문에 붙은 임대료 종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그는 “앞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사업은 하지 않을 거다. 사업은 꿈도 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폐업을 했지만 매달 35만원의 카드론 대출이자는 고스란히 남았다. 매달 최소 80만~90만원의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사업을 접은 직후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다. “편의점에서 한 달에 130만원 정도 벌었다”는 그는 “적자만 보다가 단 몇만원이라도 수익을 내니 행복하더라”며 웃어보였다.
이씨는 앞으로 ‘배달의민족 라이더’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배달하는 거리에 따라 액수가 책정되기에 월급은 불규칙적이지만 자영업보다는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회사)택시를 몰면 매달 250만원 이상은 가져갈 수 있지만 아직 그렇게 일할 체력은 안 된다. 당장은 오토바이가 없어 자전거로 배달을 시작할 것”이라면서 “자전거 라이더도 매달 150만~170만원은 집에 가져갈 수 있다고 들었다”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자영업자들을 더 고통 속에 빠뜨리게 하는 건 최저임금 문제다. “올해 아르바이트생을 세 명이나 내보냈다”는 편의점주 김모씨가 대표적이다. 여의도 주택가에서 8년 동안 편의점을 열고 있는 김씨는 “최저임금이 1만원이 넘으면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아르바이트생에게 주휴수당과 4대 보험료까지 주고 나면 정말 남는 게 없다. 요즘은 매달 2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집에 가져간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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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훌쩍…편의점주는 한숨만
폐업 비용이 만만치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식당을 계속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진은 지난 7월 저녁 시간대 서대문구 신촌 식당가 모습. / 사진:김태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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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족 단위로 편의점을 하는 이들이 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천구 목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2년 전에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각각 8시간씩 고용했지만 지금은 아내와 함께 8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고 야간 시간대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 그래도 박씨 부부가 가져가는 돈은 월 240만원 수준이다.
박씨는 “요즘 들어 편의점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는 날이 많다. 이 시간에 아내와 각자 다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월 400만원은 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가 쉽사리 폐업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철거비용 때문이다. 편의점을 하겠다는 이가 선뜻 나타나지 않는 이상 건물을 원상복구시켜야 하는데, 이때 들어가는 비용이 최소 110만원이라고 했다. 박씨는 “차기 임차인을 구하는 게 최대 고민거리”라며 “어느 정도 사업이 정리되면 아르바이트생에게 퇴직금을 주고 편의점을 접을 생각”이라고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98만6487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한다. 고용원 없이 혼자 꾸려가는 자영업자만 145만 명이다. 이들 자영업자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민생 파탄의 현장은 멀리 있지 않았다.
-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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