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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 (화)

금리인하 발목잡는 기후변화發 인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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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후변화로 농산물 가격 일제히 올라
밀 17%↑ 팜유 23%↑ 돼지고기 21% 뛰어
식량 가격, 지속적 물가상승 요인으로 변화
IMF, 이상기후와 통화정책 상관관계 연구
금리 1%p↑ 향후 2년 물가상승률 0.6%p↓
각국 중앙은행 '고금리 기조' 연장에 무게


파이낸셜뉴스

지난 2일 인도 아삼주 모리가온에서 한 주민이 홍수에 휩쓸린 집에서 쌀 가마니를 들고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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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로 농사를 망쳐 식량 가격이 오르는 상황이 만성적으로 계속되면서 기후변화의 경제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식량 가격 상승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워졌다며 이러한 현상이 일회성 사건이 아닌 거시적인 변화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로 농업 판도 달라져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지난 6월 발표에서 5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전월 대비 0.9% 상승한 120.4p였다고 밝혔다. 해당 지수는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 가격을 종합해 산출하며 2014~2016년 평균 값을 100p로 본다. 지수는 2021년 각각 세계 1위, 5위의 밀 수출국이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한 2022년에 급등, 같은 해 3월 160.2p까지 올랐다가 올해 2월까지 내려갔다. 수치는 이후 3개월 연속 상승했다.

미국 농무부(USDA)는 6월에 내놓은 세계 농산물 수급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10월~내년 9월까지 세계 밀 공급량이 전년 대비 570만t 줄어든 10억5030만t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USDA는 러시아와 우크라, 유럽을 거론하며 고온 건조한 날씨로 생산량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미 항공우주국 고다드 우주연구소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달마다 1880년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지속적인 온난화는 이상기후를 초래했다. 지난해 6월 미 터프츠대학교 프리드먼 영양과학·정책 대학원은 미국에서 1981년 기준으로 100년에 1번 나올 법한 폭염이 지금은 6년에 1번(미 중서부 기준)씩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폭염은 중국 북동부에서도 16년에 1번씩 발생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밀이 고온에 약해 봄철 기온이 섭씨 27.8도 이상 오르면 수확량이 급감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프리드리케 쿠익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농작물도 "섭씨 20~30도에서 안정적인 수확량을 보여주지만 범위를 넘어가면 수확량이 급감한다"고 설명했다. FT는 이상기후로 수확량이 감소하는 동시에 일부 지역에서는 재배 작물이 바뀔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호주의 농산물 헤지펀드 패러 캐피털의 애덤 데이비스 공동 창립자는 올해 기후변화로 "밀 가격이 17% 올랐고 팜유도 23% 올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설탕과 돼지고기도 각각 9%, 21%씩 가격이 올랐다"며 소비자 역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지연 효과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성적인 물가 부담

다국적 금융기업 HSBC의 프레더릭 노이만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후변화는 세계 식량 가격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별 사건은 별개의 문제로 무시하기 쉽지만 그동안 비정상적인 사건과 혼란이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을 목격했다"면서 "물론 기후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강조했다. 노이만은 기후변화가 "식량 공급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식량 가격 상승이 과거 일시적인 물가상승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지속적인 상승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와 ECB는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시한 공동 연구 보고서에서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이들은 1996~2021년 121개국의 자료를 연구한 결과 2035년까지 국제 평균 식량 가격 상승률이 연간 0.92~3.23%에 달할 경우, 같은 기간 평균 소비자물가지수도 연간 0.32~1.18% 뛴다고 주장했다. 벨기에 겐트대학교의 거트 피어스만 경제 교수는 중기적으로 유로존(유로 사용 20개국) 물가상승 변동성의 최대 30%가 국제 식량 가격 충격으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 그랜텀 기후변화 및 환경 연구소의 데이비드 바메스 정책 연구원은 "식량 가격 충격이 자주 반복된다면 소비자물가지수에 보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식량 가격 상승을 일시적으로 보는 시야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FT는 물가 변동이 경제 수준에 따라 다르다고 진단했다. 보통 저소득 국가일수록 식품이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노이만은 식량 소비가 전체 물가 지수의 50%에 달하는 국가도 있다며 신흥시장일 수록 식량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이만은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밀이 빵 가격의 70%를 차지하는 반면 고소득 국가에서는 노동력·에너지·운송비가 더 중요해 그 비율이 10%에 불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변수 늘어난 중앙은행, 금리 어쩌나

노이만은 기후변화가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고 내다봤다. 그는 식량 공급의 혼란이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라며 "중앙은행들 역시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추정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은 금리 변동을 더욱 키울 수 있으며 고금리 기조를 연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앞 다퉈 금리를 내려 시장에 돈을 풀었던 주요 국가들은 물가가 치솟으면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시 금리를 올렸다. 시장에서는 고금리 기간이 길어지자 금리 인하를 기대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달 주요7개국(G7) 가운데 2022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내렸다. ECB도 같은달 금리 인하에 동참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물가상승을 걱정하며 성급한 금리 인하를 말렸다. IMF는 4월 보고서에서 2013년 1·4분기~2022년 2·4분기 중동 등 17개국을 분석해 이상기후와 통화정책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분석 결과 이상기후가 나타나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p 올릴 경우, 향후 2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0.6%p 줄어든다는 결론이 나왔다.

반면 기후가 평년 수준일 때 물가상승률은 금리가 1%p 올라간 이후 2년 동안 약 5%p 감소했다. IMF는 "중앙은행이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가격 충격에 대비해 물가를 안정시키려 하면 경제와 물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후변화 상황에서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을 강행하면 심각한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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