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단상 오르자 “배신자” “꺼져라”… 비전 실종된 채 진흙탕 싸움

충청 합동연설회 지지자 충돌

당 지도부 자제 촉구에도 과열

행사장 밖선 유튜버들 ‘주먹다짐’

韓·元 “폭행 안된다”면서도 기싸움

당 내부선 “전대 이후가 더 걱정”

羅 “韓, 대권 욕심에 尹과 각 세워”

元 “댓글팀 있다면 중대범죄” 가세

총선 백서, 전대 후 발간 방침 놓고

羅·元·尹 “투표 전 공개해야” 반발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은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평소 자신의 ‘뿌리’라고 강조해온 충청 당심을 잡기 위해 격돌했다. 김건희 여사 문자 묵살 논란이 경선판을 한바탕 휩쓸고도 한동훈 후보 ‘대세론’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나경원 후보는 ‘대권 욕심 없는 당대표론’을 주창했고, 원희룡 후보는 ‘탄핵 공포’를 자극하며 한 후보의 1차 과반 득표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7·23 전당대회가 비전 경쟁이 실종된 채 ‘자해적 진흙탕 싸움’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날 연설회에서는 지지자 간 난투극이라는 볼썽사나운 장면까지 등장했다.

아수라장 15일 오후 충남 천안시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참석자 일부가 연설 중인 한동훈 후보에게 “배신자”라고 외치며 의자를 던지려 하자 경호원과 당직자들이 제지하고 있다. 천안=뉴시스

이날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전·세종·충남·충북 합동연설회 도중 벌어진 대치 상황은 당대표 후보 중 세 번째로 한 후보가 무대에 오른 직후 시작됐다. 당원들만 입장할 수 있는 청중석 한쪽에서 “배신자”, “꺼져라” 같은 말과 함께 야유가 나오자 한 후보 지지자들이 이에 대응하면서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경호원들이 제지에 나섰지만 한 지지자가 의자를 집어 던지려 하는 모습까지 목격됐다.

한 후보는 처음에 “그냥 두시라. 소리치셔도 괜찮다”고 했다가 충돌 상황이 심각해지자 마이크를 빼 들고 연단 앞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우리 정치가 보일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다”라며 “제게 배신자라고 외치는 것은 좋지만 다른 분 의견을 묵살하지 말아 달라. 폭행을 하지는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한 후보는 연설회 종료 후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저는 이견을 존중하지만 동료시민을 다치거나 위험하게 하는 행동은 절대 안 된다”며 “우리는 함께 가는 사람들이고, 지지자들뿐 아니라 오늘 연설을 방해하는 그분들과도 함께 가고 함께 이기겠다”고 했다.

15일 오후 충남 천안시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참석자들 일부가 연설중인 한동훈 후보에게 '배신자'라고 외치며 의자를 집어 던지려고 하자 경호원과 당직자들이 제지하고 있다. 뉴시스

원 후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면서도 “타 후보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또한 용납하기 어려운 행태”라고 했다. 일각에서 이날 몸싸움 책임을 원 후보 지지자에게 돌리는 것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몸싸움은 당사자들이 주최 측으로부터 퇴장 조치를 당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행사장 밖에서 한 후보 지지 유튜버가 원 후보 지지 유튜버에게 다가가 본격 주먹다짐을 하는 장면을 포착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는 등 이미 각 후보 진영 간 감정의 골은 깊게 패인 상태다. 법적 다툼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후보 측 정광재 공보단장은 “한 후보 연설을 방해한 모 후보 지지자가 사전 계획 하에 방송 카메라 옆에서 일부러 큰 소리로 ‘배신자’라고 외쳤다고 자인했다”며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가 “요즘 국민께 제일 걱정을 많이 끼쳐드리는 게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의힘 전당대회”(12일 추경호 원내대표)라며 거듭 자제를 촉구했음에도 몸싸움까지 일어나자 당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비례대표 초선 의원은 “다들 전대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며 “당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팀으로 몰려다니다 보니 팬덤이 과열되는 측면이 있다. 남은 기간이라도 서로 차분하게 비전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도 “갈등이 쉽게 봉합될 것 같지 않다. TV토론회도 보기 민망할 정도”라며 “더불어민주당에만 좋은 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연설회에선 시작 직후부터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 한 후보 캠프가 자체 실시한 당원 여론조사에서 과반 지지율을 얻었다는 언론 보도를 두고 서병수 전대 선거관리위원장이 “출처가 확인되지 않는 여론조사가 보도돼 경선을 더욱 혼탁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자, 한 후보 지지자들이 “사퇴하라”고 외쳐 행사장이 어수선해졌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이 15일 천안 서북구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상현, 나경원, 한동훈, 원희룡 후보. 뉴스1

당원 선거인단 모바일 투표 시작(19일)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나·원 후보는 한 후보 포위 공격에 나섰다. 나 후보는 “대권 욕심 때문에 대통령과 각 세우고 분열하는 사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씌운 국정농단과 당무개입 단어를 스스럼없이 말해 ‘이재명 당’에 빌미 주는 후보는 위험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원 후보는 한 후보의 채 상병 특검 수정 대안론을 집중 비판했다. 그는 “특검은 당 분열과 대통령 탄핵을 노리는 거대야당의 계략이고 덫”이라며 “당대표와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이 정말로 같다면 특검은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같이 윤 대통령과 한 후보 간 틈새 벌리기를 시도한 것은 서울 태생이지만 충남 공주 출신 선친을 둔 윤 대통령이 평소 “충청은 제 선대부터 500년간 살아온 뿌리이자 고향”이라고 강조해온 것을 염두에 두고 충청 당심을 다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원 후보는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폭로를 놓고서도 맹공을 펼쳤다. 원 후보는 “댓글팀이 실제 존재했다면 중대 범죄 행위”라며 “한 후보는 사법리스크로 정상적인 당대표직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 구속으로 이어졌던 ‘드루킹 사건’도 언급했다.

15일 오후 충남 천안시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참석자들 일부가 연설중인 한동훈 후보에게 '배신자'라고 외치며 의자를 집어 던지려고 하자 경호원과 당직자들이 제지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관해서는 야당까지 가세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한동훈 댓글단(팀) 의심 계정 24개에서 작성한 6만여개의 댓글을 분석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검경 수사 등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한 후보를 제외한 세 명의 후보는 당 지도부가 이날 총선 백서를 전대 뒤에 발간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데 대해서도 반발했다. 문자 논란, 사천 의혹 등에 관한 평가가 경선 투표 전 당원들에게 제공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상현 후보는 “총선 패배 80일이 지나도록 백서 하나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우리 당의 비겁한 행동에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후보는 “백서는 진작 발간됐어야 한다”고, 원 후보는 “총선 책임과 평가의 제1호 대상자인 당시 당대표가 바로 출마해 백서 유불리를 말하는 것은 블랙 코미디”라고 했다.

막판 변수로 꼽히는 나·원 후보 단일화를 두고는 양측이 미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나 후보는 인위적 단일화에 선을 그으면서도 “지금까지 여론 추세 등에 비춰 (자연스레) 저를 지지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원 후보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며 “나 후보가 저를 돕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태영·최우석 기자, 천안=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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