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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밀양 피해자 "다 처벌받은 줄 알았다"…당시 판검사는 '책임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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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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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44명이 모두 처벌 받은 줄 알았는데, 최근 인터넷에 공개된 사건기록을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야 단 한 명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자”[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2004년 있었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20년 동안 가해자들이 처벌받은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가해자들 처벌에 책임이 있는 판검사들은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명을 회피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 A 씨 자매는 2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에 출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사건은 2004년 당시 여중생이었던 A 양이 밀양에 놀러갔다가 44명의 남학생에게 무려 1년여간 집단 성폭행당한 일이다. 가해자는 확인된 것만 44명인데, 34명은 불기소 처분됐고, 단 10명만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불기소된 34명 중 13명은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당시 청소년 강간은 친고죄였음)였고, 피해자가 직접 고소했던 20명은 비교적 혐의가 가벼운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판단돼 소년보호사건으로 분류돼서 였고, 1명은 다른 성폭행 사건에 연루돼 타 검찰청으로 이송됐다는 이유였다. 또 기소된 10명도 법원이 소년보호사건으로 넘김에 따라 결국 단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판사 출신 신중권 변호사는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한) 판결문을 본 뒤 "말 그대로 판단을 안 한 거다. 사실 재판을 안 한 거다"고 꼬집었다. 그는 "납득이 안 간다. 구속된 사람 7명, 불구속 3명이면 최소한 구속된 사람만이라도 실형이 나와야 하는 게 맞다"며 "구속했다는 건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건데 불구속된 사람과 동일하게 모두 소년부 송치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A 씨 자매는 최근에야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그때는 저희가 어렸고,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고 저희는 저희 진술만 있으면 다 처벌을 받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자매는 검찰과 사법부가 왜 가해자들에 대해 그같은 처분을 내렸는지 궁금해했다. 자매는 "합의가 몇 명이 됐는지 공소권 없음은 왜 그런 것인지. 왜 피해자 진술이 없다고 되어 있는지. 구속과 불구속, 소년부 송치의 기준이 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자매는 이유가 궁금해 최근 검찰에 수사기록을 보여달라며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공개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자매는 "가해자 44명의 동의를 모두 얻어야지만 뗄 수 있다고 하더라"며 "왜 저는 볼 수 없는 건지, 저는 알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건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자매만 사건 처리 결과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해자들 역시 당시 제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은 탓에 20년이 지난 이제서야 신상이 온라인에 공개돼 유포되고 직장에서 잘리는 상황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가해자들 역시 자신이 당시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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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측은 당시 사법처리에 관여했던 경찰, 검찰, 판사들에게 입장을 물었지만, 단 1명을 제외하고는 해명을 거부했다.

당시 수사 검사와 판사들은 대부분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수사팀의 한 검사는 자신은 초임검사이자 수사팀의 막내여서 내용을 잘 모른다는 취지로 말했고, 다른 검사 둘은 답변을 피하고 도망쳤다.

당시 사건을 형사처벌하는 대신 소년사건으로 송치했던 재판부의 판사도 답변을 거부했다.

다만 해당 재판부의 다른 판사는 인터뷰에 응해 "양형에 대한 고민이 제일 많았다"며 당시로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도 욕 먹는 판결이었다. 여성단체에서 그 해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하기도 했다"며 "판사는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 타인의 삶에 대해 관여하는 직업이면 자기가 한 판결에 대해 판단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전관예우'나 '지역 카르텔' 의혹은 부인하며 "(가해자 측) 변호사는 판검사 경력이 없는 경력 4~5년 차 변호사였다. 재판부와 아무 인연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 "기록은 공개돼야 한다"라며 "판사들이 판결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기록 보면 그런 얘기 못한다'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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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현재까지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는 "2004년 이후로 똑같다. 약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하다"라고 했다. 자매 모두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현재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 자매는 다만 최근 온라인에서 유튜버들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것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매는 "아직도 집 현관문을 닫을 때마다 수십 번을 문 잠갔는지 확인한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이 사태가 커짐으로써 요즘에는 더 많이 힘들다"라며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나. 그게 좀 억울하다"라고 호소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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