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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월)

이슈 물가와 GDP

보복 소비에서 짠물 소비로… 고물가 시대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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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NOW]

프리미엄보다 최저가 제품 선호… 익명 채팅방에서 절약 노하우 공유

세컨 브랜드 선보이는 파인다이닝… 집밥 대세로 떠오른 가정간편식

‘집 밖에 나가면 다 돈’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자영업자, 직장인은 물론 프리랜서, 주부, 학생 모두 같은 처지다. 최근에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시간당 1만 원을 넘어서면서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나가는 돈이 더 많아졌다. 쿠팡 와우 멤버십 요금도 다음 달 7일부터 4900원에서 7890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2023년에 엔데믹이 선언되면서 보복 소비가 소비 트렌드로 떠올랐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에는 제동 장치가 걸리지 않으면서 이제는 1년 만에 정반대의 소비 패턴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바로 짠물 소비다.

짠물 소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소비자들이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려는 소비 패턴을 의미한다. 짠순이, 짠돌이 할 때 그 짠물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는 아니고 해외에서도 이러한 행태를 ‘Frugal Living’, ‘Thrifty Spending’으로 표현한다. 프리미엄 제품보다는 최저가 제품을 더 선호하고, 덩어리 고기 같은 대용량 제품이나 소비 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 등이 짠물 소비에 해당한다.

고물가가 일상이 된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일명 ‘거지방’이라고 불리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도 인기다. 거지라는 단어가 원색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 방에서는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나만의 절약 방법을 공유한다. 주로 연령대별로 구분되어 있는데 20대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다. 아무래도 사회 초년생, 자취생,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핫딜 정보 공유를 하기도 하고, 목표 지출액을 설정한 뒤에 매일 지출 명세를 공개하면서 절약 소비를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지출 목표액을 초과하면 서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년 전 인기 있던 TV 프로그램 ‘만 원의 행복’ 현실판이라고 보면 된다.

동아일보

서울 더플라자 호텔의 중식당 ‘도원’의 세컨드 브랜드 ‘도원스타일’ 압구정점. 사진 출처 도원스타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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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에 가장 소비 탄력성이 높은 상품 중 하나는 ‘외식’이다. 소비 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가격 변화에 따라 소비자 수요가 크게 변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쌀, 밀가루, 설탕 같은 기본 식품은 가격이 올라도 소비량이 크게 줄지 않는 비탄력적 수요품이다. 외식, 와인, 위스키, 명품 백, 럭셔리 자동차 같은 아이템은 탄력적 수요품이다. 가격이 오를 경우 안 사면 그만인 경우에 해당한다.

수많은 외식업장들은 요즘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 중이다. 특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같은 업장은 메뉴 구성을 콤팩트하게 바꾸거나 단품으로도 메뉴를 주문할 수 있도록 바꾸고 있다. 캐주얼한 세컨드 브랜드를 만들어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달성하지 못한 매출을 역으로 채우고 있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서울 더플라자 호텔의 간판 중식당인 도원은 세컨드 브랜드로 ‘도원스타일’이라는 매장을 백화점과 역사에서 운영 중이다. 캐주얼한 가격으로 호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20년 넘는 경력의 한우 마이스터가 운영하는 한우 전문점 배꼽집은 최근 서울 청량리역에 정육식당 콘셉트의 배꼽집 ‘더 클래식’을 오픈했다. 상차림비 5000원을 내면 배꼽집에서 판매하는 고기를 소비자가격으로 구입해 매장에서 구워 먹을 수 있다. 배꼽집과 서울 마장동에 있는 배꼽축산의 중간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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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에 가성비를 앞세운 집밥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홈플러스는 18일부터 24일까지 고객 수요가 높은 양념·소스류와 냉동 채소 등 100여 종을 기획가에 선보인다.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강서점에서 모델이 ‘맛있는 집밥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홈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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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이라 불리는 가정식에도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예전에는 집밥이라고 하면 식재료를 일일이 다 구입해서 찌개나 구이, 조림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을 말했는데 요즘은 꼭 요리를 하지 않아도 집 안에서만 먹어도 집밥이라고 한다. 특히 1, 2인 가구의 경우 장을 보고 식재료를 일일이 다 손질해서 요리를 해먹는 비용보다 오히려 CJ비비고나 오뚜기, 청정원 호밍스에서 출시한 간편식이나 유통사에서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파는 반조리 형태의 가정간편식(HMR)을 구입해서 만들어 먹는 것이 저렴하다. 2+1 프로모션도 있고 저녁이 되면 30∼40% 할인가로 판매하기 때문에 퇴근 후 마트에 들러서 구입한 뒤 집에서 먹는 것이 요즘 현대인들의 집밥 문화가 되고 있다.

물론 3, 4인 이상의 가구가 되면 식재료를 구입해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를 하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훨씬 이득이다. 코스트코나 이마트 트레이더스, 롯데마트 맥스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덩어리 고기나 냉동 야채, 냉동 과일 등을 사서 요리해 지출을 줄이는 이들도 많다.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먹고사는 문제는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부터 유통사, 제조사 모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냉동 기술, 식품 제조 기술, 살균 기술, 보전 기술 등이 발전해 소비자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간편식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맛도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프리미엄 레스토랑의 서비스를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서 외식 시장의 다양성은 넓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편의점 음식부터 마트에서 판매 중인 간편식 요리, 팁 없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한국의 로컬 식당을 경험하면서 한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고물가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며 외식 시장도 성장 과정을 겪고 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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