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새너제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학회 SID에서 BOE 부스에 관람객들이 몰려있는 모습. 사진 BOE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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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조작하는 투명 디스플레이, 가상현실(VR)에 접속하는 헤드셋….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에는 디스플레이가 단골로 등장한다. 스마트폰·TV·자동차·VR 기기 등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는 전자 시장의 최전방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자, 관련 소재·제조설비 등 후방 기술 경쟁력을 좌우하는 장치 산업이다. 한국은 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2004년부터 17년간 세계 1위를 지키며 이 시장을 주도해왔지만, 2021년 중국 기업들에 1위를 내주고나서부턴 쫓기는 신세다.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장악한 중국은 이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최첨단 기술에서도 한국을 바짝 따라붙고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주인공이 투명디스플레이를 손동작으로 조절하고 있다. 중앙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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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새너제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학회 ‘SID’에선 차이나 테크의 향연이 펼쳐졌다. 중국 기업 46곳이 부스를 차리고 신기술을 뽐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기업 BOE는 최고 밝기를 자랑하는 마이크로LED, 세계최초 110인치 16K무안경 3D 디스플레이 등 신제품 50여개를 내놨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학회 발표 연사들이 죄다 중국인에, 중국 기관·기업들이었다”라며 “행사장이 실리콘밸리인지 베이징 한 복판이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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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90%던 폴더블, 中 절반 먹어
차준홍 기자 |
중국의 맹추격은 한국 기업들이 선점했던 OLED 시장에서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폴더블(접히는) OLED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은 2021년 90%였지만, 올 상반기엔 47%로 크게 줄었다. BOE·차이나스타(CSOT) 등 중국 기업들이 53%를 차지했다. 올 1분기에는 화웨이·오포 등 중국산 폴더블폰에 대거 납품한 BOE의 점유율이 54.3%까지 치솟아 삼성디스플레이(28.9%)와 순위가 뒤집혔다. 스마트 워치용 소형 OLED 시장에서도 올 상반기 중국 제조사 점유율이 총 64%(추정치)로, 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 점유율 합산(25%)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이 장악한 대형OLED 시장도 중국 기업들은 슬금슬금 발을 뻗고 있다. 100%였던 한국의 대형 OLED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96%로 떨어졌으며, 중국이 처음으로 이 시장에 진입해 4%를 차지했다.
차준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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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독식 막을 수 있나
지난해 파산한 일본의 디스플레이 업체 JOLED 전경. 사진 JOL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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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디스플레이 산업은 전통적으로 소수의 기업이 과점하며 시장을 주도해왔다. 한때 일본이 그랬고, 지난 20년간 한국이 그랬다. 향후 이 주도권이 중국 기업들로 넘어갈 경우, 중국이 전 세계 디스플레이 공급망을 장악하고 무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부연구원은 지난달 한국과총 주최로 열린 ‘디스플레이 산업 혁신 포럼’에서 “디스플레이는 가격대가 높은 부품이고, 소비자가 느끼는 품질 차도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중요하다”며 “경제안보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라고 말했다.
세계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한국이 중국의 독식을 막을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일본 제이올래드(JOLED)는 지난해 파산했고 대만 기업들도 수익성 악화로 신규 투자가 거의 중단됐다. 중국은 전 세계 액정표시장치(LCD)의 63%(2023년)를 생산하고 있는데, 2027년이면 그 비율이 78%에 이를 전망이다. LCD보다 화질이 뛰어나며 고가인 OLED에서도 중국의 생산 비중은 2027년 46%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상진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산업정책본부 상무는 “LCD에 이어 OLED까지 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형성될 경우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준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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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D 전환하고, 정부지원 강화를
전문가들은 디스플레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중소기업의 OLED 전환을 지원하고,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 지원을 꼽았다. 박동건 서강대 석좌교수(전 삼성디스플레이 사장)는 “삼성·LG는 LCD 사업을 중단했지만, 중소기업 중엔 중국과 거래하며 LCD 사업을 유지하면서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뒷받침해주는 곳들이 많다”라며 “정부가 이들의 사업전환을 도와 OLED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중국 천진에서 열린 세계 인텔리전스 엑스포 2024에서 투명디스플레이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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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첨단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공학한림원 산하 산업미래전략위원회는 ‘2040년 한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핵심 디스플레이 기술’로 올레도스(OLEDoS, OLED on Silicon)와 마이크로LED 등을 꼽았다. 박동건 석좌교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과 융합할 수 있는 올레도스나 마이크로 LED의 원천 기술과 지식재산(IP) 확보, 전문 인력 양성에 더 투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5월 올레도스 기업 이매진을 인수했으며 LG디스플레이는 SK하이닉스와 손잡고 1만니트 최대밝기 올레도스 기술을 개발했다. 마이크로LED도 두 기업 모두 기술개발에 매진 중이다.
이런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적시 지원도 중요하다. 남상욱 연구위원은 “일본이 디스플레이 사업 부활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처럼, 이 산업은 한번 꼬꾸라지고 나면 나중에 되살리기 어렵다”라며 “한국이 OLED 시장을 아직 장악하고 있는 지금 정부가 규제 완화, 소득공제, 금융 지원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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