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일간 ‘유에스에이 투데이’ 21일치 1면에 실려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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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처럼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한 건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 56년 만이다.
존슨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인 1963년 존 에프(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뒤 이듬해 대선 승리로 4년 임기를 한 차례 마쳤다. 그는 1968년 대선에서 재선 도전에 나섰으나 베트남전 반대 여론이 확산하면서 지지율이 떨어지자 3월 뉴햄프셔 예비선거 직후 중도 하차를 선택했다.
그에 앞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 파병 결정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1952년 대선 때 중도에 재선 도전을 포기한 대통령으로 남았다. 그는 부통령으로 재임하던 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뒤 1948년 대선에서 승리해 4년 임기를 마쳤다. 그는 1952년 재선 도전에 나섰으나, 3월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기대만큼 지지를 얻지 못하자 곧바로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은 56년 만에 재선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한 현직 대통령이 됐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가장 늦게 후보직을 내려놓은 현직 대통령이 됐다. 트루먼 전 대통령은 퇴임 297일 전, 존슨 전 대통령은 295일 전 결단했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를 183일 남겨 놓고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들의 도전을 받아 물러난 게 아니란 점에서 이들과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과 달리 이미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필요한 대의원을 확보했고, 다음달 전당대회에서 공식 후보로 선출되는 절차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중도 사퇴했다. 경선 승리로 사실상 후보로 확정된 현직 대통령이 연임 도전을 포기한 건 사상 처음이다.
민주당은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1952년과 1968년 대선에서 모두 패배를 맛봤다. 1952년엔 일리노이 주지사 애들레이 스티븐슨이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전쟁 영웅인 공화당 후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고, 1968년엔 부통령인 휴버트 험프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으나,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에 백악관을 넘겨줘야 했다. 당시 민주당은 당내 후보경선에서 존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나서 기대를 모았으나 뜻하지 않게 암살당한 뒤 더는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공화당에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연임을 포기한 선례가 있다. 루스벨트 부통령은 1901년 부통령 재임 당시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가 암살된 뒤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는 1904년 대선에서 당선되어 4년 임기를 마쳤으나, 재선엔 나서지 않겠다며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 후임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에 실망해 1912년 대선에 제3당 후보로 나섰다. 당시 선거에선, 태프트 대통령보단 표를 더 얻었으나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후보에겐 뒤져 고배를 마셨다.
쿨리지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인 1923년 워런 하딩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대통령을 승계한 뒤 이듬해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뒤 4년 임기를 마친 뒤 더는 출마하지 않겠다며 물러났다.
이밖에 19세기엔 제임스 포크와 제임스 뷰캐넌, 러더퍼드 헤이스 대통령 등이 4년 임기를 한 차례 마친 뒤 불출마를 선언해 단임으로 대통령직을 마쳤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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