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시달리는 일본 “내 월급 빼고 다 올라” [JAPAN NOW]

한때 세계 2위 경제 대국, 내년엔 5위로?

엔화값 하락으로 일본 물가가 크게 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도시락 전문점에서 도시락을 고르고 있다. (이승훈 특파원)

일본 경제가 극심한 엔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달러당 엔화값이 3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며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전반적인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일본 기업이 올해 평균 5%가량 임금 인상에 나섰지만 물가 상승률이 이를 웃돌면서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실제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25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연초만 해도 140엔대 수준이던 달러당 엔화값은 최근 160엔대까지 급락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줄어든 가운데 일본 금리 인상 시기 또한 늦어질 조짐이 보이면서 엔화 약세는 굳어지는 분위기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선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다. 지난 6월 26일(현지 시간) 뉴욕 외환 시장에선 달러당 엔화값이 한때 160.88엔까지도 하락했다.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 만에 최저치다.

엔화값 하락으로 전반적인 수입물가는 크게 오르고 있다. 이를 반영한 모습이 최근 미야기현의 한 초·중학교 급식에서 영양가가 높은 소고기가 사라진 사건이다. 급식에 꼭 들어가는 쌀과 우유 가격이 각각 9%씩 오른 탓. 일본서 수입하는 미국산 소고기 도매가격은 1991년 수입 자유화 이후 최고치로 올랐다.

달러당 엔화값 160엔대 ‘최저’

일본 대형 슈퍼에서는 오렌지주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상 기온으로 일본 주요 수입국인 브라질 오렌지 가격이 올랐고 여기에 엔화 약세까지 겹치며 현 수준 가격으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렌지주스 제조업체들이 당분간 생산을 중단하고 향후 가격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화 약세가 중장기 국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급여 비교 사이트(levels.fyi)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도쿄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달러 환산으로 6만2530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실리콘밸리 지역 평균 임금의 약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 싱가포르나 중국 베이징과 비교해서도 약 30%가량 낮다. 원래도 일본 급여가 높지 않은 편인데 엔화 약세로 달러 환산 시 급여 수준이 더욱 떨어진다. 이처럼 급여가 낮을 경우 우수 인재를 일본에 유치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에까지 올랐던 일본 경제 순위는 내년에는 5위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요미우리신문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인용해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내년에는 인도에 밀려 세계 5위가 될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IMF 4월 발표에 따르면 인도의 GDP는 4조3398억달러, 일본은 4조3103억달러로 집계됐다. 달러당 엔화값 약세가 심화되면서 당초 예상했던 역전 시기가 1년 앞당겨졌다. 인도 인구는 세계 최대인 14억명이고, 지난해 실질 GDP 성장률은 7.8%로 일본(1.9%)의 4배 이상이었다.

일본은 고도 성장기인 1968년에 구서독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지만, 거품 붕괴 이후 불황이 계속되면서 2010년 중국에 추월당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독일에 밀려 4위로 전락했다.

세계 경제 규모를 정하는 명목 GDP는 환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근 달러당 엔화값이 급격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이 2% 이상의 물가 상승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로 환산한 일본 GDP는 낮아지는 추세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lee.seungh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6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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